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 지원 `디딤돌사업` 연구 인력ㆍ기술개발 경험ㆍ인프라 제공
새마을정신ㆍ창조경제 융합…가치관 변화ㆍ도전적 미래 열릴것
새마을정신ㆍ창조경제 융합…가치관 변화ㆍ도전적 미래 열릴것
■ 김재현 한국화학연구원 원장
김재현 한국화학연구원장은 부드러운 미소와 말투의 `소프트 리더'다.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도 본인의 의지를 밀어붙이기보단 느리더라도 토론을 통해 구성원들의 아이디어와 의지를 이끌어낸다.
일견 느려 보이지만 구성원들이 뭉쳐서 함께 나아가는 `소통 경영'을 통해 지난 2년여간 그는 화학연에 괄목할 만한 변화와 성과를 이뤄냈다. 기관평가에서 3년 연속 우수기관으로 선정돼 모범적인 출연연 모델로 주목받았고, 짜임새 있는 중소기업 지원사업 모델을 내놔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화학을 IT, 자동차, 바이오 등과 융합하는 미래형 연구에도 열심이다. 출연연 취지에 맞는 연구가 이뤄지도록 연구 기획부터 사업화까지 전체 단계의 시스템도 바꿔놨다.
늘 생각하고 그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는 `소프트 혁신가' 김 원장이 그리는 미래를 들어봤다.
대담=안경애 생활과학부장
- 기관에 대한 외부평가가 좋고 상복도 많은데 비결이 뭔가.
"출연연 기관평가에서 3년 연속 우수기관으로 평가됐고, 그중 2년은 연구회 소속기관 중 1등을 했다. 출연연 역할을 확실히 재정립하는 측면에서 새로운 시도들을 한 것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
화학연은 정관에 따르면 `화학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국가 신성장동력 창출에 기여'하기 위해 국가가 세운 특수 목적 전문기관이다. 그러나 지난 20년 가까이 PBS(연구과제중심제도) 제도 때문에 대학이나 출연연, 기업이 거의 구분이 없이 운영돼 왔다.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산학연과 똑같은 레벨로 경쟁하는 차원이 아니라 화학연 스스로 국책연구기관으로서 화학분야 컨트롤타워와 조정 역할을 하는 코디네이터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연구시스템을 바꾸고 조직문화를 바꾸는 등 다양한 도전을 한 것이 주목받은 것 같다.
기관평가 결과를 보면서 직원들에게 우리가 가는 방향이 옳다고 인정받은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좋은 시도라고 인정을 받은 만큼 이러한 제도와 정책들이 확고하게 정립돼 화학연이 독일의 연구기관처럼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연구소로 거듭났으면 한다."
- 출연연의 위상과 연구자들의 만족도가 과거보다 낮은 게 사실이다.
"세계적으로 독일 프라운호퍼연구회를 많이 벤치마킹하는데, 독일에서는 젊은이들이 프라운호퍼에 입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고 한다.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출연연도 그렇게 돼야 하고, 이를 위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무엇보다 연구자들의 연구환경과 분위기가 중요하다. 창의적인 생각은 찌들린 환경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편안하고 즐겁고 건강한 상황이 돼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구성원들이 건강하고 재미있고, 여유를 가지면서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소통에 노력하고 있다.
최근 직원건강과 복지 분야에 주목해 새로운 시도들을 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건강미인프로그램'은 2달 동안 직원들에게 건강관리 컨설팅과 식단관리를 해줘 체지방이 10% 떨어지면 포상을 하는 것이다. 직원들의 반응이 매우 좋고 서로 격려하며 건강을 챙기다 보니 조직 분위기도 좋아졌다."
- 2년여전 취임했을 때 첫인상과 각오는 어땠나.
"취임 후 출연연 스스로의 역할에 대한 인식과 자긍심, 구성원들의 조직문화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모 연구원 인사는 출연연에 대해 `개인사업자의 조합 같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협력과 융합보다는 개인간 경쟁이 너무 치열한 구조라는 것이다. 화학연은 그나마 덜한 상황인데, 그래도 개선이 필요해 보였다. 기관 설립목적은 `화학산업 발전과 신산업 창출'인데 내부를 들여다보면 연구비를 따서 연구하는 게 목적인 것처럼 보였다.
