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학 칼럼] 바이러스와 의과학 연구](http://contents.dt.co.kr/images/201506/2015062402102251607001[1].jpg "[의과학 칼럼] 바이러스와 의과학 연구")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로 인해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되돌아보면 그동안 인류는 여러 가지 감염병에 끊임없이 노출되어 왔다. 2002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2009년 신종플루, 2014년 에볼라가 그 해의 대표적인 감염병이었고 이제는 메르스의 시대가 온 듯하다.
잘 알려진 것처럼 메르스는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하는 질병이다. 원인 병원체는 코로나바이러스인데 박쥐에 감염하는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MERS-CoV)가 낙타를 거쳐서 사람에게 전파된다. 코로나바이러스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어서 사스도 코로나바이러스의 일종인 사스 코로나바이러스(SARS-CoV) 감염에 의해 발생한다. 사실 인류는 오래 전부터 지속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어 왔다. 단지 그것이 메르스나 사스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가벼운 감기만을 일으키는 사람 코로나바이러스(HCoV)였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사람 코로나바이러스는 리노바이러스에 이어 감기의 두 번째로 많은 원인이므로 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사람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감기에 걸렸다가 회복된 경험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사람 코로나바이러스에 오래 전부터 노출되고도 잘 살았던 인류가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에 대해서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의 주요 숙주는 박쥐이다. 그러므로 주요 숙주가 사람인 사람 코로나바이러스는 인간에게 매우 익숙한 바이러스이지만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만나는 바이러스가 된다. 그래서 인류의 면역체계는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항할 준비를 충분히 갖추고 있지 않다. 반대로 바이러스의 입장에서는 처음 만나는 숙주에게 적응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사람과 바이러스 모두에게 불행한 동거가 시작된 셈이다.
얼핏 보면 그동안 의과학 연구자들과 보건의료 종사자들이 메르스를 막기 위해 준비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메르스에 특이적인 치료제가 아직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메르스에 대한 사실들이 어떻게 밝혀졌는가를 생각해 보고 또한 환자들의 치료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관련 연구자들과 의료 종사자들이 그동안 많은 일을 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메르스의 원인 병원체가 호흡기로 전파되는 코로나바이러스라는 것, 그 코로나바이러스는 사람 코로나바이러스와는 다른 종류라는 것,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가 원래는 박쥐에 감염하는 바이러스라는 것 등은 의과학 연구의 발전이 없었다면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이러한 지식을 토대로 질병의 기전에 대한 통찰력을 갖게 됐으며 메르스를 정확히 진단할 수 있었다.
또한 특이적인 치료제는 비록 없을지라도 바이러스성 호흡기질환에 대한 대증적 치료 기술의 발달로 인해 많은 환자들이 도움을 받고 회복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동안의 의과학 연구들도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다 나은 예방법과 치료법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므로 감염병을 비롯한 다양한 질병의 극복을 위한 의과학 연구의 필요성과 가치를 인정하고 꾸준하고 적절한 지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윤주천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교수(MRC 조직손상방어연구센터)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