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1등 국가' 주춧돌 박재근 한양대 교수
무결점 실리콘웨이퍼 개발… 1000만달러 해외이전 성과
수직자화형 메모리기술 2020년 상용화에 목숨걸고 매진
무결점 실리콘웨이퍼 개발… 1000만달러 해외이전 성과
수직자화형 메모리기술 2020년 상용화에 목숨걸고 매진
■ `MY HERO` 사이언티스트
치열한 선진국과의 경쟁의 틈바구니에 한국을 '반도체 1등 국가'로 끌어올리는 데 주춧돌 역할을 한 인물이 있다. 바로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박재근 석학교수다.
박 교수는 미국과 일본 기술을 모방해 출발한 우리 반도체 산업이 이들 반도체 강국에 기술 수출을 하는 기록을 세웠다. 바로 그가 개발한 무결점 실리콘웨이퍼 기술이다. 삼성전자 재직 시절 일본 재료과학자들이 수십년간 풀지 못한 무결점 실리콘웨이퍼 기술을 개발해 삼성전자 최초로 사내 발명보상료로 1억원을 받았다. 삼성은 이 기술을 일본 등 해외 기업에 이전해 최초로 1000만달러 해외 기술이전을 이뤄냈다. 한양대로 적을 옮긴 후에는 세계 슈퍼실리콘웨이퍼를 개발해 삼성전자로 기술 이전하며 국내 최대 기술이전 규모를 기록했다.
'월화수목금금금' 생활을 30년간 이어온 박 교수는 탄탄한 체격과 체력의 비결을 묻자 "하루에도 몇 번씩 연구실과 실험실을 오가고, 실험실에서 오랫동안 서서 학생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운동이 저절로 된다"며 "일하다 보면 식사도 제때 못 먹으니 살도 절로 빠진다"고 말했다.
삼성 입사 동기로 오랫동안 옆에서 지켜본 최진석 (주)한화 제조부문 운영혁신총괄사장(전 STX솔라 사장)은 그를 두고 "한가지 일에 무섭게 파고드는 집중력과 친화력을 무기로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며 함께 팀을 꾸려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를 해낸다"며 "아이디어가 많고 정통한 현장 지식으로 무장한 뛰어난 엔지니어이면서 친화력과 네트워킹 능력까지 갖춘 게 강점"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와 공동연구를 해온 이종호 서울대 교수(전기정보공학부)는 "친화력과 열정을 토대로 팀워크를 잘 만들어내고 이를 성과로 연결하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평했다.
인터뷰 = 안경애 생활과학부장
- 30년간 반도체 분야에 몸담았다. 첫 출발은 어땠나.
"85년 1월에 삼성에 입사했다. 당시 기흥 허허벌판 한가운데 성냥갑 같은 공장만 서 있었다.(최진석 사장은 당시의 기흥을 '아오지탄광'으로 표현했다) 삼성전자가 해외 기술을 들여와 64k D램 생산을 막 시작한 시기였다. 김기남 삼성전자 사장, 이윤우 전 부회장, 김광호 전 부회장, 이상환 전 사장 등 삼성의 반도체 사업을 일으킨 1세대들과 함께 일했다.
당시 가건물 기숙사에서 모두 생활했는데 겨울에는 감기를 달고 살았다. 입사 후 처음 한 일은 대걸레로 공장 공사장 바닥을 닦는 일이었다. 반도체공장은 바닥을 깊이 파 콘크리트로 덮는데 인부 중 꼭 여기에 실례를 하는 이들이 있었다. 클린룸을 설치하려면 청결이 중요하니 매일 닦아야 했다."
- 삼성으로선 미래를 걸고 반도체에 대규모 투자를 시작한 시기였다.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당시 메모리산업은 도시바, 히타치, NEC가 3강이고 삼성은 일본기업의 전성기에 뛰어든 후발주자였다. 고 이병철 회장은 매주 한두번 공장에 내려와 직접 현장을 뛰어다녔는데 비 오면 흙탕물 때문에 장화를 신고 다니던 모습이 선하다.