연구자 개인의 잘못은 아니고 시스템적인 문제이긴 한데, 우선 연구현장에서 생각을 바꾸고 국가 차원의 임무를 생각하자고, 생각의 변화가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직원들에게 얘기했다. 연구는 최종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고, 최종 목적은 화학산업 발전과 신산업 창출인 만큼 연구과제 기획부터 수행 전 단계에서 그 생각을 바탕에 깔고 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플래닝을 하면 정부도 설득이 되고 연구비도 더 확보할 수 있다는 신념이다."
- 연구시스템도 변화시켰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점을 들여다본 건가.
"연구를 위한 연구가 아니라 산업발전에 기여하는 연구가 디자인되도록 시스템을 만들었다. 대형 토목이나 건설사업에는 감리단이 상주해서 항상 검증을 한다. 건설은 한 번 완성되면 허물 수 없으니 기초부터 마지막까지 감리를 하는 것이다. 연구과제도 3∼5년이 지나 종료되면 되돌릴 수 없다.
과제를 기획하는 단계부터 수행, 성과창출, 특허등록, 마케팅 등 모든 단계에서 기관 목적에 부합하게 연구가 이뤄지도록 원내 원로급이나 퇴임 연구자, 외부 전문가로 감리단을 구성, 4P 분석 결과를 토대로 연구자들을 컨설팅하고 있다. 연구의 본질적인 질 관리를 위해 품질관리협의회도 만들었다."
- 출연연 원장은 쉽지 않은 자리인데, 대학 총장 때와 어떤 차이가 있고 일과는 어떤지 궁금하다.
"국립대 총장이었으니 일의 패턴은 비슷하다. 주무부처가 있고 감사, 예산, 정원관리 등 비슷한 시스템이다 보니 총장 4년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다. 기관장 입장에서는 대학 총장보단 심리적 부담이 적고 일을 한 만큼 사업화, 조직변화 등 눈에 보이는 게 있다는 점이 좋다. 대학은 연구, 교육, 사회봉사 등 여러 목적과 임무가 있는데, 연구원은 단일한 고유 목적이 있으니 구성원들이 힘을 합치면 뭐든 할 수 있고 변화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그런 변화를 통해 구성원들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한다.
일과는 회의가 많은 편이다. 강요보다는 토론을 통해 과제들을 해결하려고 하다 보니 회의 시간이 긴 편이다."
- 출연연의 중요 미션으로 중소기업 지원이 떠올랐는데 화학연은 한발 앞서 가는 느낌이다.
"사실 우리나라만큼 중소기업 지원 프로그램이 많은 곳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들은 끊임없이 배가 고픈 게 현실이다. 원인은 지원프로그램이 개별적, 단편적으로 운영돼 중소기업들의 실제 역량을 키워주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강점을 최대한 활용해 `디딤돌 사업'을 만들었다. 우리 강점은 우수한 연구인력, 산업화 기술 개발 경험, 완벽한 연구 인프라다. 이 세 가지는 중소기업들에게는 가장 약한 부분이다. 성장잠재력이 있는 유망 화학 기업을 발굴해 멤버십을 체결하고 3년간 혁신역량을 키워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성장시키자는 것이다.
공동연구를 통해 단순한 애로기술 해결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연구자들에게 연구 방법론을 훈련시킨다. 이를 위해 200시간에 가까운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36개 멤버십 기업 중 3곳은 지난해 연구원에 부설연구소를 입주시켰고 3곳이 입주를 준비하고 있다. 나머지 30곳은 2016년 완공되는 중소기업 부설연구소 육성센터에 부설연구소를 입주시킨다. 화학연의 모든 연구그룹이 참여해 이들 기업을 전사적으로 밀착 지원한다. 화학산업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99%인데, 연구개발을 통해 성장동력을 만들어주자는 취지다."
- 최근 화학분야 기술 트렌드는 어떻고 왜 화학 연구에 투자해야 하나.
"지구온난화 등 글로벌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선 화학기술이 필수다. 예를 들어 산업현장에서 효율이 뛰어난 촉매를 개발하면 에너지 사용을 절감할 수 있다. 또 석유화학 대신 식물자원을 이용해 연료와 플라스틱을 만드는 바이오화학 기술이 개발되면 석유고갈에 대비할 수 있다. 각종 질병치료제 개발도 화학의 중요한 영역이다. 자동차와 화학산업, IT와 화학산업 등 화학과 다른 영역을 결합한 융합연구도 활발하다.
