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정부' 열자마자 하나회 해체로 군 개혁
금융실명제 단행·역사바로세우기 나서기도
금융실명제 단행·역사바로세우기 나서기도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26일 영면의 길을 떠났다. 1954년 만 25세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9선 의원을 지내며 한국 민주화의 '큰 산' 역할을 해 온 김 전 대통령은 1992년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경제개혁, 역사청산을 위해 매진해왔다.
금융실명제 도입, 공직자 재산공개, 역사 바로 세우기 등 각종 개혁 정책이 모두 김 전 대통령이 남긴 업적이다.
김 전 대통령은 군사정권을 종식하고 '문민정부'를 열자 마자 군 개혁에 나섰다. 김 전 대통령도 퇴임 후 회고록, 기자회견 등에서 군 내 사조직 '하나회' 척결을 가장 큰 업적으로 꼽기도 했다.
3개월 간 계속된 하나회 척결 작업이 진행되면서 12·12사태, 인사비리, 율곡비리 등과 관련, 전역 조치되거나 해임·전보된 장성만도 50여명에 이를 정도였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2000년 4월 미국 워싱턴D.C.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참모들도 전부 놀라 '그러면 안 된다'고 했지만 그때 군 개혁을 하지 않았다면 국회도 지금처럼 성하지는 못할 것이다. 5년 치적 중 이것 하나만도 굉장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금융·부동산거래 실명제를 실시해 정착시킨 것도 큰 성과였다. 문민정부 이전에도 수 차례 금융실명제를 도입하기 위한 시도는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93년 8월 첫 여름휴가를 청남대에서 보낸 후 특별담화문을 통해 금융실명제를 발표했다. 이른바 '청남대 구상'이다.
금융실명제 도입으로 국민은 모든 금융회사와 거래할 때 가명·차명이 아닌 실명을 사용하고, 금융회사는 이를 의무적으로 확인하게 됐다. 김 전 대통령은 이 제도를 시행하기 위해 대통령 '긴급재정경제명령권'까지 발동했다. 어렵게 시행된 금융실명제는 '검은 돈'을 봉쇄해 부정·부패자금의 통로를 막았다. 금융실명제 도입 이전인 1992년 한국의 지하경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29.1%에 달했지만 도입 직후인 1993년 24.3%로 1년 동안 4.8%포인트가 하락했다. 또 사금융 시장이 위축되면서 서민과 중소기업이 은행을 이용하는 비율이 높아졌고 은행은 다양한 금융상품을 내놓는 등 한국 금융의 선진화 기틀이 마련됐다는 평가다.
금융실명제의 성공을 기반삼아 김영삼 정부는 1995년 부동산 실명제를 도입했다. 차명을 통해 탈세와 탈법으로 부동산 투기를 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으로 음성화된 거래를 양지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지만 아직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직자 재산공개도 김 전 대통령을 시작으로 자리를 잡게 됐다. 김 전 대통령은 취임 사흘째인 1993년 2월27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우리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 우리가 먼저 깨끗해져야 한다"며 일가의 재산을 공개했다. 재산은 17억7822만6070원이었다.
"우리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고 했던 김 전 대통령은 강력한 사정 드라이브를 걸었다.
시발점은 공직자 재산공개로 현재까지도 입법·사법·행정부 고위공직자들의 재산변동 내역이 공개되고 있다. 당시 김 전 대통령에 이어 국회의원, 고위공무원, 군 장성, 판·검사 등이 재산을 공개했지만 전·현직 국회의장이 부정축재 의혹이 드러나 정계를 떠나거나 물러났고, 일부 장·차관이 해임되는가 하면, 정치인과 고위 관료들의 부동산 투기 정황이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 거센 후폭풍이 불기도 했다.
역사 바로세우기 작업도 김 전 대통령이 남긴 업적 중 하나다. 김 전 대통령은 1993년 8월 광복절을 앞두고 조선총독부 건물의 조속한 해체를 지시했다. 광복 50주년이 되는 1995년 8월 15일에 중앙돔 해체를 시작으로 1996년 11월 13일 지상 부분 철거까지 모두 완료됐다.
총독부 청사 철거 논의는 이승만 대통령 집권 때부터 나왔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힘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총독부 건물을 해체하지 않고는 민족 자존심과 정기를 회복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건물 해체를 밀어붙였고 이를 마무리해 우리 역사 바로 세우기에 큰 족적을 남겼다.
이호승기자 yos54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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