당시 회사 식당 음식이 매우 훌륭했는데, 어느 날 이 회장이 '여기가 삼성의 미래인데 음식이 이게 뭐냐. 신라호텔에서 여기로 데려온 것은 미래 준비를 돕도록 하기 위해서인데'라며 주방장을 혼냈다. 그만큼 이 회장의 애정과 기대가 컸다.
당시 통신에서 번 돈을 반도체에 투자해 엄청난 속도로 공장이 늘었는데, 세번째 공장인 1M D램부터 반도체가 팔리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기술력과 생산량이 확 늘었다. 이 3라인 셋업 TF가 당시 이상환 담당, 김재욱 과장, 장원기 과장, 박재근 주임이었다. (박 교수를 제외한 3명은 모두 삼성에서 사장까지 지냈다) 3라인을 성공적으로 잘 만든 공로로 회사에서 미국 박사과정 유학을 보내줬다."
- 전자공학을 전공했는데 박사과정에서 재료공학을 했다. 뭘 연구했나.
"실리콘 결정성장을 연구했다. 반도체 실리콘웨이퍼를 잘 제어해야 수율이 높아지고 생산단가를 낮출 수 있다.
실리콘웨이퍼에 실리콘 원자가 빠진 부분이 생기는데 이게 뭉치면 커다란 구멍이 돼서 문제가 생긴다. 그 구멍이 없는 웨이퍼를 성장시키는 방법을 연구했다."
- 연구가 귀국 후 어떻게 이어졌나.
"회사가 직접 실리콘웨이퍼를 만들지 않으니 자체 실험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당시 웨이퍼 3위 회사 미쓰비시와 공동연구를 시작했다. 그때 운명적으로 만난 사람이 미쓰비시의 나가사와 회장이다. 엔지니어 출신인 그가 내 기술 실험 제안을 받아들여 줬다. 비용은 미쓰비시가 대고, 기술을 개발하면 제품을 삼성이 사주는 조건이었다.
나가사와 회장이 당시 '박 박사와 똑같은 스타일의 사람이 있으니 함께 연구를 해보라고 후루야 박사를 붙여줬다. 그도 연구를 너무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미쓰비시 생산라인의 실리콘 결정성장 장치를 다 개조해서 1년6개월간 실험을 했다."
- 미쓰비시는 왜 대규모 투자를 하면서 공동연구를 했을까.
"3등이니까. 1등이 하고 싶어서다. 기술과 삼성이라는 고객을 함께 확보하기 위해서다. 미쓰비시 입장에서도 이 기술 확보가 숙제였다. "
- 연구는 성공했나.
"1년반만에 구멍이 하나도 없는 웨이퍼를 만들어냈다. 1400도 이상 고온에서 액체 상태로 녹인 실리콘을 고체로 만드는데, 실리콘에서 열이 균일하게 빠져나가면 실리콘 원자가 빠져나가지 않아 구멍이 안 생긴다. 실리콘을 감싼 보온재의 열 분포를 잘 계산해서 설계하는 게 열쇠다. 이렇게 만든 웨이퍼로 디바이스를 만드니 수율이 10%나 뛰더라.
당시 삼성전자가 발명자 보상제도를 도입해 최초로 1억을 받았다. 기술은 삼성 공정에 바로 채택돼 엄청난 비용 절감으로 이어졌다. 실리콘웨이퍼 1위 업체인 신에츠 등 4개국 기업에 이전해 기술료도 벌어들였다. 반도체 재료 강국 일본에 처음 기술수출을 한 것이다. 그게 현재 전세계 D램 회사의 표준으로 쓰이는 무결점 실리콘웨이퍼다. 미쓰비시는 이 기술에 힘입어 시장 1위로 올랐다.
당시 삼성 사내방송에 '박재근 부장의 삶' 특집방송이 나가고 언론의 집중조명도 받았다."
- 돈도 벌고 명예도 얻고, 부러울 게 없었을 것 같다.