창조경제의 핵심은 주력산업 사이의 틈새분야다. 그 틈새를 공략하면 새로운 성장기회를 잡을 수 있다. IT도 화학산업이 필수적인데, 그동안 IT산업 따로, 화학산업 따로 하다보니 빈틈이 있다. 화학과 다른 산업과의 융합을 통해 빈틈을 산업으로 육성하면 성장과 고용 창출이 가능하다."
- 창조경제가 여전히 이슈다. 창조경제의 근간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과거 새마을 사업이 새마을 운동이 되고, 근면ㆍ자주ㆍ협동이라는 새마을 정신으로 이어졌다. 그 정신이 우리나라를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로 이끌었다. 그런데 지금은 멈춰 서 있다. 미국 프린스터대 폴 크루그만 교수는 동아시아 경제는 `땀(perspiration)'에 의해 이뤄졌지 `영감(inspiration)'에 의해 이뤄진 것이 아니라고 얘기했다.
3만달러, 4만달러 시대는 방정식을 달리해서 풀어야 한다. 창조경제 시대는 창의ㆍ융합ㆍ도전으로 열릴 것이다. 새마을운동 정신에다 창조경제 정신이 합쳐지면 1등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동안은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왔고 그래서 성공했다. 그런데 주력산업과 주력산업 사이에 빈틈이 많아졌다. 박 대통령은 산업간 융합을 통해 창조경제를 크게 일으켜야 한다고 자주 강조했다. 자동차와 화학산업의 융합, IT와 화학산업의 융합이 바로 그것이다. 화학연은 지난해 이미 이런 융합을 통한 화학산업 발전과 국가경쟁력 제고방안을 담은 발전전략인 `CHEMI 2020'을 수립하고 정부에 건의하고, 산학연에 전파했다. 자동차산업과 화학산업 융합은 현재 예비타당성 절차를 준비하고 있다.
새마을 사업이 국가적 정신으로 승화됐듯이, 창조경제 정신을 통해 가치관을 변화시키고 도전적인 미래를 설계해야 미래를 열 수 있다고 확신한다. 창조경제는 시기적절한 주제인데 너무 협의로만 해석되는 것 같아 아쉽다.
부처간 벽 허물기도 지적이 많은데 전체 부처 예산의 10%를 일괄 공제해 놓고 이를 창의ㆍ융합ㆍ도전 측면에서 부처간 협동사업에 쓰도록 대통령 주도로 추진하면 변화의 모티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평소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는지.
"전에 한 동료 교수가 `꿈돌이'라고 부르더라. 이상주의적인 면이 있고 생각을 많이 한다. 밤에 자다가도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깨서 메모하고, 지나치며 본 것도 생각을 떠올리게 하면 다시 집요하게 들여다 본다. 최근에는 내부 워크숍에서 이스라엘 와이즈만연구소의 독특한 연구건물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화학연의 랜드마크 건물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 연구원이 정원과 조경은 좋은데 건물이 삭막하다. 연구소는 창의적인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건물 디자인을 공모해서 분자모형 등 화학을 떠올리게 하는 모양을 접목해 높게 지으려고 한다. 연구원들이 건물만 쳐다봐도 리프레시되고 창의성이 샘솟을 수 있는 그런 건물을 만들고자 한다.
건강미인 프로젝트도 TV 방송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일본 중소기업이 직원들의 건강관리를 완벽하게 해주는 것을 보고 벤치마킹한 것이다. 지금 두 번째 하는데 33명 중 16명이 8주 동안 체지방률이 10% 줄었다. 서로 격려해가며 운동도 하니 팀워크도 좋아진다."
- 통합 연구회 출범으로 출연연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기대가 크다. 개별 연구원들이 할 수 없는 일들을 해줬으면 하는 바램이 크다. 중요한 숙제는 한국 이공계 출연연들의 중장기 발전계획 수립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출연연이 흔들린다는 지적이 있는데 흔들리지 않는 지향점을 만드는 작업이 중요하다.
지금은 97년 시작된 PBS 때문에 연구과제 수주 부담이 크다. 독일은 막스플랑크, 프라운호퍼 등 영역별 연구회가 있고 성격에 맞는 공공연구기관의 포맷이 딱 정해져 있는데, 우리는 그게 부족하다. 최근 미래부가 하는 출연연 고유임무 재정립 작업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거기서 한발 나아가 10∼20년 후까지 출연연이 해야 할 역할 규정과 전략이 정확하게 세워져야 한다고 본다.
