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성 넘으려면 '현지화'로 승부해야
까다로운 인허가에 수수료까지… 협의체 통한 공동진출 등 필요
까다로운 인허가에 수수료까지… 협의체 통한 공동진출 등 필요
연 20% 이상의 초고속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중국 의료기기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하려면 국내 기업들이 보다 적극적인 현지화 전략을 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6일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발표한 '국내 의료기기 기업 중국 현지화 진출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으로 수출 중인 의료기기 기업 58곳 중 57%(33곳)는 현지화 진출 계획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현지화 진출 전략은 중국 안에 독자 또는 합자설립으로 생산기지를 현지화해 중국생산 제품으로 인정받는 것을 말한다. 중국에서는 국내 제품에 대한 정의를 '중국 국내에서 생산되며 국내 생산비용 비율이 50%를 넘는 최종 제품'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전략이 중요한 이유는 중국의 특수한 의료환경과 인허가 규제 등 높은 비관세 장벽 때문이다.
중국 의료기기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공립병원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민영병원에 대한 규제 완화로 병원 수는 공립병원이 54%, 민영병원이 46%를 차지하고 있지만, 침상 수와 외래환자 기준으로 보면 공립병원이 시장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 중국은 지난 2009년 정부 프로젝트에 자국산 물품과 서비스를 우선 구매하도록 하는 '바이 차이나' 지침을 발표해 국내 기업의 공공시장 참여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높은 인허가 장벽도 걸림돌이다. 진흥원이 중국에 의료기기를 수출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애로사항을 조사한 결과, 규제로 인한 높은 진입 장벽이 43%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인허가 기간만 1년 6개월에서 2년 이상 걸리고, 허가 수수료만 2등급 의료기기는 약 4000만원, 3등급 의료기기는 5800만원에 달하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반면 중국산 제품의 경우 인허가 절차가 보다 간소하고 수수료도 더 낮다.
이런 특성 때문에 중국 의료기기 시장이 매년 20%씩 성장하는 가운데 국내 기업의 대 중국 수출액 증가율은 9.8%에 머무르고 있다. 의료기기 수출기업 813개 중 271곳만이 중국시장에 진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중국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존슨앤드존슨, GE헬스케어, 필립스, 지멘스 등의 글로벌 의료기기 기업들은 이미 전략적으로 현지화를 통해 시장 점유율을 높여왔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들도 현지화를 통해 비관세 장벽을 극복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최근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두 나라의 협력관계가 긴밀해진 만큼, 산업단지나 합자기업 설립 등 협력을 추진할 적절한 시기라고 조언한다.
고재용 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 선임연구원은 "국내 의료기기 기업이 대부분 중소기업임을 감안하면 공동진출 전략이 필수적"이라며 "중국으로 현지화 진출을 계획 중인 국내 의료기기 기업들이 협의체를 구성하면 중국 산업단지와의 협상에 주도권을 가져오고 진출 시 혜택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중국의료기기협회(CAMDI)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의료기기 시장 규모는 2556억위안(약 46조원)으로, 2009년부터 해마다 평균 20.6% 성장하고 있다. 세계 의료기기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이 6.5%, 한국이 8.4%인 것을 감안하면 중국은 가장 가파르게 성장하는 시장 중 하나인 셈이다. 특히 국민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의료와 건강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어 지속적인 성장이 기대된다.
우리나라 의료기기의 대 중국 수출은 지난해 기준 약 2억5146만달러(약 3000억원) 규모로, 전체 수출의 약 10%를 차지해 미국에 이어 두 번째 수출국이다. 주요 수출품은 초음파영상진단기기와 치과용 임플란트, 소프트 콘택트렌즈, 전산화단층엑스선촬영장치 등이다. 중국에서 수입하는 의료기기는 약 1억3704만달러(약 1600억원)로 전체 수입의 약 5%, 순위로는 4위다. 아직 무역수지에서는 한국이 흑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최근 중국이 비관세장벽을 높이고 있고, 현지 의료기기 기업의 성장세가 빨라 점차 격차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남도영기자 namdo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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