"그런데 정작 1억을 받고 이혼당할 뻔했다. 기술개발 과정에서 도와준 부서들에 1000만원씩 주고, 아래 직원들한테 몇백만원씩 주고 하다 보니 통장에 1000여만원밖에 안 남더라. 집사람은 집사람대로 사내방송이 뜨고 신문에 나오고 하니 주변에 밥도 사고 했는데, 남은 액수를 보고는 허탈해 하더라."(웃음)
- 삼성에서 잘 나가던 시기에 대학으로 옮겼다. 계기가 뭔가.
"할 일이 없으니 공황상태가 되더라. 다른 재료를 연구하려 해도 시장을 주도하는 미국기업들이 문을 열지 않았다. IMF로 부서원 일부를 내보내야 하는 힘든 시기이기도 했다.
그런데 당시 한양대 석사과정 지도교수였던 곽계달 교수가 삼성 사내방송 비디오테이프를 총장에게 보여줬다. 그걸 계기로 한양대로 옮기게 됐다. 대학에서는 기업과 달리 국제 공동연구가 쉽다는 판단도 있었다. 삼성에서 지원받은 유학비는 퇴직금과 회사에서 받은 주식 등으로 말끔히 계산했다."
- 대학에선 뭘 연구했나.
"고마운 게 이윤우 부회장이 당시 회사 노후장비 30억원 어치를 기증해 줬다. 그 설비로 재료를 연구했다. 반도체에서 연마 재료가 중요해지고 삼성도 그 공정을 도입하는 시점이었다. 나노입자로 된 연마제를 화학 분야 동료교수들과 협력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개발한 기술은 테크노세미컴(현 솔브레인)에 이전해 당시 미국회사가 100% 차지하고 있던 시장을 우리 기술로 완전 대체했다. 그때 눈을 뜬 게 있는데 남이 다 해놓은 거는 기술 개발을 해도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이후 업그레이드된 연마제도 개발해 케이시텍에 이전했다. 2004년 기술을 완성하고도 시장 1위 업체인 히타치에 밀려 채택되지 못하다가 결국 삼성과 SK하이닉스에서 선택했다. 히타치 100% 의존에서 국산 제품이 50% 채택된 것이다."
- 웨이퍼 기술도 계속 연구했는데.
"반도체 공정에서 중금속 오염을 없애는 게 50년간 산업계 숙제였다. 웨이퍼 깊숙이 구멍을 만든 후 이산화규소 덩어리를 넣어 중금속을 빨아당기도록 하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삼성, 미쓰비시와 다시 공동연구를 시작했다. 이것도 후루야 박사와 함께 했다. 이게 슈퍼실리콘웨이퍼 기술이다.
2001년 삼성의 기술 개발 소식이 전세계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고, 삼성에서 기술료로 600만달러를 받았다. 당시 학교에 40%를 주로 남은 기술료 중 20억원 정도를 장치 사는 데 썼다. 다행히 이번엔 이혼 위기는 없었다.(웃음) 삼성은 미쓰비시 등 다른 기업들에 엄청난 규모의 기술 수출을 했다."
- 치열한 연구자의 삶을 살아가는 동력은 무엇인가.
"삼성에서부터 경험한 '1등의 희열'이다. 1등을 하는 건 외롭고 힘들지만 희열은 대단하다. 연구실에 40명 정도 대학원생이 있는데 학생들에게 '너희는 이미 세계 1등 연구실에 와 있고 세계 1등 회사에 갈 것이다. 연구도 1등 해야 한다. 1등을 하면 항상 최초라는 말이 붙는다. 또 사회가 바뀌어서 발명에는 보상이 따르니 얼마나 좋으냐'고 말한다."
- 쌍둥이 아들의 이야기가 항간에 화제였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쌍둥이 아들들이 영주권을 포기하고 2012년 해병대에서 가장 힘들면서도 경쟁이 치열한 수색대를 지원해 나란히 입대한 소식이 언론에 소개됐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유난히 잘했는데, 해병대에 들어간 후에도 높은 경쟁률을 뚫고 수색대에 뽑혀 경기도 김포에 위치한 해병대 청룡부대에서 근무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캐나다로 간 후 14년간 외국에서 생활했는데 군대생활을 통해 확실히 한국을 알게 되고 한국사람이 됐다. 지금은 제대하고 국내에 있다."
