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천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 2015 새해 새 비전
"도전자가 자신의 끼를 100% 발휘하면서 마음껏 노래하고 춤출 수 있도록 튼튼한 무대를 만들어 주고 아름다운 조명을 달아 최대한 빛나게 해줄 것입니다."
이상천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은 자신의 역할을 최근 유행하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빗대 표현했다. 정부출연연구기관 연구자들이 마음껏 연구를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미다. 이 이사장은 최근 과학기술계 안팎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출연연 역할 재정립의 필요성, 출연연 위상 하락 등에 대한 해법을 '자율성'에서 찾았다.
그는 "출연연 연구자들이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만 만들어준다면, 우수한 인재가 유입되는 것은 물론 시대가 요구하는 독창적인 연구들도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출연연 위에 군림하고 지시하는 연구회가 아니라 출연연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최대한 소통하고 서비스하는 기관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 이사장이 그리는 2015년 구상과 비전,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미래에 대해 들었다.
-지난 7월 국가과학기술연구회가 출범했다. 연구회 출범 배경은 무엇인가.
"지난 정부 이공계 출연연을 관할하는 연구회는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기초기술연구회와 지식경제부 산하 산업기술연구회로 양분돼 있었다. 연구회에 따라 출연연이 2개 그룹으로 나눠지면서 출연연간의 교류가 단절됐을 뿐 아니라 중복연구 수행 문제도 발생했다. 미래를 내다보는 범국가적 통합 R&D 전략도 도출하기 어려웠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통합연구회가 출범했다. 통합연구회의 가장 큰 강점은 '시너지 효과 극대화'다. 국가가 필요로 하는 R&D의 우선순위와 방향을 종합적으로 수립할 뿐만 아니라 출연연간 활발한 기술·인력교류를 통해 융합연구를 훨씬 쉽게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더불어 출연연 공통의 애로사항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 출연연이 본연의 임무에 집중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연구 생산성과 성과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출연연 현장의 목소리도 궁금하다.
"취임 후 25개 소관 출연연을 모두 방문해 현장의 생생한 의견을 귀담아들었다. 현장에서 본 연구자들의 사기와 자긍심은 기대보다 많이 떨어져 있었다. 연구자의 열정을 높여줄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환기시켜 준 소중한 계기였다. 연구회는 단순히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결과를 통보하는 방식이 아니라, 출연연과 진행과정을 공유하며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는 체계로 전환할 계획이다. 연구회 내에 개선사항을 해결할 부서를 지정하고, 해당 부서가 책임지고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동시에 기관 간 협력이 필요한 분야에 대해서는 협의체를 구성해 적극 지원할 예정이다."
-밖에서는 출연연이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산업화 시대에 출연연의 국가 기여도는 매우 높았다. 출연연의 기술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기업들이 세계 일류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국민들은 '출연연이 무엇을 하는 곳인가'라고 묻고 있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출연연의 역할도 달라진 것이다.
국민들은 출연연이 그들과 한 공간에서 호흡하면서 눈에 확실히 보이는 성과를 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출연연이 시대의 요구에 맞게 변화하기 위해서는 통제와 관리보다 책임이 수반된 자율성 확보가 필요하다. 연구회에서는 기획·평가 등 제도를 개선해 자율적 환경을 마련하면서 출연연에 우선 힘을 실어주고자 한다. 영국처럼 예산을 주지만 연구에 간섭하지 않는 '홀데인 원칙'과 우수 연구 리더의 권한을 강화하는 '하르나크 원칙'을 바탕으로 세부 실천전략들을 추진해 나가겠다. 이와 동시에 책임도 강화해 국민에게 탁월한 성과로 보답하는 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출연연의 연구성과들이 국민의 삶에 녹아들 수 있을까.
"출연연의 연구성과가 국민에게 쉽게 다가가려면 국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기술을 개발하면서 개발된 기술을 개량해 활용하는 시간도 줄여야 한다. 기획단계부터 수요자의 의견을 반영하는 한편 출연연에서 보유하고 있는 '적정기술'간의 융합을 통해 해답을 찾을 것이다.
농업분야 R&D가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농업분야는 기상이변 같은 자연현상 변화뿐만 아니라 농촌의 고령화와 후계농 부족 같은 사회적 맥락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국가적 식량안보 문제로 대두된 상황이다. 연구회는 출연연의 농·공 융합형 인재로 드림팀을 구성한 후 과학기술과 ICT를 농업에 적용하는 적정기술 융합을 통해 '출연연표 국민실감 R&D'의 성공사례를 보여주겠다. 이를 위해 생명, 로봇, ICT 등 관련된 적정기술 후보군을 대상으로 연구자, 농업인, 부처가 모여 기획부터 사업화까지 정교한 '세공작업'을 함께 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 특히 스마트팜 확산, 밭농업 기계화, 빅데이터를 활용한 생산·재배 고도화 등 과학기술기반 농업혁신 분야에 출연연이 상당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내년 가장 역점을 두고 진행할 일은 무엇인가.
"내년은 올해 연구회가 출범하면서 다져놓은 기반 계획들을 구체화해 출연연들이 한 울타리에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우선 출연연 공동행정 체계를 구축하고 인적·물적 경영자원을 재배분해 지원 서비스의 효율성을 높일 예정이다.
