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착오적 집단오류 현장목소리 무시… 방대한 데이터분석 현실왜곡 가능성도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기업 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전략 경영이 한층 더 강조되는 분위기입니다. 경영 전략은 필요에 따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경영 활동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이를 반영하듯 좋은 전략을 짜고 실행하기 위한 기업의 전략경영 활동과 노력도 다각적으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과 활동에도 불구하고 기대 한 만큼의 결실을 맺지 못하는 기업도 더러 존재합니다. 이런 기업들은 사실상 전략 없는 것보다 더 골치 아픈 '나쁜 전략'의 덫에 걸려있지 않은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업 경영전략 전문가들이 꼽은 대표적인 나쁜 전략 5가지를 알아봅니다.
◇눈가리개='전략의 적은 전략이다'란 말이 있듯이, 때로는 전략이 선사하는 강점이 함정이 되기도 합니다. 전략의 방향이 오히려 '눈가리개'가 되는 경우입니다. 특히 환경의 불확실성과 동태성은 기존의 전략 방향으로 거둔 성공 체험을 눈가리개로 만들게 합니다. 이는 전략을 수정할 타이밍을 놓치게 하거나 아예 변화 자체를 못하게 막아버리는 원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어려움을 겪다 침몰한 기업들은 여러 산업에 걸쳐 흔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코닥이 디지털 카메라를 먼저 개발하고도 1990년대 중반부터 변화하기 시작한 디지털카메라 시대에 대비하지 못하고 기존의 필름 중심의 사업 전략을 고수했고, 1991년 190억달러에 달하던 매출은 2003년 130억달러로 급감했습니다. 이후 다기능 필름 카메라 개발에 수식억 달러를 투자하는 등 실패를 거듭하다 2012년 파산 신청을 했습니다.
최첨단 유무선 통신기술을 독점해 왔던 모토로라 역시 일반 휴대폰 시장을 공략하기보다 사업성이 떨어지는 1998년 이리듐 위성전화 개발에 50억달러를 투입해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피처폰 시장을 주름잡았던 노키아는 애플과 삼성전자와 같은 혁신적 스마트폰 기업들에 밀려 침몰했습니다.
◇집단사고=조직 구성원들의 노력을 하나의 방향으로 집중시키는 전략이 없다면,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가버려 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지나치게 한 곳에 노력을 집중해 공을 들이다 보면 다른 가능성을 배제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명확한 전략 방향에 따라 선택과 집중의 노력을 기울일수록 조직은 '집단사고'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도 높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집단사고의 함정에 빠진 기업의 임직원들은 판단력을 잃고 사업이나 제품의 결함이 발견돼도 기존 방식을 밀어붙이거나 변화의 조짐을 거부해 낭패를 보게 됩니다. 인지 심리학의 대가 찰스 키슬러 박사는 "전략이 명확할수록 조직 구성원들에게 깊이 새겨진다며 "충성도가 높은 구성원들에게 전략 변화는 심리적 저항감이 커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존 방식을 유지할 수 있는 논리부터 찾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PC와 서버 등을 제조하는 델은 최근 20년 간 승승장구하며 전 세계 PC시장을 장악했었지만, 2006년 매출성장률이 급격히 하락 하면서 HP에 1위 자리를 내줬습니다. 그 해 마이클 델 회장은 비즈니스위크지가 선정한 2006년 최악의 경영자로 뽑혔습니다.
델의 몰락은 테스크톱 PC에서 노트북으로 변하는 시장과 사용자들의 요구를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김현기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지적합니다. 실제로 델은 노트북이 비싸서 보급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시기상조론을 펼쳤습니다.
◇구상과 실행의 분리=실전 경험보다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이 기업에 늘어나면서 나타난 부작용이 바로 구상과 실행의 분리 현상입니다. 원래 전략이란 계획을 세우는 수립 작업과 실행이 일심동체처럼 함께 돌아가야 합니다. 기업의 구성원들이 사무실에서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면서 경영 현장의 변화나 고객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데 둔감한 조직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상반되게 고성과를 창출한 탁월한 전략 중에는 최고경영자나 전략기획 조직에서 구상한 것이 아니라 현장의 실무자가 현장의 미묘한 변화와 반응을 감지해 이들에 의해서 발현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카메라 사업에서 혁명적인 아이디어로 불리는 즉석카메라를 개발한 폴라로이드가 대표적인 예 입니다.
◇하드 데이터=객관적인 하드 데이터를 정교하게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은 복잡한 현상을 보다 쉽고 단순 명쾌하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그러나 하드 데이터를 활용한 분석이 지닌 약점을 간과 해서는 안 됩니다. 시장의 반응이나 유행 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잘못된 전략을 양산할 가능성이 높은 탓입니다.
무려 233억유로(약 28조원)의 적자를 기록해 프랑스 경제의 최대 골칫거리로 떠오른 비벤디 유니버설의 사례가 하드 데이터 함정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 회사는 1990년대 사업 다각화의 일환으로 유니버설스튜디오, 카넬 등을 인수 합병해 미디어 콘텐츠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크게 실패했습니다. 당시 경제 전문가들은 비벤디가 미디어 분야에 대한 경험부족과 경영역량 부재에 대한 문제를 하드 데이터에서 제대로 고려하지 못했다고 지적합니다. 신규 사업 운영에 필요한 역량이나 사업 특성에 대한 이해 부족에 대한 고려와 같이 비경제적이고, 비정량적인 요소를 지나치게 과소평가했다는 것 입니다.
◇경직성=마지막으로 경계해야 할 함정은 경직성이다. 조직의 상층부에서 좋은 전략을 구성해도 단기간 내에 조직의 전체 시스템을 바꾸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게다가 뿌리 깊게 박혀있는 조직문화, 권력관계·학습역량 등은 쉽게 바꾸거나 단기간에 수정되지 않는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문제는 전략을 항상 앞에 두고 나머지를 뒤에 두어야 한다는 경직된 생각입니다. 의도한 전략에 맞추기 위해 조직을 엄격히 통제하면 할수록 조직은 경직되고 수동적으로 바뀌기 마련입니다.
이와 관련해 앤드류 인크 팬 썬더버드 국제경영대학 교수는 "지나치게 공식화된 전략 수립 절차에 의존하며, 전략의 일관된 실행을 위해 조직 시스템을 엄격히 통제하는 조직은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실험하고 혁신하는 능력을 잃게 된다"며 "의도적으로 전략이 없는 상태를 만들 때 유연성과 혁신성을 키울 수 있고 내외부의 이해관계자들로부터 다양한 의견과 아이디어를 흡수할 수 있는 기회도 준다"고 설명합니다.
서영진기자 artjuck@dt.co.kr
도움말=김현기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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