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술혁신 지원정책은 창업 촉진ㆍ기술금융 등 종합정책의 성격 기술혁신 정책 위해 데이터에 기반한 과학화된 접근법 필요해
![[포럼] 기술혁신 `체질강화 전략` 필요하다](http://contents.dt.co.kr/images/201409/2014093002102251748001[1].jpg "[포럼] 기술혁신 `체질강화 전략` 필요하다")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재상 안영은 '橘生淮南則爲橘 生于淮北爲枳(귤생회남즉위귤 생우회북위지)'라고 했다. 귤이 회남(淮南)에서 나면 귤이 되지만, 회북(淮北)에서 나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다. 한 나라의 정책도 마찬가지다. 개발도상국 후발 주자들은 보통 이미 성공한 적이 있는 선진국의 정책을 참고해서 자국에 도입하는데, 그 정책이 얼마나 성공을 거두는지는 그 나라의 규제 환경, 문화 인식, 시장 여건, 정치적 상황 변화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산업기술 정책을 한 번 살펴보자. 전쟁의 상처를 딛고 급속한 산업화를 거듭한 끝에 50여년만에 세계 10대 경제대국 반열에 오른 우리나라는 산업기술 정책 분야에 있어서 외국의 훌륭한 모범사례가 되고 있다. 베트남, 브라질, 페루, 우즈베키스탄 등 많은 개발도상국들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기술 강국 일본까지도 우리나라 정부의 빠른 추진력에 감탄하며, 그동안 추진된 산업기술 혁신 정책과 제도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그런데 속도전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의 정책 입안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정책이 입안된 후 이것이 현실에 반영되어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차가 있기 마련인데 신규 사업이나 후속 정책이 만들어지는 속도가 이를 압도해버린다는 얘기다.
OECD 보고서는 그러면서 우리나라 상황에 맞는 정책을 보다 신중하게 채택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기존 사업간 중복성을 검토하여 통합과 조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언급하기도 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기술혁신 지원 정책은 창업 촉진, 기술금융, 산학연 협력, 인력양성, 연구개발 조세특례제도 등 해외 기술혁신 정책의 종합판을 방불케 한다. 좋다는 것은 다 끌어모아온 형국이다.
물론 이러한 정책 덕분에 우리나라가 기술 강국, 산업 강국이 되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해외 사례에서 보듯이 비슷한 내용의 제도라도 적용되는 국가의 정책 집행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성과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기술혁신 정책을 수립할 때는 무엇보다 혁신 주체들이 처해 있는 환경을 분석하는, '신토불이(身土不二)' 자세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계 기술 선진국들은 현재 자국 내 정책 환경과 혁신 조건을 정확히 진단하여 개별 국가에 맞는 전략을 마련해 추진하고 있다. 우리도 이제는 정책 효과가 입증됐다고 해서 무조건 가져와 이식하던 따라하기를 탈피해야 할 때다. 특히 기술혁신 정책 분야만큼은 더 이상 모방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안에 대응하기 위한 대증요법식 정책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한 형태의 문제들이 많아지고 있다. 우리 실정에 적합한 우리만의 기술혁신 정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데이터에 기반한 과학화된 접근 방식이 절실히 요구된다. 모든 국가가 처한 공통된 문제라도 해결책은 다르다. 우리의 기술혁신 생태계에 적합하지 않게 시행된 정책은 비용 낭비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유관 정책의 추진까지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새로운 기술이 또 다른 새로운 기술을 낳고 이러한 기술들이 다른 혁신 활동과 결합하는 등 혁신의 생태계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혹자는 이제 혁신이 어디서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시대를 살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렇게 급변하는 시기에는 기업을 포함한 대학, 연구소 등 혁신 주체들이 환경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기초를 튼튼히 할 수 있는 근본적인 체질 강화 전략이 필요하다. 우리가 잘하는 영역을 중심으로 그 토대 위에서 미래 성장엔진을 발굴, 육성하고 우리만의 한국형 혁신시스템과 혁신문화를 창조해야 한다. 이러한 혁신 체질 강화를 통하여 정책이 혁신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혁신을 '지원'할 수 있도록 조정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기술혁신 생태계는 우리 실정에 맞는 귤과 같은 정책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오명준 KIAT(한국산업기술진흥원) 산업기술정책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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