특히 출연연간 공동연구를 활성화하겠다. 올해 2개의 융합연구단이 출범한 데 이어 내년에는 8개의 융합연구단과 10여 개의 융합클러스터를 새로 출범시켜 독일 프라운호퍼처럼 출연연의 교류와 협력에 최적화된 구조로 탈바꿈시키겠다. 또 체계적인 특허활용을 위해 출연연 특허 중 단기 상용화가 가능한 특허를 선별한 뒤 한데 묶어 공동 패키지 마케팅에도 나설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수 인재 영입, 기관 자율성 강화 방안을 마련해 정부와 협의해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올해 2개에 이어 내년 8개가 출범하는 융합연구단은 어떤 조직인가.
"융합연구단은 출연연과 국내외 산·학·연 연구자 30~40명이 한 공간에 결집해 융합연구를 수행하고, 종료 후에는 원 소속기관으로 복귀하는 일몰형 연구조직으로 운영된다. 연간 최대 100억원의 연구비를 최소 3년에서 최대 6년까지 지원 받는다. 연구회는 융합연구단에 파견된 연구자가 안정적으로 연구에만 몰입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해 파견기간 동안 100% 인건비와 주거 및 파견수당 지원 등을 지원하고, 복귀 후 과제 수행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올해는 '사물인터넷(IoT) 기반 도시 지하매설물 모니터링 및 관리시스템'과 '에너지 및 화학원료 확보를 위한 대형 융합플랜트 기술 개발' 등 2개 융합연구단을 선정했다. 이처럼 융합연구단은 국가·사회적 현안 해결과 미래 선도기술을 개발하고, 시장의 기술수요를 해결할 수 있는 연구를 진행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융합연구 성공사례로 자리매김하면서 연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끌어갈 것으로 기대한다."
-22일부터 세종시로 둥지를 옮기는데.
"세종시 이전으로 대부분의 출연연이 자리잡고 있는 대덕연구단지와 가까워 현장의 목소리를 더 자주 들을 수 있게 됐다. 이전에는 출연연 연구자나 직원들이 찾아와야 했다면, 이전을 계기로 연구회 직원들이 직접 연구자들을 찾아가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도록 할 예정이다. 더불어 세종청사에 자리잡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출연연과의 협력을 통해 출연연간 협력·융합을 넘어 과학기술과 인문·사회과학의 융합에 적극 나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독자와 국민들에게 한 마디 하자면.
"모죽(毛竹)이라는 대나무는 씨를 뿌린 후 5년 동안 아무리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해줘도 싹이 나지 않는다. 땅 아래로 깊숙이 뿌리를 내리며 내실을 다지다가 5년이 지나면 싹을 틔우고, 6주 후면 30m까지 자라난다.
과학기술도 모죽과 마찬가지다. 당장 싹이 트지 않는다고 성장이 멈춘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초를 닦고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에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진다면, 머지않아 눈부시게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연구회와 출연연은 미래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국민의 삶 곳곳에 녹아들 수 있는 과학기술을 발현시키기 위해 뿌리를 다지고 있으니 꾸준한 애정을 가지고 지켜봐 주셨으면 한다."
백나영기자 100na@dt.co.kr
사진=유동일기자 eddieyou@
◇ 이상천 이사장은…
○ 약력
-1970~1974 서울대학교 기계공학 학사
-1974~1976 KAIST 기계공학 석사
-1979~1983 노스웨스턴대학교 기계공학 박사
-1976~2007 영남대 공대 기계공학부 교수
-2001~2005 제11대 영남대학교 총장
-2001~2002 전국테크노파크 협의회 회장
-2001~2005 경북테크노파크 이사장
-2003~2004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2005~2008 창원클러스터추진단 단장
-2008.09~2011.08 제14대 한국기계연구원 원장
-2014.06~ 제1대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 수상이력
-2001 교육부장관표창
-2001 한국공학교육기술학회 공학교육상
-2006 한국공학한림원 해동상
-2006 대통령표창
-2008 대한민국 청조근정훈장
-2010 국가경쟁력대상 과학기술부문 CEO 최고대상
◇ 국가과학기술연구회는…과기 출연연 지원 정책 통합기관
국가과학기술연구회는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2014년 5월 2일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기존의 기초기술연구회와 산업기술연구회가 통합돼 탄생했다. 연구회의 설립 목적은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지원·육성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해 국가의 연구정책을 지원하고 지식산업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연구회는 연구 및 연구기관의 발전 방향에 대한 기획, 연구기관의 신설·통합 및 해산을 포함해 연구기관의 연구실적 및 경영내용 평가, 연구기관간의 협동연구지원, 연구기관의 연구성과 제고와 성과확산 지원, 국가 과학기술 분야의 혁신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 제안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 주요 연혁
-1999.01.29'정부출연연구기관등의설립운영및육성에관한법률' 공포
-1999.03.15과학기술분야 3개 연구회(기초·공공·산업기술연구회) 출범
-2008.02.29감독관청 변경(기초기술연구회→교육과학기술부, 산업기술연구회-지식경제부)-공공기술연구회 폐지
-2014.05.28'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 개정법률 공포-기초·산업기술연구회 통합
-2014.06.30국가과학기술연구회 출범, 제1대 이상천 이사장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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