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마을의 자그마한 초등학교 5학년 2반 반장 엄석대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힘과 권력으로 반 아이들을 지배한다. 엄의 각종 횡포에도 반 아이들은 반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심지어 담임선생까지 엄석대를 신임하고 모든 것을 맡기니 그는 2반의 절대권력자로 살아간다. 처음엔 엄에 저항해 '왕따'를 당했던 서울 전학생 병태도 결국 그에게 머리를 숙이자 반의 2인자로 안락한 생활에 젖어든다. 그러나 6학년이 되어 담임선생이 바뀌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새로운 담임 김 선생은 아이들에게 늘 정직과 진실, 용기에 대한 신념을 갖도록 가르친다. 어느 날 김 선생은 엄석대가 늘 전교 1등을 해온 것이 다른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대신 시험을 치러준 결과라는 사실을 알아채고, 석대를 비롯해 반 아이들을 처벌한다. 한 번 엄석대의 지위가 무너지자 아이들은 그동안 참았던 석대의 비리를 봇물 터치듯 김 선생에 고한다. 배신감에 서슬 퍼런 눈빛을 한 석대는 결국 학교를 뛰쳐나가 돌아오지 않는다.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줄거리다.
최근 방송통신위원회를 보고 있자면 자꾸 이 소설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방통위는 분명 위원회 합의체 조직인데, 이곳의 위원장과 부위원장이 최근 보여준 행보는 지나친 '지상파 방송사 편들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지난 4일 열린 방통위 전체회의에서 허원제 부위원장은 "(주파수 할당에서) 지상파에 우선 배려가 있어야 한다. 전체 방송콘텐츠의 80%를 지상파가 생산하는 상황에서 UHD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상파가 중심이 돼야 한다, 700㎒ 주파수 대역 가운데 108㎒ 폭 중 20㎒폭을 국가재난안전망에 우선 배정하고, UHD에 필요한 54㎒폭을 방송용으로 할당한 후 남은 34㎒ 폭을 통신용으로 할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700㎒ 대역 주파수 할당과 UHD 활성화와 관련해 미래창조과학부와 차관급 정책협의회를 구성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곧 통신용으로 이미 할당된 40㎒ 폭을 거둬들여 지상파에 줘야한다는 논리다. 허 부위원장이야 원래 지상파 방송사 출신이라 그런다고 치자. 판사 출신인 최성준 위원장은 왜 지상파 편들기에 합류한 것인가. 최 위원장은 "700㎒ 대역을 재난망에 우선 배분한 후 통신용 40㎒ 폭을 포함해 주파수 할당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원장이 지상파를 위한 창을 하니, 부위원장이 고수가 돼 '얼쑤' 신명 나게 장단을 맞추고 있다.
2012년 방통위는 디지털방송 전환 이후 발생한 700㎒ 주파수의 108㎒ 폭 중 40㎒ 폭을 이동통신용으로 우선 배정했다. 이는 방통위가 마련한 '모바일 광개토 플랜'에 따른 것이었다. 앞으로 다가올 만물통신(IoE, Internet of Everything) 시대에는 데이터 트래픽이 폭증하기 때문에 600㎒ 주파수 폭을 마련해 미래에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나온 것이다. 한국통신학회에 따르면 2023년까지 모바일데이터 트래픽은 44만 테라바이트(TB)로 지난 2011년 대비 23배로 증가할 전망이다.
