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인문학] 헐크가 `녹색`인 이유](http://contents.dt.co.kr/images/201505/2015051502102251607001[1].jpg "[디지털인문학] 헐크가 `녹색`인 이유")
전공 교수
우리는 흔히 오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한다. 일 년 열두 달 중에서 기후적으로 가장 온화할 뿐 아니라 아름다운 신록이 있기 때문이다. 이 찬란한 오월과 신록을 예찬하지 않고 어찌 시인이라 이를까.
풀잎은 풀잎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 초록의 서정시를 쓰는 오월 (이해인)
오월의 신록은 너무 신선하다. / 녹색은 눈에도 좋고 / 상쾌하다. (천상병)
뜻 없이 계절은 신록이어서 / 미치도록 푸르게 소리지르면 / 고향에 못 가 / 슬픈 사람들 / 온몸에 푸른 멍든다. (문정희)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 하얀 손가락에 끼여 있는 비취가락지다. (피천득)
초록은 심리적으로 생명력과 성장, 자연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우리는 초록색을 보며 신선함, 편안함, 건강, 평화, 안전, 여유 등을 느끼게 된다. 시인들의 신록 예찬에도 이러한 초록의 심리가 반영되어 있다. 특히 문화적으로 아랍권 국가에서 초록은 신성한 색이다. 거의 모든 아랍권 국가의 국기에는 초록이 빠짐없이 들어간다. 하다못해 그들의 스포츠 국가대표팀의 유니폼도 녹색이 지배적이다. 아랍문화권이 이토록 초록에 애정을 갖는 것은 모래사막에서 오아시스로 상징되는 자연의 색이 귀할 수밖에 없는 환경적 요인에서 비롯될 것이다. 인간사가 항상 그러하듯, 초록에 긍정의 심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초록의 순도가 낮아지고 탁해질 경우나 검붉은 색과 어울릴 경우, 우리는 창백함과 질병, 공포, 죄책감 등을 느낀다. 헐크나 슈렉 등 괴물의 몸이 녹색인 것은 다 그런 연유이다.
녹색의 보색은 빨강이다. 원래 보색관계에 있다는 것은 색상환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색을 말한다. 이 때 두 색은 강한 대비를 이루고, 시각적으로 강렬하고 화려한 느낌을 준다. 이처럼 서로 대립하면서 동시에 서로를 보완하는 보색을 잘 활용한 미술가 중의 한 사람이 바로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아였다.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에서 화가는 비극적인 살육의 드라마를 붉은 침대와 녹색의 배경을 통해 강렬하게 보여주었다.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에서 들라크루아보다 녹색과 빨강의 대비를 훨씬 많이 이용했다. 영화 전체의 주조색이 녹색과 빨강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이다. 학창시절 잘못 놀린 세 치 혀 때문에 이유도 모른 채 15년 동안 감금된 한 샐러리맨의 처절한 몸부림과 사랑하는 누이의 죽음이라는 트라우마에 고착되어 괴물이 된 남자의 잔인한 복수가 이 두 색을 통해 효과적으로 관객에게 전달된다.
빨강과 녹색 외에도 이 영화에서 조심스레 사용된 색은 보라와 흰색이다. 우선 보라색은 한대수가 납치되던 장소에 남겨진 우산, 이우진이 전달하는 상자와 손수건, 댐에서 자살하는 수아의 옷 등에 사용됐다. 왕실의 색이라 불리는 보라색은 교황의 옷이나 영국 왕실의 옷과 왕관 등의 장신구에 주로 사용된다. 그런 점에서 보라색은 고귀함과 화려함, 신비스러움 등을 연상시키고, 동시에 우리에게 고독과 우울, 상처, 갈등, 애증의 느낌을 준다. 감독은 영화 속 소품에도 보라색의 심리를 잘 활용하여 극의 밀도와 관객의 몰입도를 높인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온통 흰색이다. 하얀 눈을 맞으며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는 한대수와 미도, 눈 덮인 황량한 산맥. 감독은 비극적인 사건에 휘말린 부녀의 미래를 흰색의 심리적 상징인 구원, 용서, 깨끗함, 순수를 통해 암시하고자 한다.
그의 또 다른 복수 시리즈인 <친절한 금자씨>에서도 교실의 커튼에서 비치는 햇살, 눈, 흰 비닐, 두부 케이크 등을 통해 흰색의 심리를 잘 활용하고 있다.
미술과 영화 외에도 색채 심리는 우리의 일상에서 활용되고 있다. 스포츠 경기에서 많은 선수나 팀이 빨강을 선호하는 것이나 일본에서 가로등을 파란색으로 했더니 범죄율이 떨어진 사실 등이 그 실례이다. 자살다리라 불리던 템스 강 다리의 색을 초록색으로 바꾸자 자살률이 34%나 떨어졌다는 교훈을 마포대교에 활용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 매번 선거에서 이기는 정당과 패하는 정당의 차이를 왜 색채 심리의 차원에서 분석해 보지 않는지 그 이유는 더 더욱 모르겠다.
김승환 조선대 시각문화큐레이터 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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