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사실상 종식… '포스트 메르스' 과제는
질병관리본부 산하 보건연구원, 위기대응 한계
독립·전문화된 '범부처 총괄기구' 가동 필요성
질병관리본부 산하 보건연구원, 위기대응 한계
독립·전문화된 '범부처 총괄기구' 가동 필요성
올여름 전 국민을 공포에 떨게 했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는 사실상 종식 국면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전 세계 곳곳에서 창궐하고 있는 새로운 전염병의 위협은 여전한 상황이다. 최근 아프리카에서는 종식된 것으로 알려졌던 에볼라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가 다시 나오고 있고, 가까운 홍콩에서는 독감 사망자가 지난 한 달간 100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중동에서 메르스 환자가 다시 유입될 가능성도 여전하다.
전문가들은 '제2의 메르스' 사태를 막기 위해선 신·변종 감염병 위기 대응의 근간이 되는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체계부터 손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체적인 감염병 관리시스템부터 감염병 의심 환자 분류와 진단, 치료, 확산 방지 등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핵심 무기'가 되는 기초원천기술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분산된 감염병 R&D 기능=국내 감염병 대응과 예방을 담당하는 질병관리본부의 전체 R&D 예산은 2013년 약 250억원에서 올해 약 520억원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하지만 이 중 감염병 관련 R&D 예산은 고작 115억원으로, 전체 예산의 20%를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줄기세포 재생연구 137억원을 비롯해 만성병관리기술 개발, 한국인유전체 분석기반, 여성건강 융복합기반 등 비감염병 R&D 비중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외에 감염병 관련 R&D는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감염질환 중개기반연구 △감염질환 중개중점연구 △신종인플루엔자범부처사업단 △난치성결핵 극복기술 개발 △다제내성감염질환 대응기술 개발 △면역백신 개발 등의 사업을 217억원의 예산을 편성 받아 진행하고 있으며, 미래창조과학부가 '바이오나노헬스가드연구단' 등에 83억원의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메르스 사태 이후 정부는 '다부처 공동 감염병 조기감시대응체제 구축사업'에 약 100억원을 추가로 투입하는 등 감염병 R&D 예산을 올해 472억원에서 내년 610억원으로 29.4% 늘리는 계획을 세웠다.
◇감염병 대응과 R&D 기능 분리 필요=내년 감염병 R&D 예산 증가 계획을 발표한 지난 10일 국가과학기술심의회에서 황교안 국무총리는 "최근 메르스 사태와 같은 현안 대응에 있어 과학기술적 해법 제시가 중요하다"며 "국가적 감염병 위기에 대응한 R&D 투자는 장기 전략에 따라 이뤄져야 하는 만큼 국가과학기술심의회를 중심으로 체계적인 '국가 감염병 R&D 투자전략'을 마련해달라"고 지시했다. 신종 감염병 대처를 위해 범부처 R&D 컨트롤타워인 국가과학기술심의회를 중심으로 관련 부처가 함께 민간 부문의 R&D를 통괄하는 로드맵을 구축, 체계적·선제적 투자를 수행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보건의료 분야 R&D가 성과로 이어지려면 기초연구부터 임상시험 등을 통한 검증과 허가 과정을 거쳐 상용화하는 단계까지 유기적인 지원체계가 필수적이다. 미국의 경우 보건의료 R&D를 총괄하는 컨트롤타워인 국립보건원(NIH) 산하의 국립알러지감염성질환연구소(NIAID)에서 감염병 R&D를 전담한다. NIAID의 감염병 R&D 예산은 한해 44억달러(2014년 기준)에 달한다. 원화로 5조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규모 면에서는 국내와 비교조차 어려운 수준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단순한 예산 규모의 문제보다는 독립적인 권한을 갖고 체계적인 R&D를 수행할 수 있는 구조에서 국내 환경과 차이가 있다고 분석한다.
미국의 경우 감염병 대응과 예방은 보건성(HHS) 산하의 독립적인 실무 조직인 질병통제센터(CDC)가 담당하고, R&D 기능은 미국국립보건원(NIH)이 담당하는 방식으로 역할이 나뉘어 있다. 유럽연합(EU) 역시 감염병 대응활동은 질병예방통제센터(ECDC)에서 수행하고, R&D는 '호라이즌 2020' 프로젝트를 통해 감염병 백신 및 치료제 개발 등 다자간 공동연구에 자금을 지원한다. 특히 EU는 여러 국가들이 연합된 특성상 각 국가의 독립적 감염병 관리체계가 있지만, R&D 분야에서는 유기적 연계가 가능한 협력 네트워크가 체계적으로 구성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감염병 R&D 컨트롤타워 세워야=우리나라는 미국 CDC에 해당하는 질병관리본부가 감염병 대응·예방 기능을 수행하고, 하부조직인 국립보건연구원이 감염병 R&D까지 수행하고 있어 위기대응 능력이 분산되고 있다. 또 각 부처에서 따로 감염병 관련 R&D를 진행하다 보니 분야 간 협력을 통한 융복합 연구 등 통합적이고 체계적인 연구 지원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현재 수행 중인 범부처 사업 역시 목적만 공유할 뿐, 실질적으로는 예산을 나눠 부처별로 개별적인 사업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때문에 국내에서도 감염병 보건의료 분야의 R&D 기획과 예산 조정은 물론, 연구주체간 관계 조정과 인력 지원 등 공공부문 R&D 역량을 모두 집약할 수 있는 '범부처 상위 컨트롤타워' 설립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최근 열린 '국가적 감염병 위기 대응을 위한 과학기술 역할 강화 방안' 토론회에서 송대섭 고려대 약대 교수는 "감염병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생명공학뿐만 아니라 다양한 과학기술 분야와의 융합적 접근을 통한 해결방법 개발이 필요하기 때문에 범부처 차원의 다학제 연구가 필요하다"며 "방역 전담 부처와 별도로 과학기술 투자를 담당하는 부처를 중심으로 감염병 R&D 컨트롤타워 기능을 수행토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도영기자 namdo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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