두 의학 장점 접목 '제3 의학'으로 발전 필요
안정적 공론의 장 통해 '국민건강' 고민해야
안정적 공론의 장 통해 '국민건강' 고민해야
◇ 의료발전방안 정책토론회
50년 넘게 제자리걸음 중인 의료계와 한의계의 '의료일원화'에 속도를 내 양측간 갈등의 역사를 끝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최근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등으로 불거진 의사와 한의사 간 갈등을 봉합하고, 두 의학의 장점을 접목한 '제3의학'을 발전시키기 위해선 의료체계의 근본적 통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의료발전방안 정책토론회'에서 김상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은 "과학지식과 의료기술이 발달하면서 직역 간 엄격한 구분이 희석되고 교류·융합 현상이 뚜렷하다"며 "이원화된 체계로 인한 직역 간 배타적 면허범위를 둘러싼 갈등과 국민 불신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의료일원화는 의과와 한의과로 나뉜 의료체계를 하나로 통합 관리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1951년 국민의료법과 이를 계승한 의료법에 의해 의과와 함께 전통의학인 한의과를 국가 공식 보건의료체계로 동시에 인정한다. 하지만 의과와 한의과가 별도 면허제도를 운영하면서, 상대 직역에 속하는 처방이나 시술을 엄격히 제한한다. 면허와 의료 행위 외에 진료과목과 전문의 제도, 개설 의료기관의 시설기준과 정원도 서로 다르다.
그런데 기술 발달로 두 영역이 서로 근접해지면서 전통적 기준으로 규정할 수 없는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일례로 중국의 투유유 박사는 전통 약제인 '개똥쑥'에서 말라리아 치료물질을 추출해 지난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영역 간 교류나 융합은 고사하고 갈등만 심해지고 있다. '천연물 신약'은 한의학에 기초한 원료를 현대의학 원리로 개발한 의약품이지만, 처방권을 두고 의사와 한의사들이 갈등하고 있다. 최근 갈등이 격화되는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문제도 같은 맥락이다. 이 같은 갈등은 고소·고발까지 이어져 사회적 부담을 높이고, 의료체계에 대한 국민 혼란과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상영 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법령과 의료체계 내에서는 의과와 한의과간 갈등을 푸는 데 근본적 한계가 있다"며 의료일원화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의료일원화는 2000년대 전후 의료계 주도로 논의가 시작됐다. 그러나 한의계는 의료계의 한의학 무시를 이유로 자체 체계 확립에 초점을 맞춰 공론화에 소극적인 입장이다. 2009년 의료법 개정으로 복수면허자의 의원 동시개설이 가능해지고, 병원급에서 의·치·한의학과 협진이 가능해지는 등 일부 진전이 있었지만, 양측간 근본적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해 논의는 크게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 연구위원은 "최근 각 1000명 이상의 의사와 한의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의료계의 47.1%, 한의계의 62.7%가 의료통합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며 "두 직역 간 쟁점사항에 대해 간격을 좁혀가는 안정적인 논의구조와 공론의 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같이 서양의학·전통의학 이원 의료체계를 보유한 대만의 경우 중의약 전담위원회를 두고 서양의학과의 결합을 추진하고 있다. 업무영역을 구분하되 유연성을 보장하는 방향이다. 중국은 서의사와 중의사 간 시술과 처방에 원칙적 제한이 없는 일원화 체계다. 전통의학과 서양의학을 통합한 '중서의결합'을 추진, 중의학과 서의학을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운영한다. 일본은 전통의학을 공식 의료체계에서 인정하지 않는 일원체계지만, 전통의학 활용을 적극 권장한다. 세 나라 모두 형식은 다르지만 전통의학과 서양의학간 시너지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윤성 대한의학회 회장은 "우리 전통의학은 중국과 일본, 대만 등과 유사한 형태로 그 나라들이 어떻게 주류의학과 관련을 맺고 있는지 잘 살펴보면 해답이 있을 것"이라며 "현 제도의 개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일원화를 추진하려면 면허제도 설정과, 기존 의사와 한의사 면허자들의 권한 문제, 의과와 한의과 교육 통합방안 등을 논의해야 한다. 무엇보다 서로간의 누적된 불신 해소가 가장 큰 숙제다. 하지만 이날 토론회에는 해당 직역을 대표하는 의사협회와 한의사협회측이 순탄치 않을 앞날을 전망하게 했다.
대한의사협회 부회장을 겸직하는 이원철 대한의학회 부회장은 "의학회는 의료일원화에 찬성한다"며 "두 학문이 합쳐지려면 한의학에 대해서도 과학적 방법론과 결과에 따라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강립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복지부는 의료 미래를 위해 이런 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시각"이라며 "의료계와 한의계는 우리나라 우수한 인재들이 다 모여있는 만큼 이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국민 건강을 지킨다는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사협회와 한의사협회가 참여하는 의료현안협의체를 통해 이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토론에 두 단체가 참석하지 못 한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며 "정부는 협의체 형태로는 논의를 지속하기 어렵다고 인식하고 두 단체뿐 아니라 관련된 전문가단체와 연구기관, 학계, 시민사회단체, 교육부 등 관계부처가 참여하는 논의를 가급적 빠른 시간 내에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도영기자 namdo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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