또 개별 출연연들을 대표하는 협의체를 이사회와 별도로 공식적인 기구로 만들어서 각종 현안을 공유하고 논의를 하도록 하면 연구회가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우수 인재 확보, 교육훈련 등도 통합연구회의 중요한 역할이다."
- 미래의 꿈은 무엇인가.
"화학 관련 대중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재미있는 게임 요소를 가미해서 교육용 콘텐츠를 만들어 대중들에게 화학을 더 잘 알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물분자의 여행'이란 구체적인 아이템도 생각했는데, 땅, 인체 등 모든 곳에 존재하는 물분자를 의인화시켜 따라다니는 식으로 만들면 대중들이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이 일종의 창조경제라고 생각한다. 문화와 콘텐츠가 중요하다."
■ 김재현 한국화학연구원장은…
◇학력
-1975.2 진주고등학교 졸업
-1979.2 서울대 화학교육과 졸업
-1981.2 KAIST 화학 석사
-1989.8 KAIST 화학 박사
◇경력
-1981.3∼1983.3 과학기술부 화공사무관
-1983.4∼ 국립공주대 화학교육과 교수
-1993.9∼1994.8 미국 위스콘신대(매디슨) 화학과 교환교수
-1995.8∼1998.6 국립공주대 멀티미디어연구소장
-1996.3∼1998.2 국립공주대 과학교육연구소장
-1998.6∼2001.2 국립공주대 기획연구처장
-1999.3∼2001.2 국립공주대 전자계산소 소장
-2001.3∼2002.3 교육인적자원부 국립대학발전위원회 위원
-2006.6∼2010.6 국립공주대 총장
-2007.3∼2008.2 전국국공립대학교총장협의회 부회장
-2008.4∼2010.3 호서지역총장협의회 회장
-2011.9∼ 한국화학연구원 원장
◇수상경력
-1989.4 대한화학회 `교육진보상` 수상
-2004.11 2004 대한민국 과학콘텐츠대상 최우수상 수상
-2006.12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동문회`자랑스런 동문` 수상
-2007.12 KAIST 총동문회 `올해의 동문` 수상
김재현 한국화학연구원장은 부드러운 미소와 말투의 `소프트 리더'다.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도 본인의 의지를 밀어붙이기보단 느리더라도 토론을 통해 구성원들의 아이디어와 의지를 이끌어낸다.
일견 느려 보이지만 구성원들이 뭉쳐서 함께 나아가는 `소통 경영'을 통해 지난 2년여간 그는 화학연에 괄목할 만한 변화와 성과를 이뤄냈다. 기관평가에서 3년 연속 우수기관으로 선정돼 모범적인 출연연 모델로 주목받았고, 짜임새 있는 중소기업 지원사업 모델을 내놔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화학을 IT, 자동차, 바이오 등과 융합하는 미래형 연구에도 열심이다. 출연연 취지에 맞는 연구가 이뤄지도록 연구 기획부터 사업화까지 전체 단계의 시스템도 바꿔놨다.
늘 생각하고 그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는 `소프트 혁신가' 김 원장이 그리는 미래를 들어봤다.
대담=안경애 생활과학부장
- 기관에 대한 외부평가가 좋고 상복도 많은데 비결이 뭔가.
"출연연 기관평가에서 3년 연속 우수기관으로 평가됐고, 그중 2년은 연구회 소속기관 중 1등을 했다. 출연연 역할을 확실히 재정립하는 측면에서 새로운 시도들을 한 것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
화학연은 정관에 따르면 `화학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국가 신성장동력 창출에 기여'하기 위해 국가가 세운 특수 목적 전문기관이다. 그러나 지난 20년 가까이 PBS(연구과제중심제도) 제도 때문에 대학이나 출연연, 기업이 거의 구분이 없이 운영돼 왔다.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산학연과 똑같은 레벨로 경쟁하는 차원이 아니라 화학연 스스로 국책연구기관으로서 화학분야 컨트롤타워와 조정 역할을 하는 코디네이터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연구시스템을 바꾸고 조직문화를 바꾸는 등 다양한 도전을 한 것이 주목받은 것 같다.
