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여성인력의 경력단절 현상 심각한 수준
미래부의 경력복귀사업이 좋은 성과 내고 있어 관심
부처간 정책조정으로 고급인력 활용 성과 내야
미래부의 경력복귀사업이 좋은 성과 내고 있어 관심
부처간 정책조정으로 고급인력 활용 성과 내야
![[시론] 경력복귀 지원사업 활성화 속도 내자](http://contents.dt.co.kr/images/201502/2015022702102351607001[1].jpg "[시론] 경력복귀 지원사업 활성화 속도 내자")
요즘은 여자라고 해서 남자보다 교육을 덜 시키거나 하는 집은 별로 없다. 그런데 이렇게 애써 키운 딸들이 결혼 후 출산 육아 등으로 직장에서 이탈한다면 아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그 여성이 이공계 우수인재라면 국가적으로도 매우 아쉬운 일이다. 우리나라는 과학기술 여성인력의 경력단절 현상으로 인해 여성의 연구개발 참여비율이 일본과 함께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지난 해 과학기술 젠더혁신 포럼에 참석한 나탈리아 질레비치 주한 벨라루즈 대사는 "한국처럼 일-가정 균형을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에서는 고학력 여성 과학기술 인재의 낭비가 심하다"고 지적하면서 "창조경제의 가시적인 성과를 위해서라도 경력복귀를 원하는 여성을 우선 채용하는 정책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과학기술 분야 경력단절 여성의 규모가 2012년 통계로 27만2000명이나 되고, 석박사급 인력도 1만명에 달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일리 있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을 비롯한 과학기술 강국들은 이공계 여성 우수 인재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일-가정 양립 이니셔티브 프로그램 등을 도입하여 경력단절을 미연에 방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연구개발 분야의 인재 누수 현상을 개선하고자 미래창조과학부(이하 미래부)가 2012년부터 R&D 경력복귀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제 곧 1단계 사업이 끝날 예정이고 좋은 성과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뇌신경과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연구소에서 재직하던 A씨(41)는 육아로 인해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7년을 지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미래부 경력복귀지원사업을 통해 2012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경력복귀 훈련 프로그램에 선정되었다. KIST에서 30개월간 근무하면서 SCI급 국제학술지에 3건의 논문을 게재하는 등 활발히 연구에 참여하며 경력 단절 이전의 연구역량을 회복했다. 그 실적을 인정받아 KIST와 공동연구를 수행하던 한 기업체에 정규직 연구원으로 스카웃됐다. 정부출연연구소에서 다시 배우고 훈련받으면서 좋은 성과를 내어 마흔이 넘어 연구원으로 취업에 성공한 경우이다.
미생물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B씨(47)는 첫째아이 출산 후에도 연구소에 근무했지만 둘째아이를 임신하면서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10년을 육아에 전념하며 경력이 단절되었지만 아이들이 좀 더 자라면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늘 품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12년 미래부 경력복귀지원사업을 통해 이전에 근무하던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복귀 훈련 프로그램에 선정되었다. 20개월 동안 출연연구소에서 백신개발을 위한 병원, 의과대학, 기업체가 참여하는 공동연구를 수행하며 전문기술을 습득하고 역량을 회복할 수 있었고, 그 결과 항체의약품 개발 기업체에 정규직으로 취직하였다. 해당 기업에서도 다년의 경력이 있는 석사출신 연구원을 채용할 수 있고, 경력단절이 있었지만 훈련을 통해 즉시 활용 가능한 전문기술을 가진 연구인력을 채용하여 연구개발에 큰 도움을 받고 있다며 매우 만족하고 있다. 물론 이같은 사례가 아직은 드문 일이고 경력복귀 지원사업이 초기 단계이지만 수많은 경력단절 여성들이 이들의 성공사례를 보면서 희망을 갖고 자신도 연구개발직으로 복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R&D 경력복귀 지원사업에 참여하려는 희망자들이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는데 올해 뜻밖의 복병이 나타났다. 그동안 경력복귀 훈련프로그램에 참여해왔던 정부 출연연구소들이 갑자기 난색을 표명해온 것이다. 점차 강화되고 있는 정부의 비정규직 처우 개선 방침에 따라 경력복귀 훈련생들의 연구원 채용에 대한 출연연구소의 재정부담이 커지고 또한 이들을 계속 채용하면 비정규직 비율을 줄이라는 정부 정책과는 역행하게 된다는 것이 출연연구소의 입장이다.
경력복귀 지원사업의 참여로 인해 비정규직 비율이 늘어나면 자칫 기관평가를 나쁘게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이 사업에 계속 참여하는 것이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출연연구소 실무자들의 입장도 이해할만 하다.
하지만 A씨나 B씨의 사례처럼 연구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훈련기관을 찾는 것은 경력복귀 희망자에게 매우 중요하다. 그녀는 출연연구소에서 중소기업에 기술지원하는 프로그램을 함께 하면서 기업의 신뢰를 쌓고 마흔 넘은 나이에도 창의적이고 열정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신뢰를 보여주었기에 취업이 가능했다.
정부의 예산지원으로 운영되는 경력복귀지원 사업은 연구개발이라는 특성 때문에 길게는 3년까지 지원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 참여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보고 조금이라도 취업률을 높이려는 정부 정책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유사한 프로그램을 도입한 영국 등 다른 나라들은 이들 여성을 취업자가 아니라 훈련 프로그램 참여자로 간주한다. 이공계 여성들의 경력복귀를 도와주려는 목적으로 시작된 이 사업이 '비정규직 축소', '비정규직 처우 강화' 및 '취업률 제고'라는 또 다른 정부정책과의 충돌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엇보다 경력복귀의 희망에 부풀어있던 수많은 경력단절 이공계 여성들이 국가 R&D와 같은 큰 규모의 연구개발에 참여하며 역량을 회복하고 성과를 낼 수 있는 훈련 기회를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것은 안타깝다.
R&D 경력복귀 지원사업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모쪼록 정부 부처 간의 정책조정으로 경력복귀를 희망하는 여성들의 기회를 박탈하지 말고 보다 많은 기회를 주면 좋겠다. 정부의 여러 가지 정책들이 '국민 행복'을 바라는 좋은 취지에서 마련된 것이라는 점은 이해한다. 그러나 이런 정책들이 서로 충돌해 경력단절 여성들의 복귀를 어렵게 한다면 원래 정책의 목적을 훼손하는 것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꼬인 문제일수록 단순하게 보면 정답을 찾을 수 있다. 경력복귀를 희망하는 여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누구나 이 문제에 대한 답이 보인다.
이혜숙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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