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봅시다] 상반기 인터넷 업계 휩쓴 `잊힐 권리`

개인 사생활 보호 vs 불편한 진실 은폐 공익정보·범죄기록까지… 'Delete' 딜레마 풀어야 유럽 재판소 '권리 인정' 판결 범위 불명확하면 오남용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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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봅시다] 상반기 인터넷 업계 휩쓴 `잊힐 권리`
상반기 세계 인터넷 업계에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지난 5월 유럽 사법재판소(ECJ)가 내렸던 '잊힐 권리'(Right to be forgotten)에 대한 판결이었습니다. 왜 상반기에 잊힐 권리가 다시 수면 위 논쟁으로 올라왔는지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재판 시작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스페인 변호사였던 마리오 코스테하 곤잘레스는 1998년 스페인 유력지인 '라 뱅가르디아'(la Vanguardia)에 실린 자신에 대한 기사와 구글 검색 링크가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곤잘레스는 1998년 당시 채무 내역과 재산 강제매각 등 문제 내용들이 해결됐는데도, 이들 기사가 구글 검색결과로 노출된다며 구글과 해당 신문사를 스페인 개인정보보호원(AEPD)에 신고한 것인데요. 곤잘레스는 온라인에서 '잊힐 권리'를 주장한 것입니다. 당시 개인정보보호원은 구글 측에 해당 링크를 삭제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러나 구글 측은 이를 불복했고, 스페인 고등법원에 해당 조치 무효화 소송을 제기합니다. 이후 스페인 법원이 이 사안을 유럽 사법재판소에 의뢰하면서 유럽 최고 법원인 유럽 사법재판소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세계인의 시선이 쏠렸습니다. 그리고 지난 5월 13일 유럽 사법재판소가 구글에 관련 링크를 삭제하라고 최종 판결을 내리면서 '잊힐 권리'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당시 주요 판결 내용을 살펴보면, 유럽 사법재판소는 구글 검색 엔진을 이용하는 사람은 '잊힐 권리'를 가진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이용자가 부적절하거나 시효가 지난 개인정보 삭제를 요청할 때에 구글은 이에 응해야 한다고 판결 내렸습니다.

이 판결에 따라 현재 구글은 6월 이후 별도의 개인정보 삭제 요청 링크를 만들고 삭제 요청을 신청받고 있는데요. 현재 이 판결은 유럽 사법재판소 판결이 적용되는 30여 유럽 국가들에게만 적용됩니다. 구글은 이달 초까지 총 7만 여 건의 삭제 요청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세계가 이 판결에 주목한 이유는 재판소가 정보 게시자가 아닌 검색 엔진에 대해 잊힐 권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선고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잊힐 권리 논쟁은 글 또는 사진 등을 게시한 자와 이 정보에 대한 삭제를 요청하는 이들 간 문제 해결에 주목했습니다. 그러나 이젠 이 정보 통로 역할을 한 검색, 플랫폼 등 인터넷 기업들에도 삭제할 책임이 있다는 점을 재판소가 인정한 것인데요. 이렇게 되면 구글뿐 아니라 정보 게시와 공유 역할을 하는 많은 인터넷 기업들이 이번 판결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앞으로는 유럽 재판소로부터 삭제 명령을 받은 구글뿐 아니라 많은 인터넷 기업들이 '잊힐 권리'와 '알 권리' 사이에서 갈등을 반복할 것으로 보입니다. 잊힐 권리는 온라인에서 개인이 지우고 싶은 기억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하는 권리입니다. 그런데 이 온라인 공간은 검색 사이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고, 우리는 이 공간을 통해 많은 정보를 습득하고 있습니다. 잊힐 권리와 함께 알 권리가 부상하는 이유는 과거 범죄 기록이나, 누구나 알아야 할 공익 정보가 잊힐 권리라는 명목 아래 지워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특히 힘을 가진 정치인들이 이를 악용할 가능성도 농후합니다. 이 판결이 발표되자 미국 컴퓨터·커뮤니케이션협회는 "정치인이나 무언가를 숨기려는 사람에 의해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습니다. 가령 A라는 정치인이 20여 년 전 잘못된 발언을 했고, 이 내용이 검색 사이트나 SNS를 통해 널리 퍼졌습니다. 이 정치인이 지역 선거에 출마를 앞두고 '잊힐 권리'라는 이유로 이 기록들 삭제를 요청했다면, 지역 투표자들은 알 권리를 박탈당하는 셈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이런 우려로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네이버, 다음 등 검색포털 기업에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개인이 정보 삭제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삭제 요청을 받은 포털 기업은 이 내용을 정보 게시자에게 전달하고, 소명하는 절차를 통해 해당 글을 삭제합니다. 그런데 지난해 국정감사 기간 발표로는 이렇게 삭제를 요청한 이들의 다수가 정치 관련 인물들이었습니다. 잊힐 권리를 악용하는 사례를 어떻게 구분하고 차단할지는 우리나라 인터넷 기업과 이를 감시, 감독하는 정부 역시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사실 잊힐 권리는 최신 논쟁이 아니라 이미 1990년대 인터넷이 보급되면서부터 시작한 오래된 논쟁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1990년대에 비해 세계 인터넷 보급률이 급속하게 늘어났고, 2000년대 후반 스마트폰 증가로 어디서든지 온라인으로 정보를 접하게 되면서 '잊힐 권리'가 최근 들어 더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다. 올 상반기 구글에 대한 유럽 사법재판소 판결은 '잊힐 권리'에 대한 또 다른 시작점이라 볼 수 있습니다. 유럽은 세계 최대 검색 엔진이자 미국 최대 IT기업인 구글에 이 숙제를 던졌습니다. 하반기 구글이 어떤 행보를 이어갈지 많은 기업과 국가들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김지선기자 dubs45@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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