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게놈 지도 완성 '생명공학기술 시대' 열려
글로벌 유전자 치료제 시장 연간 65% 성장세
혁신신약 R&D 가속… 희귀·난치병 극복 눈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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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2020 `골든타임`…신산업이 열린다
제2의 전성기 맞은 의료산업
최근 투자자들의 눈길이 '바이오'로 쏠리고 있다. 황우석 사태 이후 한동안 '거품' 논란에 시달렸던 바이오 업종이 '제2의 투자붐'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벤처캐피털협회에 따르면 국내 벤처캐피털의 바이오·의료 투자액은 지난해 2928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 2012년에 비하면 3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로, 정보통신기술(ICT)과 전기·기계·장비 업종 등을 제치고 신규 투자금 순위 1위를 차지했다. 최근 바이오벤처 업계에서는 매출 1000억원을 넘어선 곳이 잇달아 나오고, 시가총액 2조원을 넘어선 업체가 등장하는 등 지난 2000년 바이오벤처 창업이 본격화된 지 15년 만에 시장이 본궤도에 오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6년 복제 양 돌리 탄생과 2001년 인간게놈 지도 완성으로 'BT(생명공학기술)의 시대'가 막을 열었고, 바이오 분야에는 가능성만 보고 투자와 정부 지원이 줄을 섰다. 하지만 2005년 대중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던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가 조작으로 밝혀지면서 국내 바이오 업계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이후 내부적으로 부실하게 운영되던 업체들이 연이어 시장에서 퇴출당하면서 바이오 산업은 신뢰를 잃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 바이오 산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 여전히 논란은 있지만 최근 바이오 투자 열풍은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다른 산업에 비해 긴 호흡이 필요한 바이오벤처 투자가 마침내 빛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바이오 업체들의 옥석이 가려져 현재 남아있는 기업들은 기술의 완성도나 경영 실적이 과거보다 좋은 편이고, 안정적인 경영을 바탕으로 장기적인 기술 개발을 통해 세계 무대에 내놓을만한 실질적인 성과들을 보이는 업체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문 열리는 '바이오시밀러' 시장=최근 바이오 산업에서 가장 높은 관심을 받고 있는 분야가 '바이오시밀러'다. 바이오시밀러는 단백질 등 살아있는 유기물을 원료로 만든 바이오의약품을 모방해 만든 복제 의약품이다. 살아있는 세포를 통해 제조되는 바이오의약품의 특성상 오리지널 제품을 똑같이 복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동일하진 않지만 유사하다는 의미에서 '시밀러(similar)'란 이름이 붙었다.
세계 의약품 시장은 기존 합성의약품 비중이 점차 줄고 단백질치료제, 항체치료제 등 바이오 의약품 중심으로 재편되는 추세다. 바이오의약품은 생체 성분을 재료로 쓰기 때문에 부작용이 적고, 대부분 다른 치료 방법이 없는 난치성 질환에 쓰이기 때문에 매출 규모도 크다. 바이오의약품은 이미 글로벌 제약사의 주요 제품으로 자리 잡으면서 전 세계 의약품 매출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2013년 세계 의약품 매출 상위 10대 품목은 1위 휴미라를 포함, 레미케이드·엔브렐·맙테라·아바스틴 등 7개 품목의 이름이 올랐다.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에 쓰이는 휴미라의 경우 세계적으로 연간 11조원 규모가 팔리고 있다.
