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제조업이 최근들어 위기론에 휩싸여
성장 패러다임이 바뀌는 하나의 성장통에 불과
개척자 정신으로 산업현장 선제대응 필요
성장 패러다임이 바뀌는 하나의 성장통에 불과
개척자 정신으로 산업현장 선제대응 필요
![[포럼] 제조업 `성장 패러다임` 찾자](http://contents.dt.co.kr/images/201502/2015022602102251607002[1].jpg "[포럼] 제조업 `성장 패러다임` 찾자")
영화 <명량>을 보면 이순신 장군이 탄 배에 지휘함을 상징하는 깃발을 볼 수 있다. 이를 일컬어 플래그십(Flagship)이라 한다. 최근 신문을 읽다보면 플래그십 마케팅, 플래그십 스토어와 같이 대표적인 상품이나 매장을 표현할 때 주로 사용되는 단어이다. 우리나라 경제의 플래그십은 누가 뭐라 해도 단연 제조업이다. 노동집약적인 섬유, 봉제에서 출발하여 제조업은 한국을 산업의 불모지에서 50년 만에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시킨 주역이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과 선진국 제품에 버금가는 품질을 무기로 거침없이 성장해 온 우리나라 제조업이 최근에 들어 위기론에 휩싸이고 있다. 세계 1위를 굳건하게 지키던 조선해양산업은 중국과 일본에 밀려 3위로 내려앉고 말았으며, 천하의 애플마저 벌벌 떨게 한 스마트폰은 2위 자리마저 중국 업체에게 위협당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금융위기를 통해 제조업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체험한 전통적인 제조업 선진국들은 저마다의 제조업 육성 전략을 차근차근 재조망해가고 있다. 또 중국 등 후발국은 우리의 강점이었던 가격과 품질 경쟁력을 확보해가고 있어, 우리 제조업은 선진국과 후발국의 틈바구니에서 출구를 찾지 못해 헤매고 있는 형국이다.
독일은 인더스트리 4.0 전략을 통해 기존 제조업에 ICT 기술을 접목해 생산성 향상과 함께 한 단계 높은 비교우위를 다져 가고 있다. 일본은 엔저와 모노쯔꾸리(장인) 정신을 무기로 경제 위기를 버텨나가고 있다. 한편 미국은 셰일가스 혁명을 기반으로 한 저 에너지비용과 45개의 제조업 혁신 연구소를 설립하는 등의 강력한 지원정책으로 제조업의 재도약을 꾀해 작년엔 세계적 불경기 속에서 홀로 호황을 맞이하기도 했다. 중국의 경우에도 경제성장률이 주춤하고 있지만 저가품 공급기지에서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국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정부 주도의 전략적 경제 부흥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우리나라의 제조업만 유독 위기를 넘어 붕괴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 같아 우려된다.
하지만 냉정하게 살펴보면 우리 제조업의 위기는 사실 성장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하는 순간에 나타나는 성장통일 뿐이다. 남들이 다 만드는 물건을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싸게, 조금 더 편리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경쟁할 수 없다. 이제는 남들이 생각지 못한 물건과 서비스를 세상에 누가 먼저 내놓는가가 핵심 전략이 돼야 한다. 이제 어떻게 더 잘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무엇을 왜 만드느냐를 고민할 때가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흔히 이야기하는 추격자(Fast-Follower)에서 선도자(First-Mover)로의 전환이다.
하지만 선도자의 길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새로운 시장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먼저 생각하고 도전하는 수밖에 없다. 훨씬 더 외롭고 험난한 길을 가야 한다. 때론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요구하기도 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죽음의 계곡을 지나야할 지도 모른다. 기업의 입장에서 이러한 위험을 감당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고, 중소중견기업은 말할 나위가 없지 않겠는가? 바로 이 대목에서 출연연구소의 역할이 자명해진다. 출연연구소는 긴 안목과 호흡으로 다음 세대를 먹여 살릴 미래기술을 발굴하고 원천설계기술을 확보해서 기업에 넘겨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정부와 금융시스템의 역할 또한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출연연구소라고 장기적 기술개발이 마냥 쉽지는 않다. 한국기계연구원이 개발하여 인천국제공항에서 시범 운행 중인 도시형 자기부상열차는 정권이 5번 바뀌는 동안에도 흔들리지 않고 혼신을 다한 노력의 산물이다.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출연연구소가 기업보다 앞서 가며 길을 헤쳐나간 결과로 얻어진 것이다. 따라서 선도적 과학기술의 개발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개척자 정신이 중요하다. 기계연구원에서는 이와 같은 생각으로 자기부상열차를 이을 플래그십 프로젝트를 금년부터 새로 시작하였다. 기계기술의 꽃이라 불리지만 선도 기술 개발은 엄두도 내지 못하던 '차세대 가스터빈'은 셰일가스 혁명으로 인한 미래 에너지 수요에 대비하고, '의료·제조로봇'은 고령화 및 산업현장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다. 기계연구원뿐만이 아니라 10년, 20년 후 우리나라 제조업이 새로운 도약을 하는 데 밑거름이 되고자 출연연구소가 국민이 믿고 따라올 수 있는 깃발을 들고 앞장서 뛰는 것에 국민과 정부의 박수와 충고를 기대해 본다.
임용택 한국기계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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