- 앞으로 연구 목표는 무엇인가.
"차세대 D램으로 불리는 수직자화형 메모리(STT MRAM) 기술을 개발중인데 양산까지 보는 게 꿈이다. 지금 목숨 걸고 연구하고 있다. 이 기술이 2020년께 상용화되면 기존 D램의 집적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것이다. 좋은 인프라가 있고 연구가 쌓이다 보니 우리 연구팀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삼성과 협력하고 있는데 신뢰성과 수율, 에칭기술 보완이 아직 필요하다. 뇌 모방 반도체도 연구하고 있는데 유럽, 미국 등이 대규모 프로젝트를 하는데 비해 우리는 투자가 너무 적다. 당장 상용화하기 힘들어도 안 해 놓으면 나중에 원천기술과 산업 주도권을 다 빼앗길 수 있다."
안경애기자 naturean@dt.co.kr
사진 = 김민수기자 ultrartist@
■ 박재근 교수는…
박재근 교수는 반도체 재료와 소자 부문 세계적 과학자다. 59년생으로 동아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전자에 입사, 메모리 사업 성공신화를 함께 일궜다.
재직 중 한양대에서 전자공학 석사, 미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에서 재료공학 박사를 받은 그는 1999년 한양대 교수로 적을 옮겼다. 이후 첨단 반도체 기술을 개발해 끊임없이 산업계에 이전해 국내 반도체 산업 기술력 업그레이드를 이끌었다.
한양대 산학협력단장,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차세대메모리개발사업단장,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지식재산위원장,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거나 맡고 있으며, 한국공학한림원 젊은 공학인상(2009), 발명의 날 녹조근정훈장(2010), 한양대 석학교수상(2011), 특허청 대학공공연구기관 우수연구자 포상(2012) 등을 받았다. 미래창조과학부 창조경제 규제개선 옴부즈만 총괄을 맡아 창조경제 생태계 개선에도 기여하고 있다.
치열한 선진국과의 경쟁의 틈바구니에 한국을 '반도체 1등 국가'로 끌어올리는 데 주춧돌 역할을 한 인물이 있다. 바로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박재근 석학교수다.
박 교수는 미국과 일본 기술을 모방해 출발한 우리 반도체 산업이 이들 반도체 강국에 기술 수출을 하는 기록을 세웠다. 바로 그가 개발한 무결점 실리콘웨이퍼 기술이다. 삼성전자 재직 시절 일본 재료과학자들이 수십년간 풀지 못한 무결점 실리콘웨이퍼 기술을 개발해 삼성전자 최초로 사내 발명보상료로 1억원을 받았다. 삼성은 이 기술을 일본 등 해외 기업에 이전해 최초로 1000만달러 해외 기술이전을 이뤄냈다. 한양대로 적을 옮긴 후에는 세계 슈퍼실리콘웨이퍼를 개발해 삼성전자로 기술 이전하며 국내 최대 기술이전 규모를 기록했다.
'월화수목금금금' 생활을 30년간 이어온 박 교수는 탄탄한 체격과 체력의 비결을 묻자 "하루에도 몇 번씩 연구실과 실험실을 오가고, 실험실에서 오랫동안 서서 학생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운동이 저절로 된다"며 "일하다 보면 식사도 제때 못 먹으니 살도 절로 빠진다"고 말했다.
삼성 입사 동기로 오랫동안 옆에서 지켜본 최진석 (주)한화 제조부문 운영혁신총괄사장(전 STX솔라 사장)은 그를 두고 "한가지 일에 무섭게 파고드는 집중력과 친화력을 무기로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며 함께 팀을 꾸려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를 해낸다"며 "아이디어가 많고 정통한 현장 지식으로 무장한 뛰어난 엔지니어이면서 친화력과 네트워킹 능력까지 갖춘 게 강점"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와 공동연구를 해온 이종호 서울대 교수(전기정보공학부)는 "친화력과 열정을 토대로 팀워크를 잘 만들어내고 이를 성과로 연결하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평했다.
