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규 칼럼] 1997, 2008, 그리고…](http://contents.dt.co.kr/images/201601/2016012502102257673001[1].jpg "[임윤규 칼럼] 1997, 2008, 그리고…")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갖는 것은 상실에 대비한 일종의 방어 장치다. 넘치는 낙관은 비관보다 더 나쁜 결과를 만든다. 과장과 허풍으론 창조적 에너지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정부는 올해 우리경제 성장률이 3.1%를 기록할 것이라며 3%대 성장을 자신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이런 정부가 측은했던지 3.0% 성장을 제시했다. 미국과 중국의 변화, 저유가, 내수경기침체, 금리와 환율변동성에 따른 수출입 상황 등 어느 구석 하나 호락호락하지 않은데, 어떤 수단으로 3%대 성장을 일구겠다는 것인지, 자신이라기 보단 자만과 고집으로 보인다.
이미 민간 연구소들은 정부의 성장률 자신감을 무참히 꺾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은 생산성 저하 추세가 개선되지 않으면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2016∼2020년 연평균 2.5% 수준에 머물 것으로 추정했다. 현대경제연구원도 같은 기간 2.7% 성장에 그칠 것이라고 예측했다.
정부의 외환보유액에 대한 자신감도 걱정스럽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경험한 우리로선 외환보유액에 남다른 히스테리를 갖고 있다. 그래서 부지런히 외환 보유액을 쌓아왔다. 9월 말 기준 우리의 외환보유액은 3681억달러로 세계 7위다.
그런데 나라별로 경제규모가 다른 상황에서 외환보유액 액수로 충분, 부족을 논하는 것은 어리석다. 국민총생산(GDP)대비 외환보유액 비중으로 보면, 외환보유고가 3조5141억달러로 액수 기준 세계 1위인 중국은 GDP 대비 33.9%에 불과하다. 세계 5위다. 1조2489억달러를 쌓은 일본도 GDP 대비 27.1%에 그친다. 한국은 26.1%다.
한국은행은 외환보유액 관련 우려에 대해 "보유자산의 유동성과 안전성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단언한다. 한은이 충분한 수준이라고 판단한 근거는 1953년 IMF가 제시한 '3개월 수입액' 기준이다. 최근 국제사회는 2004년 국제결제은행(BIS)이 제시한 좀 더 냉정한 잣대를 많이 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연간수입액, 단기외채, 외국인 투자액 등 BIS가 제시한 기준에 맞게 긴급 상황시 대외지급 수요를 기준으로 주요국의 필요 외환보유액을 추정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4433억달러가 필요한데, 보유액은 3636억 달러다. 2014년 말 기준, 단순 계산으로 797억 달러가 부족하다.
외국인들은 우리 코스피에서 연일 순매도 행진이다. 22일 기준으로 무려 35일째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기록한 33거래일 연속 순매도 기록을 연일 갈아치우고 있다. 매일 2000억원 안팎의 자금이탈이다.
정부는 국가 신용등급이 역대 최고 수준 아니냐며 위기론을 일축하기도 한다. 그런데 1997년 외환위기 직전 국제신용평가사들은 한국의 신용등급을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S&P는 우리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기 직전까지 AA-등급을 유지했다. 그보다 앞선 3월, 무디스는 A1등급으로 상향조정까지 했다. 구제금융 신청 후인 1997년 12월 21일 무디스는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을 무려 7등급이나 강등시켰다.
2015년 12월 18일, 무디스는 우리나라 국가 신용등급을 상위 넷째 등급(Aa3)에서 셋째 등급(Aa2)으로 올렸다. 앞서 S＆P도 9월 15일 'A+'에서 'AA-' 단계로 올렸다.
1997년의 기억이 오버랩 되는 것은 기우일까. 신용평가사 등급상향이 결코 위기의 안전판은 아니다.
경제성장률에 대한 회의, 외환보유액에 대한 불안감, 외국인 자금 이탈이 계속되고 있는데 정부는 자신감이 넘친다. 낙관하는 정부를 탓하고 불안감을 확산하자는 게 아니다. 우리 경제 전반에 우려스러운 상황이 훨씬 많다. 지금 상황이 위기상황임을 자각하고, 냉정하게 해법을 찾자.
임윤규 정경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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