기관평가 결과를 보면서 직원들에게 우리가 가는 방향이 옳다고 인정받은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좋은 시도라고 인정을 받은 만큼 이러한 제도와 정책들이 확고하게 정립돼 화학연이 독일의 연구기관처럼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연구소로 거듭났으면 한다."
- 출연연의 위상과 연구자들의 만족도가 과거보다 낮은 게 사실이다.
"세계적으로 독일 프라운호퍼연구회를 많이 벤치마킹하는데, 독일에서는 젊은이들이 프라운호퍼에 입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고 한다.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출연연도 그렇게 돼야 하고, 이를 위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무엇보다 연구자들의 연구환경과 분위기가 중요하다. 창의적인 생각은 찌들린 환경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편안하고 즐겁고 건강한 상황이 돼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구성원들이 건강하고 재미있고, 여유를 가지면서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소통에 노력하고 있다.
최근 직원건강과 복지 분야에 주목해 새로운 시도들을 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건강미인프로그램'은 2달 동안 직원들에게 건강관리 컨설팅과 식단관리를 해줘 체지방이 10% 떨어지면 포상을 하는 것이다. 직원들의 반응이 매우 좋고 서로 격려하며 건강을 챙기다 보니 조직 분위기도 좋아졌다."
- 2년여전 취임했을 때 첫인상과 각오는 어땠나.
"취임 후 출연연 스스로의 역할에 대한 인식과 자긍심, 구성원들의 조직문화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모 연구원 인사는 출연연에 대해 `개인사업자의 조합 같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협력과 융합보다는 개인간 경쟁이 너무 치열한 구조라는 것이다. 화학연은 그나마 덜한 상황인데, 그래도 개선이 필요해 보였다. 기관 설립목적은 `화학산업 발전과 신산업 창출'인데 내부를 들여다보면 연구비를 따서 연구하는 게 목적인 것처럼 보였다.
연구자 개인의 잘못은 아니고 시스템적인 문제이긴 한데, 우선 연구현장에서 생각을 바꾸고 국가 차원의 임무를 생각하자고, 생각의 변화가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직원들에게 얘기했다. 연구는 최종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고, 최종 목적은 화학산업 발전과 신산업 창출인 만큼 연구과제 기획부터 수행 전 단계에서 그 생각을 바탕에 깔고 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플래닝을 하면 정부도 설득이 되고 연구비도 더 확보할 수 있다는 신념이다."
- 연구시스템도 변화시켰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점을 들여다본 건가.
"연구를 위한 연구가 아니라 산업발전에 기여하는 연구가 디자인되도록 시스템을 만들었다. 대형 토목이나 건설사업에는 감리단이 상주해서 항상 검증을 한다. 건설은 한 번 완성되면 허물 수 없으니 기초부터 마지막까지 감리를 하는 것이다. 연구과제도 3∼5년이 지나 종료되면 되돌릴 수 없다.
과제를 기획하는 단계부터 수행, 성과창출, 특허등록, 마케팅 등 모든 단계에서 기관 목적에 부합하게 연구가 이뤄지도록 원내 원로급이나 퇴임 연구자, 외부 전문가로 감리단을 구성, 4P 분석 결과를 토대로 연구자들을 컨설팅하고 있다. 연구의 본질적인 질 관리를 위해 품질관리협의회도 만들었다."
- 출연연 원장은 쉽지 않은 자리인데, 대학 총장 때와 어떤 차이가 있고 일과는 어떤지 궁금하다.
"국립대 총장이었으니 일의 패턴은 비슷하다. 주무부처가 있고 감사, 예산, 정원관리 등 비슷한 시스템이다 보니 총장 4년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다. 기관장 입장에서는 대학 총장보단 심리적 부담이 적고 일을 한 만큼 사업화, 조직변화 등 눈에 보이는 게 있다는 점이 좋다. 대학은 연구, 교육, 사회봉사 등 여러 목적과 임무가 있는데, 연구원은 단일한 고유 목적이 있으니 구성원들이 힘을 합치면 뭐든 할 수 있고 변화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그런 변화를 통해 구성원들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한다.
일과는 회의가 많은 편이다. 강요보다는 토론을 통해 과제들을 해결하려고 하다 보니 회의 시간이 긴 편이다."