인터뷰 = 안경애 생활과학부장
- 30년간 반도체 분야에 몸담았다. 첫 출발은 어땠나.
"85년 1월에 삼성에 입사했다. 당시 기흥 허허벌판 한가운데 성냥갑 같은 공장만 서 있었다.(최진석 사장은 당시의 기흥을 '아오지탄광'으로 표현했다) 삼성전자가 해외 기술을 들여와 64k D램 생산을 막 시작한 시기였다. 김기남 삼성전자 사장, 이윤우 전 부회장, 김광호 전 부회장, 이상환 전 사장 등 삼성의 반도체 사업을 일으킨 1세대들과 함께 일했다.
당시 가건물 기숙사에서 모두 생활했는데 겨울에는 감기를 달고 살았다. 입사 후 처음 한 일은 대걸레로 공장 공사장 바닥을 닦는 일이었다. 반도체공장은 바닥을 깊이 파 콘크리트로 덮는데 인부 중 꼭 여기에 실례를 하는 이들이 있었다. 클린룸을 설치하려면 청결이 중요하니 매일 닦아야 했다."
- 삼성으로선 미래를 걸고 반도체에 대규모 투자를 시작한 시기였다.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당시 메모리산업은 도시바, 히타치, NEC가 3강이고 삼성은 일본기업의 전성기에 뛰어든 후발주자였다. 고 이병철 회장은 매주 한두번 공장에 내려와 직접 현장을 뛰어다녔는데 비 오면 흙탕물 때문에 장화를 신고 다니던 모습이 선하다.
당시 회사 식당 음식이 매우 훌륭했는데, 어느 날 이 회장이 '여기가 삼성의 미래인데 음식이 이게 뭐냐. 신라호텔에서 여기로 데려온 것은 미래 준비를 돕도록 하기 위해서인데'라며 주방장을 혼냈다. 그만큼 이 회장의 애정과 기대가 컸다.
당시 통신에서 번 돈을 반도체에 투자해 엄청난 속도로 공장이 늘었는데, 세번째 공장인 1M D램부터 반도체가 팔리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기술력과 생산량이 확 늘었다. 이 3라인 셋업 TF가 당시 이상환 담당, 김재욱 과장, 장원기 과장, 박재근 주임이었다. (박 교수를 제외한 3명은 모두 삼성에서 사장까지 지냈다) 3라인을 성공적으로 잘 만든 공로로 회사에서 미국 박사과정 유학을 보내줬다."
- 전자공학을 전공했는데 박사과정에서 재료공학을 했다. 뭘 연구했나.
"실리콘 결정성장을 연구했다. 반도체 실리콘웨이퍼를 잘 제어해야 수율이 높아지고 생산단가를 낮출 수 있다.
실리콘웨이퍼에 실리콘 원자가 빠진 부분이 생기는데 이게 뭉치면 커다란 구멍이 돼서 문제가 생긴다. 그 구멍이 없는 웨이퍼를 성장시키는 방법을 연구했다."
- 연구가 귀국 후 어떻게 이어졌나.
"회사가 직접 실리콘웨이퍼를 만들지 않으니 자체 실험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당시 웨이퍼 3위 회사 미쓰비시와 공동연구를 시작했다. 그때 운명적으로 만난 사람이 미쓰비시의 나가사와 회장이다. 엔지니어 출신인 그가 내 기술 실험 제안을 받아들여 줬다. 비용은 미쓰비시가 대고, 기술을 개발하면 제품을 삼성이 사주는 조건이었다.
나가사와 회장이 당시 '박 박사와 똑같은 스타일의 사람이 있으니 함께 연구를 해보라고 후루야 박사를 붙여줬다. 그도 연구를 너무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미쓰비시 생산라인의 실리콘 결정성장 장치를 다 개조해서 1년6개월간 실험을 했다."
