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정보공개로 36년간 국민신뢰 쌓아 원자력 규제기관 '스툭' 독립적 운영 원칙 고수 1978년 발전소 건설단계부터 최종 처리장 계획 지질조사·환경평가 등 '안전 최우선' 공감 얻어
■ 사용후 핵연료 처리, 핀란드서 배운다
(상) 최종처리장 선정 성공비결
핀란드 에우라요키에 있는 온칼로 사용후핵연료 최종처리연구시설 전경. 뒤쪽으로 보이는 빨간색 건물이 원자력발전 1, 2호기이며 3호기 공사가 현재 진행 중이다.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 제공
핀란드의 사용후핵연료 최종처분장 선정의 성공 포인트는 투명한 정보공개, 규제기관의 독립성, 이를 바탕으로 한 정부·규제기관과 국민 상호 간 신뢰로 압축된다. 1978년 원자력발전소 건립 계획 수립 시 함께 진행된 폐기물 처리를 계획한 핀란드의 선제적 대처는 약 10년 후 포화를 앞두고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17~19일 핀란드에서 만난 정부·지방자치단체·규제기관 관계자들은 신뢰받는 정부와 투명한 정보공개가 사용후핵연료 문제 해결의 답이라고 입을 모았다.
우리나라의 원자력안전위원회 같은 성격을 지닌 스툭(STUK)의 리스토 팔테마 핵폐기물 및 핵물질 규제 담당관은 "스툭은 원자력 발전 관련 입법과 규제를 담당하고 스툭에서 수립하는 원자력 관련 규정 초안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 가이드라인의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또 "스툭은 매우 독립적인 기관으로 정부 등 외부에 영향을 전혀 받지 않으며 이 같은 독립적인 활동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와 달리 외부의 입김이 차단될 수 있는 사회·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원칙대로 원자력 문제를 풀어 사용후핵연료 등 핵폐기물 처리장 선정을 무리 없이 진행했다는 것이다. 스툭은 지난해 대국민 대상 신뢰도 조사에서 36% 매우 신뢰, 47% 신뢰 등 83%의 국민 신뢰를 얻고 있다.
사용후핵연료 최종 처분시설로 선정된 에우라요키 시의회 베사 얄로넨 의장도 투명한 정보공개와 국민 신뢰가 핵 시설 유치에 열쇠라고 설명했다. 얄로넨 의장은 "에우라요키 지방자치단체에서 온칼로 최종처분시설 유치 시 최우선했던 것은 안전성이고 스툭이 발표한 안전성을 믿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에우라요키와 로시바가 처분시설 환경으로 적합하다는 조사결과가 나왔으나 로비사 일부 주민의 강력한 반대표명과 에우라요키에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를 로비사까지 이동해야하는 점 등이 고려돼 에우라요키가 최종 처분지로 선정됐다.
시의회 대표와 함께 만난 에우라요키 고등학교 에씨 헤이노넨 학생은 "최종처분 시설을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학교에서 포시바(핵 발전 및 시설 관리회사)에 견학 체험도 한다"고 말해 '생활 속의 원자력'으로 인해 거부감이 반감됐음을 보여줬다.
특히 핀란드의 핵처리에 대한 장기적 안목과 계획은 10년 후 사용후핵연료 포화를 앞에 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핀란드는 1978년 원자력발전소 시운전과 동시에 사용후핵연료 최종처분에 대한 준비를 시작했다. 1983년 사용후핵연료 관리 목표를 수립하고 영구처분을 결정한 뒤 이듬해인 1984년 전국을 대상으로 지질조사를 진행해 327개의 지역을 추려냈다. 2단계에선 162개, 다시 환경적요인과 운반, 인구밀도 등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61개 지역으로 압축했다. 1987년 부지특성조사를 통해 5개 지역이 선정된 뒤 1993~2000년 부지상세조사를 진행했으며 2000년 말 에우라요키 내 있는 올킬루오토가 최종 부지로 선정됐다. 2001년 5월 핀란드 국회에서 이 지역의 최종처분을 찬성 159표, 반대 3표, 기권 37표로 의결했다. 2012년 최종처분시설 건설허가를 신청, 올해 말 허가가 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36년의 여정을 차근차근 걸어온 것이다. 최종처리장 건설이 완료되면 2020년 운영허가를 신청해 2022년부터 본격적인 사용후핵연료 처분시설이 운영될 예정이다.
핀란드는 원자력발전 시작과 함께 핵연료 처리에 대한 문제를 준비했다. 우리나라도 1978년 4월 고리원전 1호기가 첫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시작은 핀란드와 유사하지만 그 과정과 사용후핵연료처리에 대한 결과물은 사뭇 다르다. 한국은 1997년 사용후핵연료 처분 연구를 시작, 2006년까지 직접처분 연구를 벌였으며 이후 파이로공정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최종처분장 선정은 고사하고 사용후핵연료를 영구폐기할 것인가 아니면 재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도 내리지 못한 상황이다. 핀란드와 비교할 때 여러모로 부족하다. 특히 핀란드는 단단한 화강암 암반층을 대량으로 가지고 있고,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도 우리로선 아쉬운 부분이다.
특정부지를 한정하지 않고 전국의 많은 부지를 1차 후보 지역으로 올려놓고 조사 및 정보 개방을 통해 국민적 공감을 이끌어낸 점도 한국과는 다르다. 우리 정부도 방폐장 건설을 추진하려다 1990년, 1995년, 2003년 지역의 반발로 무산됐고 철저한 기술검증과 지역주민과의 충분한 공감이 결여된 상태에서 정부가 성급히 일을 추진하려다 일을 그르쳤다. 이는 결국 원자력에 대한 국민 반감과 불신만 부추긴 꼴이 되고 말았다.
핀란드의 사용후핵연료 최종처분연구시설 사업에 참여했던 S&R는 한국이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와 관련해 10년이란 짧은 시간에 이를 다 해결하긴 어려울 것이란 전제하에 임시저장 용량을 늘려 시간을 벌고 전체 전략과 정책을 수립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