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농업 + IT 클러스터 '그린포트' 구축
식물생장 데이터 기반해 자동화 시스템 갖춰
설비 등 전문인력 수요로 젊은층 농촌 유입도
식물생장 데이터 기반해 자동화 시스템 갖춰
설비 등 전문인력 수요로 젊은층 농촌 유입도
■ `미래농업` 길을 열어라
농업·IT 융합현장을 가다 (1)
농업은 기술 융합과 첨단화를 통해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미래 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 특히 세계 최고 수준인 국내 IT 기술과 첨단 과학기술을 농업분야에 융합한다면 한 차원 높은 기술과 산업의 내일을 열 수 있다.
본지는 농업과 종자, 유전자원, 식품, 헬스케어를 연계한 '생명산업'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다는 판단 하에 해외 농업산업 현장을 취재하고 한국형 기술발전 모델을 제시하고자 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서 차로 40여 분을 달려 도착한 덴하그(Den Hagg) 남부지역. 드넓게 펼쳐진 초지에 유리온실이 빽빽이 들어선 광경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 지역은 네덜란드 정부가 농업 연관 산업과 연구소를 집중 육성하기 위해 조성한 4개 클러스터인 '그린포트(Greenport)' 중 하나다.
이곳 단지에서 호접란을 생산하는 식물공장 '터락(Ter laak)'사의 시스템을 총괄 관리하는 WPS사의 로프 반 솔루션 컨설턴트의 안내로 식물공장 내부로 들어가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이날 외부 기온은 섭씨 8도 정도로 다소 쌀쌀했지만 내부는 겉옷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따뜻했고, 육묘와 현란한 색의 꽃을 피운 호접란 화분이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쉴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넓은 공장 안에서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점이었다.
12㏊에 이르는 이 식물공장에서는 연간 600만 개의 화분이 생산된다. 이날 하루 출하량만 해도 1만 개. 그러나 근무자들이 휴식 시간에 자전거를 타고 이동해야 할 정도 넓은 이곳 작업장에서 근무하는 인력은 기껏해야 30여 명이다. 이러한 고효율의 비결은 첨단기술이다.
이 식물공장은 호접란 생육 관련 데이터를 바탕으로 태양광과 인공광을 이용해 기온과 습도 등을 생육 단계별로 최적화한 환경을 갖췄다. 뿐만 아니라 모종에서 꽃을 피우는 성장 과정은 물론 분류, 패키징, 출하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이 IT 기반 자동화 장비를 통해 이뤄진다. 이곳에서 호접란 화분은 모종 심기→물→쿨링룸 이동·성장→이중 화분→지지대 꽂기→분류→패키징→출하 과정을 거쳐 밖으로 나간다. 이 과정에서 사람 손길이 필요한 것은 오로지 지지대 꽂기와 패키징 체크 작업뿐, 전 과정이 자동으로 이뤄진다.
자동화 시스템은 단순히 기계에 의해 진행된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세밀한 데이터에 기반해 식물이 가장 잘 자라는 환경을 만들고 생육 과정을 자동화해 균일한 상품을 대량 생산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이 WPS사가 개발한 '피노믹스'(표현체학) 기반 자동화 시설이다. WPS는 네덜란드의 농업IT 융합모델을 정립한 대표 업체로, 원예자재 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피노믹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피노믹스는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하지만 네덜란드를 비롯한 농업 선진국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는 개념이다. 영상, ICT, 로보틱스가 결합한 개념으로, 식물의 생김새(표현)나 기능을 육안을 대신해 기계가 측정해 데이터를 확보한 후 실제 식물 성장에 적용하는 혁신적 기술이다.
이곳 호접란 공장은 WPS가 3D카메라 등을 활용해 자체 획득한 식물 생장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공광, 쿨링룸, 온실, 컨베이어벨트 등을 설계했다.
공장에서는 로봇이 바크(나무껍질로 만든 일종의 인공 토양)에 모종을 심고, 모종 화분이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이동하면 물이 자동으로 뿌려진다. 꽃을 피우려면 12℃ 이하 저온에서 자라야 해 쿨링룸으로 이동한다. 이후 꽃대가 올라오면 이중 화분에 자동으로 옮겨져 지지대를 꽂는다. 지지대를 꽂는 작업은 사람이 직접 하는데 이 역시 앞으로는 로봇이 대체할 예정이다.
화분 바닥에 부착된 RFID 칩에는 모종을 심은 시기, 이파리 개수, 꽃 색깔 등 다양한 정보가 담겨 있다. 화분의 고유 정보를 모두 담은 바코드인 셈이다. 이 바코드를 통해 공장에서 상품별 분류가 가능하고 농장주는 제품 생산 현황과 재고 파악은 물론 생산량 예측까지 한번에 할 수 있다. 도매상과 소비자도 이 정보에 따라 특정 꽃 색깔과 크기의 상품을 주문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의 가장 큰 장점은 제품의 균일성을 확보해 생산성이 높아져 농장은 안정적인 수입 확보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고용창출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시스템을 갖추려면 설비생산 업체의 인력이 필요하고, 공장에서도 단계별 관리인력을 보유해야 한다.
얼핏 농장 인력이 줄어 농민 감소로 이어질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는 전문화된 인력이 더 필요해 젊은층의 농촌 유입을 유도할 수 있다. 또 데이터 획득 연구, 자동화 장비 개발·설치 등 산업을 키워, 디지털농업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
요한 크리프 WPS사 R&D팀 리더는 "피노믹스는 현재와 미래 네덜란드 농업의 근간이라 할 만큼 중요한 분야"라며 "연구원들은 수백 수천번의 실험과 시행착오를 거쳐 식물 생장 관련 필수 데이터를 뽑아내고 이를 바탕으로 농업에 새로운 생산성과 품질관리 방법을 제공해 높은 생산성과 부가가치를 만들어낸다"고 밝혔다. 덴하그(네덜란드)=
박미영기자 my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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