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쿡방, 먹방이 뜨고 있다. 살림살이가 나아졌는지 아름다운 이별, 삶의 마무리에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현재 65세 이상 노인은 전체 인구의 13.1% 밖에 안되지만, 2030년에는 25%에 이른다. 인구 4명 중 한 명이 65세 이상인 고령화사회(maturing society)가 된다.
"100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좋은 날 좋은 시에 간다고 전해라".
유행가처럼 100세시대가 코앞에 다가왔다. 우리는 흔히 잘 먹고 잘 사는 일을 웰빙(wellbeing), 사람답게 늙는 것을 웰에이징(well-aging), 그리고 나이들어 품위있게 죽는 것을 웰다잉(well-dying)이라고 표현한다.
A parliamentary subcommittee has passed the so-called 'well-dying bill' which allows patients with incurable diseases to end their own lives…(국회 소위원회는 불치의 환자가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이른바 '웰다잉법'을 통과시켰다). 국내 영자신문 기사의 일부다.
2016년 1월8일 국회 본회의를 최종 통과한 웰다잉법의 정식 명칭은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이다. 한마디로 웰다잉법은 회생 가능이 없는 환자의 경우 자기 결정이나 가족의 동의에 따라 연명 치료를 합법적으로 중단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요지다. 지금까지 우리는 소생 가망이 없음에도 의사의 사명과 자식의 효심 때문에 불필요한 연명 치료를 계속해 왔다.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해서 의사와 가족이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을 계기로 존엄사 논의가 시작된 지 19년 만에 웰다잉법은 국회를 통과했다. 2년 뒤에 발효되는 이 법은 회생가능성이 없고, 치료해도 회복이 안되며, 사망이 임박한 환자의 경우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등을 중단하고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허용하고 있다.
But our bill, also dubbed the 'well-dying'bill, does not legalize physician-assisted dying…(그러나 웰다잉법으로도 불리는 우리 법은 의사의 도움을 받는 죽음을 합법화하지는 않는다…)고 못박고 있다. 이는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Wellbeing, well-aging, well-dying 같은 매우 그럴 법한 영어 표현은 어디서 왔을까? 웰빙은 우리 주변에서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몸에 좋은 친환경 소재로 만들었다고 해서 웰빙 푸드, 웰빙 사우나, 웰빙 하니문 그리고 건강에 좋은 집은 웰빙 아파트라고 한다. 이런 웰빙을 추구하는 부류가 웰빙족(wellbeing tribe)이다. 그러나 이 말들은 결코 적절한 표현이 못 된다. 영어로 wellbeing이란 단어는 있지만 그 뜻이 high-end(최상의), healthy(건강한), organic(친환경의)과는 직접적 관계가 없다. 웰빙은 wealth(부), welfare(복지), happiness(행복), health(건강) 등 국민전체의 삶의 질 향상을 포괄적으로 뜻한다. 개인보다는 집단적, 사회적 차원의 복지, 행복, 안녕을 가리키는 용어다. 우리는 웰빙을 주로 신체적 건강이나 음식 등의 협의로 쓰고 있다.
2009년 2월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은 연명 치료를 거부하고 아름답고 존엄한 죽음을 몸소 실천한 분이었다. 추기경은 병세가 악화되자 인공호흡기와 같은 기계적 치료에 의한 무의미한 생명연장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런 연명 치료 중단은 웰다잉이 아니라 존엄사(尊嚴死, death with dignity )라고 해야 한다. 축약해 쓰는 편리성이 있다 해도 웰다잉법은 글로벌 시대를 외면하고 우리끼리 쓰는 표현이다. Death with dignity act(존엄사법)가 올바른 법명이다.
세계적으로 보면 네덜란드가 2001년 존엄사법을 제정한 이래 벨기에, 스위스, 콜롬비아, 미국(특히 오리건 주가 제일 먼저 시작했다) 등 존엄사를 허용하는 국가가 늘어나는 추세다. 사실 임종 직전까지 수많은 의료기기에 의존하여 무리하게 생명을 연장하는 일은 당사자는 물론 가족에게도 큰 고통이며 결과적으로 비인간적인 죽음을 초래하게 만든다. 지금 우리사회에서는 품위있고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웰다잉 10계명이라는 것이 있는가 하면 입관체험 프로그램이나 임종준비학교까지 생겨났다. 심지어 묘비명을 미리 준비하는 사람도 있다. 어느 코미디언의 묘비명은 "웃기고 자빠졌네"라든가?
Wellbeing과 더불어 well-aging, well-dying도 흔히 쓰인다. 웰빙은 living well로 쓰고 웰에이징과 웰다잉은 aging well, dying well이 돼야 영어다운 영어다. 어쨌거나 웰다잉법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사전의료의향서(또는 존엄사서약서)에 서명해 둘 필요가 있다. 2009년 7월 28일 오바마 대통령 내외는 국민계몽 효과를 위해 공개적으로 연명의료 중단 유언서(Living Will)에 서명했다. So I actually think it's a good idea to have a living will. 연명 치료 중단은 '소극적 안락사(euthanasia)'이므로 생명존중 사상을 훼손하는 일이 없도록 세심한 조치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김우룡 한국외대 명예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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