방통위는 스스로 정한 룰을 깨고, 지상파를 위한 주파수 할당으로 급선회했다. 구 방통위는 다른 나라 방통위였나. 현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과 통신을 아우르는 위원회가 아니라 마치 방송만을 위한 위원회 같다. 차라리 방송과 통신을 분리해 각각 위원회를 두는 게 낫겠다는 비아냥이 허투루 나온 게 아니다.미래부도 난감하기 짝이 없을 테다. 이미 전문 연구반을 통해 700㎒ 가운데 20㎒ 폭을 재난망에 배정키로 결정했는데, 이것을 원점에서 재검토하자고 하니 딴지도 이런 딴지가 없다. 그것도 같은 역할과 목소리를 내야 할 관계 부처가 제각각이니 더 환장할 노릇이다. 방통위 딴지 때문에 '국민 안전'을 위해 이번 정부가 반드시 구축하겠다고 한 국가재난안전망 사업도 차질이 빚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상파엔 당근만 주고, 통신 산업계엔 보조금 규제니, 점유율 규제니 '규제의 칼'만 뽑아드니 통신 업계가 겉으로 표현은 못하고 속으로만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규제라는 절대권력을 지닌 방통위가 엄석대 반장의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김승룡 정보미디어부장
최근 방송통신위원회를 보고 있자면 자꾸 이 소설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방통위는 분명 위원회 합의체 조직인데, 이곳의 위원장과 부위원장이 최근 보여준 행보는 지나친 '지상파 방송사 편들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지난 4일 열린 방통위 전체회의에서 허원제 부위원장은 "(주파수 할당에서) 지상파에 우선 배려가 있어야 한다. 전체 방송콘텐츠의 80%를 지상파가 생산하는 상황에서 UHD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상파가 중심이 돼야 한다, 700㎒ 주파수 대역 가운데 108㎒ 폭 중 20㎒폭을 국가재난안전망에 우선 배정하고, UHD에 필요한 54㎒폭을 방송용으로 할당한 후 남은 34㎒ 폭을 통신용으로 할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700㎒ 대역 주파수 할당과 UHD 활성화와 관련해 미래창조과학부와 차관급 정책협의회를 구성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곧 통신용으로 이미 할당된 40㎒ 폭을 거둬들여 지상파에 줘야한다는 논리다. 허 부위원장이야 원래 지상파 방송사 출신이라 그런다고 치자. 판사 출신인 최성준 위원장은 왜 지상파 편들기에 합류한 것인가. 최 위원장은 "700㎒ 대역을 재난망에 우선 배분한 후 통신용 40㎒ 폭을 포함해 주파수 할당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원장이 지상파를 위한 창을 하니, 부위원장이 고수가 돼 '얼쑤' 신명 나게 장단을 맞추고 있다.
2012년 방통위는 디지털방송 전환 이후 발생한 700㎒ 주파수의 108㎒ 폭 중 40㎒ 폭을 이동통신용으로 우선 배정했다. 이는 방통위가 마련한 '모바일 광개토 플랜'에 따른 것이었다. 앞으로 다가올 만물통신(IoE, Internet of Everything) 시대에는 데이터 트래픽이 폭증하기 때문에 600㎒ 주파수 폭을 마련해 미래에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나온 것이다. 한국통신학회에 따르면 2023년까지 모바일데이터 트래픽은 44만 테라바이트(TB)로 지난 2011년 대비 23배로 증가할 전망이다.
방통위는 스스로 정한 룰을 깨고, 지상파를 위한 주파수 할당으로 급선회했다. 구 방통위는 다른 나라 방통위였나. 현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과 통신을 아우르는 위원회가 아니라 마치 방송만을 위한 위원회 같다. 차라리 방송과 통신을 분리해 각각 위원회를 두는 게 낫겠다는 비아냥이 허투루 나온 게 아니다.미래부도 난감하기 짝이 없을 테다. 이미 전문 연구반을 통해 700㎒ 가운데 20㎒ 폭을 재난망에 배정키로 결정했는데, 이것을 원점에서 재검토하자고 하니 딴지도 이런 딴지가 없다. 그것도 같은 역할과 목소리를 내야 할 관계 부처가 제각각이니 더 환장할 노릇이다. 방통위 딴지 때문에 '국민 안전'을 위해 이번 정부가 반드시 구축하겠다고 한 국가재난안전망 사업도 차질이 빚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상파엔 당근만 주고, 통신 산업계엔 보조금 규제니, 점유율 규제니 '규제의 칼'만 뽑아드니 통신 업계가 겉으로 표현은 못하고 속으로만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규제라는 절대권력을 지닌 방통위가 엄석대 반장의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김승룡 정보미디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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