바이오시밀러가 주목받는 이유는 이런 블록버스터 바이오의약품의 특허만료가 2020년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2012년부터 2019년까지 특허가 만료되는 바이오의약품의 연간 매출규모는 약 550억달러에 달한다. 오리지널 제품보다 약값이 다소 저렴한 바이오시밀러는 기존 오리지널 제품 시장을 일부를 대체할 뿐만 아니라, 그동안 높은 가격 때문에 치료를 포기했던 환자들을 흡수해 시장을 더 키울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고령화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의료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골몰하고 있는 선진국들이 바이오시밀러를 적극적으로 처방할 것이란 전망도 긍정론에 힘을 보태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레미케이드의 바이오시밀러인 '램시마'를 출시해 상용화의 포문을 연 셀트리온은 유럽과 일본 등의 허가를 마치고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그동안 자국 바이오 산업 보호를 위해 바이오시밀러 허가에 소극적이었던 미국 보건당국은 2012년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최근 진입 장벽을 낮추고 있어 곧 시장이 열릴 전망이다. 특히 미국에서 램시마의 유통을 담당하기로 계약한 호스피라가 글로벌 제약사 화이자에 인수되면서 램시마가 화이자의 강력한 유통망을 통해 수월하게 시장에 정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바이오시밀러 사업은 신약 개발보다는 실패 리스크가 작고, 생산설비 구축과 글로벌 마케팅 측면에서 자본 집약적인 제조업 특성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국내 대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삼성은 바이오의약품 생산을 담당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개발을 담당하는 삼성바이오에피스 두 회사를 설립해 바이오시밀러 사업에 진출했다. 현재 삼성바이오에피스는 5개 바이오시밀러 제품을 개발 중이며, 엔브렐 바이오시밀러인 'SB4'의 경우 유럽의약국(EMA)이 심사에 착수해 글로벌 진출이 가시화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3만ℓ 규모의 제1공장에 이어 올해 15만ℓ 규모의 제2공장을 완공할 예정으로, 이 공장이 완성되면 바이오시밀러 생산 능력이 세계 5위권에 들게 된다.
한화케미칼은 지난해 11월 국내 시판 허가를 받은 엔브렐 바이오시밀러 '다빅트렐'을 독일 머크에 기술 수출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LG와 CJ는 각각 제약분야 자회사 LG생명과학과 CJ헬스케어를 통해 바이오시밀러를 개발 중이다.
국내 바이오시밀러 생산시설 규모는 내년이면 33만ℓ로 세계 1위에 올라설 전망이다. 바이오시밀러 시장의 경쟁력은 수율 증대와 원가 절감이 핵심이기 때문에 국내 업계가 앞으로 세계 무대를 주름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바이오경제 시대' 이끌 첨단 바이오의약품=바이오시밀러가 당장 수익 창출에 유리하다면, 혁신 신약은 바이오 산업의 미래를 이끌어 갈 분야다. 최근 허가를 받은 국산 21호 신약 '리아백스주'과 22호 신약 '아셀렉스캡슐'이 각각 바이오벤처인 카엘젬백스와 크리스탈지노믹스에서 개발됐다는 점은 국내 바이오 기업들의 신약 개발 능력이 한층 업그레이드됐음을 입증하는 성과다.특히 전 세계적으로도 개발 단계인 세포치료제와 유전자치료제, 진단기술과 결합한 맞춤형 의약품 등 혁신적인 첨단 바이오의약품 개발이 더 활발히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세포치료제의 경우 우리나라는 줄기세포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앞선 상용화로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전 세계에서 허가를 받은 줄기세포치료제는 5개로, 이 중 4개가 국내에서 개발돼 허가받은 제품이다. 줄기세포를 이용한 희귀·난치질환 치료제들은 대체 의약품이 없어 파급력이 클 수밖에 없다. 다만 황우석 사태 이후 국내 줄기세포치료제 개발은 성체줄기세포 분야에만 집중되고 있어 세계적으로 많은 연구가 진행 중인 유도만능줄기세포(iPS)와 배아줄기세포 등으로 기술 개발 범위를 넓히는 것이 과제다.
결핍 또는 결함이 있는 유전자를 교정·교체해 질병을 분자 수준에서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3세대 바이오의약품인 유전자치료제는 앞으로 고성장이 전망되는 분야다. 세계 유전자치료제 시장은 2008년부터 연평균 64.7% 성장해 2017년 약 7억9000만달러 규모에 이를 전망이다. 현재 유전자치료제 시장은 태동기로, 임상시험 단계에 진입한 유전자치료제 개발 성공 여부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유전자치료제는 산업적으로 대규모 설비 투자가 필요하지 않고, 기존 의약품에 비해 생산 원가가 낮아 가격 경쟁력이 우수하지만, 안전성에 대한 보다 엄격한 검증이 필요하고 상용화와 시장성을 입증할 사례가 없다는 한계가 있다. 유전자치료제 개발이 가장 활발한 미국과 유럽에서는 암, 유전질환, HIV 등을 대상으로 하는 유전자치료제가 수년 내에 도입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바이로메드, 제넥신, 코오롱생명과학 등이 다양한 난치·희귀질환에 대한 유전자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남도영기자 namdo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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