- 미쓰비시는 왜 대규모 투자를 하면서 공동연구를 했을까.
"3등이니까. 1등이 하고 싶어서다. 기술과 삼성이라는 고객을 함께 확보하기 위해서다. 미쓰비시 입장에서도 이 기술 확보가 숙제였다. "
- 연구는 성공했나.
"1년반만에 구멍이 하나도 없는 웨이퍼를 만들어냈다. 1400도 이상 고온에서 액체 상태로 녹인 실리콘을 고체로 만드는데, 실리콘에서 열이 균일하게 빠져나가면 실리콘 원자가 빠져나가지 않아 구멍이 안 생긴다. 실리콘을 감싼 보온재의 열 분포를 잘 계산해서 설계하는 게 열쇠다. 이렇게 만든 웨이퍼로 디바이스를 만드니 수율이 10%나 뛰더라.
당시 삼성전자가 발명자 보상제도를 도입해 최초로 1억을 받았다. 기술은 삼성 공정에 바로 채택돼 엄청난 비용 절감으로 이어졌다. 실리콘웨이퍼 1위 업체인 신에츠 등 4개국 기업에 이전해 기술료도 벌어들였다. 반도체 재료 강국 일본에 처음 기술수출을 한 것이다. 그게 현재 전세계 D램 회사의 표준으로 쓰이는 무결점 실리콘웨이퍼다. 미쓰비시는 이 기술에 힘입어 시장 1위로 올랐다.
당시 삼성 사내방송에 '박재근 부장의 삶' 특집방송이 나가고 언론의 집중조명도 받았다."
- 돈도 벌고 명예도 얻고, 부러울 게 없었을 것 같다.
"그런데 정작 1억을 받고 이혼당할 뻔했다. 기술개발 과정에서 도와준 부서들에 1000만원씩 주고, 아래 직원들한테 몇백만원씩 주고 하다 보니 통장에 1000여만원밖에 안 남더라. 집사람은 집사람대로 사내방송이 뜨고 신문에 나오고 하니 주변에 밥도 사고 했는데, 남은 액수를 보고는 허탈해 하더라."(웃음)
- 삼성에서 잘 나가던 시기에 대학으로 옮겼다. 계기가 뭔가.
"할 일이 없으니 공황상태가 되더라. 다른 재료를 연구하려 해도 시장을 주도하는 미국기업들이 문을 열지 않았다. IMF로 부서원 일부를 내보내야 하는 힘든 시기이기도 했다.
그런데 당시 한양대 석사과정 지도교수였던 곽계달 교수가 삼성 사내방송 비디오테이프를 총장에게 보여줬다. 그걸 계기로 한양대로 옮기게 됐다. 대학에서는 기업과 달리 국제 공동연구가 쉽다는 판단도 있었다. 삼성에서 지원받은 유학비는 퇴직금과 회사에서 받은 주식 등으로 말끔히 계산했다."
- 대학에선 뭘 연구했나.
"고마운 게 이윤우 부회장이 당시 회사 노후장비 30억원 어치를 기증해 줬다. 그 설비로 재료를 연구했다. 반도체에서 연마 재료가 중요해지고 삼성도 그 공정을 도입하는 시점이었다. 나노입자로 된 연마제를 화학 분야 동료교수들과 협력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개발한 기술은 테크노세미컴(현 솔브레인)에 이전해 당시 미국회사가 100% 차지하고 있던 시장을 우리 기술로 완전 대체했다. 그때 눈을 뜬 게 있는데 남이 다 해놓은 거는 기술 개발을 해도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이후 업그레이드된 연마제도 개발해 케이시텍에 이전했다. 2004년 기술을 완성하고도 시장 1위 업체인 히타치에 밀려 채택되지 못하다가 결국 삼성과 SK하이닉스에서 선택했다. 히타치 100% 의존에서 국산 제품이 50% 채택된 것이다."
- 웨이퍼 기술도 계속 연구했는데.
