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적항암제 '수텐트' 대표적 … 지분수익만 2000만유로
연구자·기업들과 끊임없는 소통 통해 기술사업화 결실
"인력의 전문성 · 전세계 퍼져있는 네트워크 핵심기술"
막스플랑크 생화학연구소 전경. 생화학연구소 기술사업화 성과로 항암 분야 세계적 석학인 악셀 울리히 박사가 개발한 항암제 수텐트 가 대표적이다. 막스플랑크연구회 제공
■ 융합신산업 '기회의 땅' 연다
(2) 독일 막스플랑크연구회 기술사업화 현장
독일의 세계적인 기초연구 기관인 막스플랑크연구회는 일견 시장과는 거리가 먼 연구만 할 것 같지만 굵직굵직한 기술사업화 성과들로 산업 지형도를 바꿔놓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업화 사례는 미국 제약사 '수젠(SUGEN)'이 판매하는 항암제 '수텐트'다. 수텐트는 항암 분야 세계적 석학인 악셀 울리히 막스플랑크 생화학연구소 박사가 개발한 새로운 표적항암제 기술을 이전받아 개발했다. 암세포의 영양 보급로인 혈관을 차단하면서 암세포도 동시에 공격하는 혁신적인 다중표적 항암제 기반 기술이다. 기술이전 당시 막스플랑크와 수젠의 전용실시권 계약 규모는 5억달러에 달했다. 이후 수젠은 미국 화이자에 인수됐으며, 수텐트는 2006년 미국과 유럽에서 위·신장 치료제로 허가를 받아 2010년 10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다.
특허출원 3600건, 기술이전 2200건, 스핀오프 기업 111개, 일자리 창출 2500개, 2013년 기술료 수입 2250만 유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해 '노벨상 사관학교'로 불리는 독일 막스플랑크연구회가 그동안 이룬 기술사업화 성과다.
자연과학, 생명과학, 인문학 분야의 총 80여개 연구소가 연합해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막스플랑크연구회는 매년 20억 유로(약 2조4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5000여 명의 연구 인력이 연간 1만2000건의 연구 논문을 쏟아낸다. 예산의 80% 이상을 정부로부터 지원받지만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운영 원칙에 따라 철저히 독립적으로 운영되며, 연구자들은 철저히 자율성이 보장된 환경에서 과제나 연구비의 압박에서 벗어나 마음 놓고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어 전 세계 과학자들로부터 '꿈의 연구소'라 불린다.
독일 막스플랑크 이노베이션 본사 전경.
막스플랑크연구회에서 나오는 방대한 연구실적과 기술특허들은 기술사업화 전문 기관인 '막스플랑크 이노베이션'을 통해 일괄적으로 관리된다. 이 기관은 과학자들의 연구결과에 대한 상업적 가치와 시장 수요를 토대로 연구성과의 기술이전과 창업 등 사업화 전략을 수립하고, 사업화를 위한 자금 조달까지 맡아 기술 사업화를 위한 전 영역에서 전문적인 지원을 제공한다. '지식은 응용을 앞서야 한다'는 설립 철학에서 알 수 있듯이 막스플랑크연구회는 '돈'과는 거리가 먼 기초과학을 주로 연구한다. 하지만 기술사업화 전담 기관은 독일 및 유럽에서 규모가 가장 큰 응용연구기관인 프라운호퍼연구회보다도 앞선 1970년에 설립했다.
막스플랑크 이노베이션에는 전체 연구소로부터 매년 100여 건의 연구성과가 전화와 서면 등으로 보고된다. 기관에 소속된 매니저들은 이들 성과의 특허 가치와 상업화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해 특허를 출원할 만한 기술을 걸러낸다. 보통 연간 80∼90건 정도의 기술이 특허로 이어진다.
에르셀리우스 대표
욘 에르셀리우스 막스플랑크 이노베이션 대표는 "프라운호퍼의 경우 연 500여 건의 특허 성과를 내놓지만 막스플랑크의 경우 특허와는 거리가 있는 인문학 연구소 등이 포함돼있고 사업화 가능성이 명확한 건에 대해서만 특허 취득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절차를 통해 취득한 특허는 막스플랑크 이노베이션이 총괄해 관리하며, 특허를 활용한 기술이전에 대해 연구자와 대상 기업을 연결하는 단계부터 계약 체결까지 전담해 처리해준다. 막스플랑크 이노베이션은 계약을 통해 발생한 수익의 1%만을 진행비 명목으로 가져가고, 수익의 3분의 1은 막스플랑크연구회, 나머지는 개별 연구소와 연구자에게 돌아간다.