- 출연연의 중요 미션으로 중소기업 지원이 떠올랐는데 화학연은 한발 앞서 가는 느낌이다.
"사실 우리나라만큼 중소기업 지원 프로그램이 많은 곳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들은 끊임없이 배가 고픈 게 현실이다. 원인은 지원프로그램이 개별적, 단편적으로 운영돼 중소기업들의 실제 역량을 키워주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강점을 최대한 활용해 `디딤돌 사업'을 만들었다. 우리 강점은 우수한 연구인력, 산업화 기술 개발 경험, 완벽한 연구 인프라다. 이 세 가지는 중소기업들에게는 가장 약한 부분이다. 성장잠재력이 있는 유망 화학 기업을 발굴해 멤버십을 체결하고 3년간 혁신역량을 키워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성장시키자는 것이다.
공동연구를 통해 단순한 애로기술 해결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연구자들에게 연구 방법론을 훈련시킨다. 이를 위해 200시간에 가까운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36개 멤버십 기업 중 3곳은 지난해 연구원에 부설연구소를 입주시켰고 3곳이 입주를 준비하고 있다. 나머지 30곳은 2016년 완공되는 중소기업 부설연구소 육성센터에 부설연구소를 입주시킨다. 화학연의 모든 연구그룹이 참여해 이들 기업을 전사적으로 밀착 지원한다. 화학산업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99%인데, 연구개발을 통해 성장동력을 만들어주자는 취지다."
- 최근 화학분야 기술 트렌드는 어떻고 왜 화학 연구에 투자해야 하나.
"지구온난화 등 글로벌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선 화학기술이 필수다. 예를 들어 산업현장에서 효율이 뛰어난 촉매를 개발하면 에너지 사용을 절감할 수 있다. 또 석유화학 대신 식물자원을 이용해 연료와 플라스틱을 만드는 바이오화학 기술이 개발되면 석유고갈에 대비할 수 있다. 각종 질병치료제 개발도 화학의 중요한 영역이다. 자동차와 화학산업, IT와 화학산업 등 화학과 다른 영역을 결합한 융합연구도 활발하다.
창조경제의 핵심은 주력산업 사이의 틈새분야다. 그 틈새를 공략하면 새로운 성장기회를 잡을 수 있다. IT도 화학산업이 필수적인데, 그동안 IT산업 따로, 화학산업 따로 하다보니 빈틈이 있다. 화학과 다른 산업과의 융합을 통해 빈틈을 산업으로 육성하면 성장과 고용 창출이 가능하다."
- 창조경제가 여전히 이슈다. 창조경제의 근간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과거 새마을 사업이 새마을 운동이 되고, 근면ㆍ자주ㆍ협동이라는 새마을 정신으로 이어졌다. 그 정신이 우리나라를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로 이끌었다. 그런데 지금은 멈춰 서 있다. 미국 프린스터대 폴 크루그만 교수는 동아시아 경제는 `땀(perspiration)'에 의해 이뤄졌지 `영감(inspiration)'에 의해 이뤄진 것이 아니라고 얘기했다.
3만달러, 4만달러 시대는 방정식을 달리해서 풀어야 한다. 창조경제 시대는 창의ㆍ융합ㆍ도전으로 열릴 것이다. 새마을운동 정신에다 창조경제 정신이 합쳐지면 1등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동안은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왔고 그래서 성공했다. 그런데 주력산업과 주력산업 사이에 빈틈이 많아졌다. 박 대통령은 산업간 융합을 통해 창조경제를 크게 일으켜야 한다고 자주 강조했다. 자동차와 화학산업의 융합, IT와 화학산업의 융합이 바로 그것이다. 화학연은 지난해 이미 이런 융합을 통한 화학산업 발전과 국가경쟁력 제고방안을 담은 발전전략인 `CHEMI 2020'을 수립하고 정부에 건의하고, 산학연에 전파했다. 자동차산업과 화학산업 융합은 현재 예비타당성 절차를 준비하고 있다.
새마을 사업이 국가적 정신으로 승화됐듯이, 창조경제 정신을 통해 가치관을 변화시키고 도전적인 미래를 설계해야 미래를 열 수 있다고 확신한다. 창조경제는 시기적절한 주제인데 너무 협의로만 해석되는 것 같아 아쉽다.
