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포럼] SW 대·중기 협업체계 필요하다

프린트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IT특성 고려 않은 현 조달체계 문제 우려
입찰 관련 잡음 해소하고 전문기술업체 양성하도록
발주체계 전환 시급 상생 생태계 만들어야
[포럼] SW 대·중기 협업체계 필요하다
김숙희 솔리데오시스템즈 대표 SW공제조합이사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쓴 마이클 샌델 교수는 정의(正義)의 개념을 여러 가지 사례로 설명하면서 그중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하는 '목적론적 정의'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대학의 존재목적은 학문연구와 인재 양성이다. 만약 학교가 기부 입학을 조장한다면 원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돈 장사를 하는 곳이기에 정의롭지 못하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 곧 공동체는 여럿이 공존해야 하므로 '최고의 지고지순한 미덕(美德)'을 공동의 선(善)으로 삼아 이루도록 고민하고, 예상되는 부와 권력의 독점, 시장의 왜곡 같은 도덕적 한계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질서가 무너지고 '불의'가 정의로 둔갑하는 경우가 있다면 정부가 개입한다. 이것이 곧 '최고의 정의(Justice)'라는 것이다.

2015년 1분기 공공정보화사업 수주전이 한창이다. 각 부처에서 요구하는 적용기술과 사업범위에 따라 시스템통합(SI)사와 소프트웨어(SW)업체 간 컨소시엄이 구성되고, 자신에게 유리한 주사업자 쪽으로 흩어져 어제의 적이 오늘의 아군이 되기도 하는, 이합집산 전쟁터가 따로 없다.

우리나라 공공공사 발주는 예산절감, 품질보증, 공정경쟁이라는 3가지 목표를 두고 심사해 낙찰 또는 수의계약제도로 운용한다. 그러나 올해 총 5조2000억원의 공공정보화 예산을 갖고 5000여 업체 간에 벌어지고 있는 입찰구도는 '경쟁'이 갖는 긍정적 효과보다 부작용과 문제점이 많아 이에 대한 진단과 해결이 시급하다는 게 필자의 견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차세대먹거리 까지 고려해야 하는 IT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반 산업분류 평가시스템과 유사하게 시행하는 현 조달정책에선 글로벌 수준의 IT 인력과 전문 업체를 키우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세계는 지금 전 산업계에 사물인터넷(IoT), ICT, 핀테크, 클라우드 등 신기술 패러다임변화에 대응하는 정책과 전략을 세우느냐 아우성이다. 그러나 파견인력 한사람이 아쉬운 국내 업계 현실에서 신기술 연구개발팀을 별도로 둘 업체는 그리 많지 않다. SW개발이 빠진 창조경제의 미래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13년부터 중소기업 육성을 주목적으로 한 'SW산업진흥법' 개정안이 발효돼 시행 중이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중소기업들이 창업, 성장, 안정화 단계에서 만족해 한다는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이전에는 중소기업이라 해도 업무의 이해도, 전문성, 기술력 만 있으면 대기업과의 협력이나 틈새시장을 통해 글로벌 기술업체로 성장한 사례가 많았다. 몇몇 당찬 기업들은 대기업과의 진검승부에서 가끔 이기기도 해 중소업계가 '영광의 깃발'을 세우며 내 일처럼 기뻐했던 날도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가뜩이나 척박한 시장생태계가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는 사막이 되어 간다고 아우성이다.

아프리카 사파리에 사자가 잠을 잘 때는 사방이 고요하다. 사자는 배고플 때만 적당한 사냥감을 찾아 사냥하고 그만 둔다. 잠이 들면 토끼가 머리로 기어 올라와도 참아준다. 그런데 사자 대신 하이에나들이 왕 노릇할 때는 늘 사방이 시끄럽고 어지럽다. 주인 없는 중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매출 패권전쟁 때문이다. 일부 규모 있는 SI업체는 전문, 비전문 따지지 않고 민원, 공간정보, 재정, 법제, 우정, 국방, 하드웨어(HW) 등 전 분야에 개입한다. 어떤 업체는 중소 전문업체가 수년간 주사업자로 있는 사업만을 찾아 사냥한다. 사용하는 고전적 수법은 먼저 경쟁업체와 협력하고 있는 업체의 주력들을 스카웃, 상대전력을 무력화시키는 것부터 시작한다. 급조된 컨소시엄은 전문성이나 기술력보다는 회사규모, 브랜드, 가격을 앞세워 입찰을 따 낸다.

이 산업이 어떻게 진화할 것인지, 언제 대한민국 전자정부 대표선수가 탄생할 지, 전문가그룹은 침묵한다. 또 다른 문제는 이 중차대한 사업이 단 20여 분 미만의 수박 겉핥기식 제안설명회에서 승패가 결정된다는 것과, 낙찰이 되도 안심할 수 없는 입찰시비다. 정당한 이의제기는 당연하나 매 입찰결과에 대해 자격시비와 입찰가이드라인을 트집 잡을 경우 이는 사업지연과 비용발생으로 연결된다.

과거 PM 한사람과 소수의 사업관리 인원 그리고 하도급 인력만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대기업식 개발방식이 어떠한 문제점이 있는지 알고 있는 담당 공무원은 규정에 묶여 할 말을 못한다. 이런 사업들이 언론에서 보도하는 '창조경제'이고, '인기 민원시스템'이 되어 '전자정부수출'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오히려 그들의 '부실시공', '적자경영' 같은 후유증이 있을 것이라고 걱정하지만, 정부가 이러한 상황을 진단해 전문기술업체를 개발, 보호, 육성하는 방향으로 'SW산업진흥법'과 발주체계를 시급히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는 미약하다.

법과 제도의 개정이 당장 힘들다면 그 대안으로 기술평가점수 정량화, 개발자 참여비율 강화, 현장공무원의 평가심사원제 그리고 사업 주체인 주관기관 의무평가비율제 같은 적극적인 시장개입과 개선책을 내놔야 한다. 전문가들은 SW중심사회를 정착시키기 위해 대기업이 가능한 한 해외 시장과 대형프로젝트에 중견·중소기업과 협업체계로 상생 진출하는 시장관리 제도를 정책화할 것을 권한다.

그럼 보자. 암벽 타기를 비즈니스와 비교하는 사람들이 있다. 동호인들은 자신이 아무리 베테랑이라 해도 등반 중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런데도 이 스포츠가 인기가 있는 것은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추락에도 안전하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 안전에 대한 믿음을 주는 것이 생명줄, 바로 로프다. 외줄에 연결된 동반자가 추락을 할 때 지면이나 바위로 충돌하지 않도록 잡아주는 생명줄은 등반하는 모두에게 심리적인 안정을 준다. 모든 산업을 통해 정부와 대기업은 중견·중소기업의 '생명줄'이 될 수 있다. 정부는 법, 제도라는 큰 산과 같은 보호막으로, 대기업은 그 큰 덩치와 파워로 여러 줄의 로프를 끌고 나간다. 대기업의 로프에 함께하는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이 정상으로 전진할 수 있도록 지켜주고 끌어올리는 튼튼한 안전장치다.

바로 '상생'과 '정의'라는 공동체가 살아가는 세상이다. 구겨진 우리의 자화상이 '정의로운 공동체'로 바뀌어 함께 웃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한다.

김숙희 솔리데오시스템즈 대표 SW공제조합이사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