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형 칼럼] 산업계의 `우애 좋은 형제`](http://contents.dt.co.kr/images/201503/2015030902102251661001[1].jpg "[이근형 칼럼] 산업계의 `우애 좋은 형제`")
고대 제사에 사용하던 용기를 보면 다리가 세 개인 경우가 많다. 이를 '정(鼎)'이라고 부르는데, 각 다리는 하늘과 왕, 백성을 상징했다고 한다. 이는 균형과 조화를 뜻한다. 이 중 하나의 다리라도 부러지면 제기는 한쪽으로 쓰러지고 만다.
고 리영희 교수는 저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에서 경쟁과 견제 속에서도 조화와 균형을 강조하고 있다. 한쪽 날개가 부러지면 아예 날 수 없고, 날다가도 추락하게 된다. 사회가 한쪽으로 치우치면 '건강성'을 잃고 발전하지 못한다는 점을 우려했다.
전 세계 산업계는 무한경쟁 시대에 진입해 있다. 동지와 적의 구분도 사라졌다. 기업들은 어느 때보다 '생존'을 강조하고 있다. 주위를 둘러볼 여유조차 없다. 잠시 눈을 돌렸다가는 시장에서 쫓겨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조화나 균형은 사치스러운 얘기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 남들보다 앞서 기술과 시장을 개발하고 최상단에 서 살아남는 것만이 지상과제가 됐다.
우리 기업들의 상황은 더 극단으로 내몰리고 있다. 국내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10년 뒤에도 지금 같은 모습이라고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넘겨받은 제조 강국의 위상은 이제 '블랙홀'과 같은 중국에 빨려 들어가고 있고, 애플이나 구글처럼 새 시장을 만들고 미래 비전을 제시하지도 못하고 있다. 앞뒤의 장벽에 막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미 스마트폰 1위 삼성전자는 애플에 다시 선두 자리를 내줬고, 현대차는 여전히 5위권에서 맴돌 뿐만 아니라 미래 경쟁력마저 의심받고 있다.
세계 1위로 전 세계 바다를 호령하던 대한민국 조선산업은 그 자리를 중국에 내주고 일본에 쫓기고 있다. 더구나 노사 문제에 발목이 잡혀 한 걸음 더 나아갈 기회마저 잃을지 우려된다. 이뿐 아니라 철강과 정유·화학, TV·디스플레이, 반도체, 통신 등 어느 산업 하나 안심할 곳이 없다.
무서운 것은 이런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내부 경쟁만은 여전하다는 것이다. 세계 1~3위를 달리고 있는 국내 조선 3사는 적을 눈앞에 두고 제 살 깎기 경쟁에 여념이 없어 스스로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어차피 우리 몫이 될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를 놓고 형제들끼리 저가 경쟁을 벌이다 스스로 가치를 떨어뜨리고 공멸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다.
최근 삼성전자와 LG전자 사이에 벌어지는 '세탁기 파손'을 둘러싼 소송 공방도 그렇다. 누구의 잘못이 큰지 진실이야 따질 수 있다지만, 굳이 이렇게 해야 하나 싶은 게 이 사태를 지켜보는 여론이다. 한쪽은 사과에 진정성을 담고 다른 쪽은 큰 품으로 안아줬으면 쉽게 끝이 났을 일을 여기까지 끌고 왔다는 것 자체가 일반 국민의 시각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던 이야기인 '우애 좋은 형제'의 내용은 시사하는 게 크다. 형은 아우가 끼니를 거르지 않나 잠을 설치고, 아우는 형이 걱정돼 밤중에 서로의 집에 볏섬을 나르던 형제. 경쟁을 통해 발전해 온 시장경제와 기업에 똑같은 행동을 바라는 것은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어려울 때 등 뒤에서 비수를 꽂아 결국 남 좋은 일만 했던 삼국시대의 우리 선조의 모습을 닮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이근형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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