부처간 벽 허물기도 지적이 많은데 전체 부처 예산의 10%를 일괄 공제해 놓고 이를 창의ㆍ융합ㆍ도전 측면에서 부처간 협동사업에 쓰도록 대통령 주도로 추진하면 변화의 모티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평소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는지.
"전에 한 동료 교수가 `꿈돌이'라고 부르더라. 이상주의적인 면이 있고 생각을 많이 한다. 밤에 자다가도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깨서 메모하고, 지나치며 본 것도 생각을 떠올리게 하면 다시 집요하게 들여다 본다. 최근에는 내부 워크숍에서 이스라엘 와이즈만연구소의 독특한 연구건물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화학연의 랜드마크 건물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 연구원이 정원과 조경은 좋은데 건물이 삭막하다. 연구소는 창의적인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건물 디자인을 공모해서 분자모형 등 화학을 떠올리게 하는 모양을 접목해 높게 지으려고 한다. 연구원들이 건물만 쳐다봐도 리프레시되고 창의성이 샘솟을 수 있는 그런 건물을 만들고자 한다.
건강미인 프로젝트도 TV 방송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일본 중소기업이 직원들의 건강관리를 완벽하게 해주는 것을 보고 벤치마킹한 것이다. 지금 두 번째 하는데 33명 중 16명이 8주 동안 체지방률이 10% 줄었다. 서로 격려해가며 운동도 하니 팀워크도 좋아진다."
- 통합 연구회 출범으로 출연연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기대가 크다. 개별 연구원들이 할 수 없는 일들을 해줬으면 하는 바램이 크다. 중요한 숙제는 한국 이공계 출연연들의 중장기 발전계획 수립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출연연이 흔들린다는 지적이 있는데 흔들리지 않는 지향점을 만드는 작업이 중요하다.
지금은 97년 시작된 PBS 때문에 연구과제 수주 부담이 크다. 독일은 막스플랑크, 프라운호퍼 등 영역별 연구회가 있고 성격에 맞는 공공연구기관의 포맷이 딱 정해져 있는데, 우리는 그게 부족하다. 최근 미래부가 하는 출연연 고유임무 재정립 작업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거기서 한발 나아가 10∼20년 후까지 출연연이 해야 할 역할 규정과 전략이 정확하게 세워져야 한다고 본다.
또 개별 출연연들을 대표하는 협의체를 이사회와 별도로 공식적인 기구로 만들어서 각종 현안을 공유하고 논의를 하도록 하면 연구회가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우수 인재 확보, 교육훈련 등도 통합연구회의 중요한 역할이다."
- 미래의 꿈은 무엇인가.
"화학 관련 대중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재미있는 게임 요소를 가미해서 교육용 콘텐츠를 만들어 대중들에게 화학을 더 잘 알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물분자의 여행'이란 구체적인 아이템도 생각했는데, 땅, 인체 등 모든 곳에 존재하는 물분자를 의인화시켜 따라다니는 식으로 만들면 대중들이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이 일종의 창조경제라고 생각한다. 문화와 콘텐츠가 중요하다."
■ 김재현 한국화학연구원장은…
◇학력
-1975.2 진주고등학교 졸업
-1979.2 서울대 화학교육과 졸업
-1981.2 KAIST 화학 석사
-1989.8 KAIST 화학 박사
◇경력
-1981.3∼1983.3 과학기술부 화공사무관
-1983.4∼ 국립공주대 화학교육과 교수
-1993.9∼1994.8 미국 위스콘신대(매디슨) 화학과 교환교수
-1995.8∼1998.6 국립공주대 멀티미디어연구소장
-1996.3∼1998.2 국립공주대 과학교육연구소장
-1998.6∼2001.2 국립공주대 기획연구처장
-1999.3∼2001.2 국립공주대 전자계산소 소장
-2001.3∼2002.3 교육인적자원부 국립대학발전위원회 위원
-2006.6∼2010.6 국립공주대 총장
-2007.3∼2008.2 전국국공립대학교총장협의회 부회장
-2008.4∼2010.3 호서지역총장협의회 회장
-2011.9∼ 한국화학연구원 원장
◇수상경력
-1989.4 대한화학회 `교육진보상` 수상
-2004.11 2004 대한민국 과학콘텐츠대상 최우수상 수상
-2006.12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동문회`자랑스런 동문` 수상
-2007.12 KAIST 총동문회 `올해의 동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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