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인문학] `허공에 집 지어 볼까`](http://contents.dt.co.kr/images/201505/2015052902102251607001[1].jpg "[디지털인문학] `허공에 집 지어 볼까`")
수수께끼 하나. '허공에/ 구멍으로 지은 집' 누구의 집일까. 지난겨울에 충북대학교에 강연을 갔다가 권정우 시인에게서 시집을 선물로 받았다. 제목은 '허공에 지은 집'. 나는 깜짝 놀랐다. 신기하게도 내가 그날 했던 강연의 핵심과 딱 맞는 제목이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한창이던 기원전 414년, 아테네의 두 노인이 집을 떠났다. 시끄럽고 피곤한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곳을 찾아 평화롭게 깃들고 싶었다. 새들이 모여 있는 곳에 도착하자, 한 노인이 말했다. "여기에서 새들과 살면 어떨까?" 그때 다른 노인의 머리에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허공에 집을 짓고 울타리를 쳐서 도시를 건설하자는 것이었다. "새들이여, 그러면 당신들은 인간을 지배하게 될 것이고, 신들도 굶길 수가 있소. 마침내 세상을 지배할 권력을 쥘 것이오!" 그는 새들을 위한 원대한 구상을 펼쳐보였다. 허공에다 새들의 도시를 세우면, 새들은 인간이 신들을 위해 태우는 제물의 향기를 중간에서 가로챌 수가 있다. 인간들의 제물을 더 이상 흠향할 수 없게 된 신들은 쫄쫄 굶게 될 것이고, 허기진 신들은 새들에게 항복하고 권력을 넘겨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허공에 지은 새들의 나라는 '구름뻐꾹나라'.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작품 '새'의 내용이다. 그는 전쟁에 진절머리가 난 아테네인들에게 무대를 통해서나마 희망과 위안을 주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전쟁을 고집하며 민중들을 고통에 신음하게 만드는 권력자들을 향해 유쾌한 비판과 환상적인 반란을 꿈꾼 것일까. 무대 위에 나타난 온갖 새들은 인간들이 쏘아대는 화살에 대한 두려움과 하늘에서 벼락을 내리치는 신들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고 자랑스럽게 날개를 퍼덕이더니 마침내 세상을 지배할 권력을 획득한다. 오랜 세월 새가슴에 마음을 졸이며 살던 새들은 웅비하며 포효하고 기쁨에 겨워 환호한다.
땅에서 살아갈 희망을 잃은 빈자들을 향한 희망의 메시지는, 아리스토파네스의 '새'가 공연된 후 400여 년이 지나, 이스라엘 땅 나사렛에 살던 한 목수의 입을 통해서도 나왔다. 그의 기술은 눈에 보이는 집을 짓는 것이 아니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그는 정의와 사랑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하늘에 집을 짓겠다고 했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면서도 부자가 되지 못하더라도 절망하지 말라고 했다. 설령 이 땅에서 고통 받고 쓰러지더라도 의롭게 산 그들에게는 하늘의 영원한 집이 마련될 테니, 이 땅의 짧은 삶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찰나의 것에 대한 탐욕에서 벗어나 구별되고 거룩하게 살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의심 많은 제자 도마가 물었다. "선생님께서 어디로 가시겠다는 건지 저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도마도 목수였다고 한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도마는 나중에 인도로 갔단다. 인도의 왕 군다포로스의 궁전을 짓기 위해서였다. 그는 막대한 건설비용을 두 차례나 받았지만, 그것을 모두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 써버렸다. 왕이 물었다. "궁전은 다 지었는가?" "예, 다 지었습니다." 기대에 한껏 부푼 왕은 궁전을 보여 달라고 했다. "그러나 폐하, 지금은 궁전을 보실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폐하의 궁전을 여기 이 땅이 아니라, 저기 하늘나라에 지었기 때문입니다." 도마는 투옥되었다. 얼마 후 군다포로스 왕의 동생이 죽었다. 그리고 며칠 후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났다. 부활한 그는 다짜고짜 형에게 요구했다. "형, 하늘나라에 지은 그 궁전 나에게 파시오." 그 후 두 형제는 가난한 자들을 섬기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재물을 이 땅이 아니라 저 하늘에 쌓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아, 수수께끼의 답? 그 시의 마지막 구절이다. "거미는 똥구멍으로/ 당당하게 집을 짓는다." 시인은 허공에 집을 짓는 거미에게서 비움과 채움의 이미지를 포착한 것 같다. 그는 또한 아리스토파네스의 새와는 다른 허허롭게 날아다니는 새도 보았다. "새는// 발자국도 남기지 않으려// 허공에 난 길을 가고// 그림자마저 발에서 떼어// 지상에 남겨 둔다."
김 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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