막스플랑크 이노베이션은 2000년대 초부터는 창업에 대한 지원도 시작해 매년 4∼5개의 기업을 창업시키고 있다. 매니저들은 사업 파트너 선정부터 세부적인 사업전략 수립, 자금 조달 계획과 모집 등 체계적인 컨설팅을 제공한다. 창업한 기업에 협회가 보유한 기술을 이전하고 특허료 대신 지분을 받기도 한다.
에르셀리우스 대표는 "막스플랑크에서는 주로 강점을 지닌 생물·생화학 분야 회사들이 많이 창업한다"며 "이 중 7∼8개 회사는 주식 시장에 상장될 정도로 크게 성장해 연구회가 그동안 지분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만 2000만 유로에 달한다"고 말했다.
독일 막스플랑크 분자생의학연구소 전경.
막스플랑크연구회 제공
막스플랑크 이노베이션과 같이 기초과학 연구기관이 별도 사업화 조직을 운영하는 사례는 이스라엘 와이즈만연구소의 사업화 전문 기관 '예다(YEDA)'를 들 수 있다. 1959년 설립된 예다는 2011년까지 총 1700여 개의 특허를 출원하고 76개의 기업을 분사했으며, 2011년 기준으로 약 150억 달러의 파생수익을 기록했다. 국내에서도 기초과학연구원(IBS)이 이를 벤치마킹해 연구성과를 사업화하는 전문기관을 2017년까지 설치하는 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이런 시스템은 연구소와 연구자들이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기술사업화의 전문성을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자신의 '보물'과도 같은 연구성과를 남의 손에 맡기는 만큼 해당 연구소 및 연구자와 전담 기관 간의 강한 신뢰관계가 뒷받침돼야 하며, 과학기술과 사업 양쪽 영역의 높은 전문성을 갖춘 '믿을만한' 인재 영입도 필수적이다.
막스플랑크 이노베이션의 기술사업화 과정도 전문성을 갖춘 매니저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매니저들은 기술의 가치를 판단하고, 연구자들에게 사업화를 위한 기술적 조언을 제공하며, 전 세계에 구축한 네트워크를 통해 사업 파트너를 찾아준다. 이 과정은 전적으로 매니저들의 능력에 의해 좌우된다. 이들은 최소 10년 이상의 경력을 갖춘 해당 분야 전문가들로, 네트워크 강화를 위해 학회 등을 통해 끊임없이 연구자와 기업가들과 소통하고 있다.
에르셀리우스 대표는 "사람과의 관계, 즉 네트워크가 핵심 기술"이라며 "기업이나 연구소에서 일하던 사람들에게 더 나은 급여와 근무조건을 제공해 우수한 인재가 들어와 더 열심히 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막스플랑크 이노베이션의 경우 기관의 핵심 경쟁력이 인재다 보니 인건비 등 운영 예산이 상당히 큰 편이다. 지금은 이윤을 창출하고 있지만, 설립 이후 20년 넘게 적자를 내며 지원금을 받아 운영됐다. 막스플랑크연구회가 사업화나 수익창출보다는 순수 연구에 더 집중하면서 신뢰를 갖고 오랜 기간 꾸준히 투자한 덕분에 지금같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독일 뮌헨에 위치한 막스플랑크 연구소 행정 본부. 건물 입구에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 조형물이 서 있다.
막스플랑크연구회 제공
에르셀리우스 대표는 "막스플랑크 이노베이션이 막스플랑크연구회 전체를 대리해 기술사업화를 추진하는 것이 효율적인지에 대해 독일 정치권에서도 아직 논쟁이 있다"며 "하지만 사업화를 원하는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직접 고급인력을 고용하는 비용을 감안하면 이를 충족할만한 성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창조과학부 기초·원천 연구성과 사업화 전문기관인 연구성과실용화진흥원 강훈 원장은 "기초·원천 R&D 성과의 기술사업화를 촉진하려면 기술과 시장, 그리고 비즈니스모델의 3박자를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기술사업화는 4륜 구동 자동차와 같아서 기술 공급자(연구자), 기술 수요자(기업), 시장 등 어느 하나에 치우침 없이 앞뒤 바퀴가 모두 균형감을 맞추며 앞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진흥원은 기술사업화 전문기관으로서 사업화 가능성이 높은 유망 기술을 자체 발굴, 기업 수요와 매칭하고 기술사업화로 연계되도록 지원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유망 기술 발굴 프로세스 구축과 기술 수요 발굴 프로세스 다각화 등 공급 측면과 시장 수요를 모두 고려한 기술사업화 지원체계를 구축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