"반도체 공정에서 중금속 오염을 없애는 게 50년간 산업계 숙제였다. 웨이퍼 깊숙이 구멍을 만든 후 이산화규소 덩어리를 넣어 중금속을 빨아당기도록 하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삼성, 미쓰비시와 다시 공동연구를 시작했다. 이것도 후루야 박사와 함께 했다. 이게 슈퍼실리콘웨이퍼 기술이다.
2001년 삼성의 기술 개발 소식이 전세계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고, 삼성에서 기술료로 600만달러를 받았다. 당시 학교에 40%를 주로 남은 기술료 중 20억원 정도를 장치 사는 데 썼다. 다행히 이번엔 이혼 위기는 없었다.(웃음) 삼성은 미쓰비시 등 다른 기업들에 엄청난 규모의 기술 수출을 했다."
- 치열한 연구자의 삶을 살아가는 동력은 무엇인가.
"삼성에서부터 경험한 '1등의 희열'이다. 1등을 하는 건 외롭고 힘들지만 희열은 대단하다. 연구실에 40명 정도 대학원생이 있는데 학생들에게 '너희는 이미 세계 1등 연구실에 와 있고 세계 1등 회사에 갈 것이다. 연구도 1등 해야 한다. 1등을 하면 항상 최초라는 말이 붙는다. 또 사회가 바뀌어서 발명에는 보상이 따르니 얼마나 좋으냐'고 말한다."
- 쌍둥이 아들의 이야기가 항간에 화제였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쌍둥이 아들들이 영주권을 포기하고 2012년 해병대에서 가장 힘들면서도 경쟁이 치열한 수색대를 지원해 나란히 입대한 소식이 언론에 소개됐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유난히 잘했는데, 해병대에 들어간 후에도 높은 경쟁률을 뚫고 수색대에 뽑혀 경기도 김포에 위치한 해병대 청룡부대에서 근무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캐나다로 간 후 14년간 외국에서 생활했는데 군대생활을 통해 확실히 한국을 알게 되고 한국사람이 됐다. 지금은 제대하고 국내에 있다."
- 앞으로 연구 목표는 무엇인가.
"차세대 D램으로 불리는 수직자화형 메모리(STT MRAM) 기술을 개발중인데 양산까지 보는 게 꿈이다. 지금 목숨 걸고 연구하고 있다. 이 기술이 2020년께 상용화되면 기존 D램의 집적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것이다. 좋은 인프라가 있고 연구가 쌓이다 보니 우리 연구팀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삼성과 협력하고 있는데 신뢰성과 수율, 에칭기술 보완이 아직 필요하다. 뇌 모방 반도체도 연구하고 있는데 유럽, 미국 등이 대규모 프로젝트를 하는데 비해 우리는 투자가 너무 적다. 당장 상용화하기 힘들어도 안 해 놓으면 나중에 원천기술과 산업 주도권을 다 빼앗길 수 있다."
안경애기자 naturean@dt.co.kr
사진 = 김민수기자 ultrartist@
■ 박재근 교수는…
박재근 교수는 반도체 재료와 소자 부문 세계적 과학자다. 59년생으로 동아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전자에 입사, 메모리 사업 성공신화를 함께 일궜다.
재직 중 한양대에서 전자공학 석사, 미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에서 재료공학 박사를 받은 그는 1999년 한양대 교수로 적을 옮겼다. 이후 첨단 반도체 기술을 개발해 끊임없이 산업계에 이전해 국내 반도체 산업 기술력 업그레이드를 이끌었다.
한양대 산학협력단장,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차세대메모리개발사업단장,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지식재산위원장,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거나 맡고 있으며, 한국공학한림원 젊은 공학인상(2009), 발명의 날 녹조근정훈장(2010), 한양대 석학교수상(2011), 특허청 대학공공연구기관 우수연구자 포상(2012) 등을 받았다. 미래창조과학부 창조경제 규제개선 옴부즈만 총괄을 맡아 창조경제 생태계 개선에도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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