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구조로는 새로운 일을 할 수가 없어요. 모든 예산에는 세세한 꼬리표가 붙어서 1%의 융통성도 기대할 수 없고, 정해진 용도와 약간만 달라져도 서슬 퍼런 감사를 피하기 힘들어요. 주어진 일만 하지 않고 다른 부처와의 협업과 융합을 시도하려 해도 영역 침범이란 지적을 받기 일쑤고, 다른 부처 공무원들이 움직이지도 않죠. 알아서 잘 해보라는 얘기만 하더군요. 국회는 또 어떤가요. 온갖 지적을 하면서 정작 필요한 법안 처리는 나몰라라 하죠."
한 중앙부처 공무원의 푸념이다. 그는 나름 조명 받는 부처에서 중요한 부서에 배치돼 작년부터 1년 가까이 공 들여 한 사업을 하고 있다. 과거에 없던 새로운 사업이면서, 단순히 기술이나 장치를 도입하는 게 아니라 사회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의미 있는 일이다. 여러 부처와 민간, 전문가들이 함께 협업해야 하는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그러나 예산, 타부처 협업 등 곳곳에서 장애물을 만난 끝에 사업은 별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작년 초만 해도 부처 주요 사업으로 소개됐지만, 언제부턴가 각종 자료에서 찾아보기도 힘들다.
그는 만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런 정부시스템으론 융합은 언감생신"이란 말을 되풀이한다.
`융합', `도전', `상상'이 중시되는 시대지만 국가 운영체계는 이런 변화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1년 단위로 세밀하게 짜여진 예산계획은 융합에 도전하기 위해 사업에 새로운 아이디어나 변화를 접목할 수 없게 한다. 감사에 길들여진 공무원들은 변화와 융합보다는 현실 안주를 선택한다.
신기술이 신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정부부처들이 경쟁적으로 기술사업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정부 R&D 성과의 기업 이전과 벤처 창업에만 신경 쓸 뿐 공공에서 신기술을 적극 도입해 산업생태계를 만들어주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이 역시 감사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다른 기관에서 도입하지 않은 기술이나 제품을 먼저 도입했다가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한 공무원들은 이미 검증된 것만 도입하려 든다. 그것이 소프트웨어이든, 첨단 연구장비이든 별 차이가 없다.
국내 공급 실적이 없는 첨단 IT시스템을 해외 수출부터 한 모 벤처기업 대표는 해외에선 기술력을 치밀하게 평가했고, 공급실적이 문제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미국에서 첨단 벤처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과거에 없던 산업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혁신과 융합에 친화적인 국가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캘리포니아주가 구글의 무인자동차 도로 주행을 합법화하고, 미국 정부가 무인기 관련 제도화를 다른 나라보다 앞서 추진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이스라엘에는 모든 부처에 최고기술책임자(CTO)라 할 수 있는 차관급 수석과학자가 있어서 부처 정책에 기술을 빠르게 접목시키고 있다. 이들 수석과학자는 예산 편성권도 직접 갖고 있다. 부처 내에서 기술혁신이 상시적으로 이뤄지는 구조를 갖춘 것이다.
우리도 정부가 혁신을 받아들이는 문화와 체계를 하루 빨리 갖춰야 한다. 특히 각종 산업 정책과 규제를 정부가 지휘하는 시스템에선 정부 변화가 필수적이다.
최근 미래창조과학부와 경제단체, 연구기관들이 함께 작업해 `9+4 미래 성장동력`을 선정했다. 이달중 부처별 역할을 나누고, 5월에는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수립해 추진한다는 계획이지만 이 역시 실행력을 갖추려면 정부시스템 변화가 우선 필요하다.
위기의식과 명확한 목표, 강한 리더십 속에서 융합과 혁신은 빛을 발한다.
대한민국이 `융합 혁신`에서 새로운 성장엔진을 찾을 수 있도록 국가시스템의 전면적인 변화에 나설 때다.
안경애 생활과학부장 naturean@
한 중앙부처 공무원의 푸념이다. 그는 나름 조명 받는 부처에서 중요한 부서에 배치돼 작년부터 1년 가까이 공 들여 한 사업을 하고 있다. 과거에 없던 새로운 사업이면서, 단순히 기술이나 장치를 도입하는 게 아니라 사회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의미 있는 일이다. 여러 부처와 민간, 전문가들이 함께 협업해야 하는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그러나 예산, 타부처 협업 등 곳곳에서 장애물을 만난 끝에 사업은 별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작년 초만 해도 부처 주요 사업으로 소개됐지만, 언제부턴가 각종 자료에서 찾아보기도 힘들다.
그는 만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런 정부시스템으론 융합은 언감생신"이란 말을 되풀이한다.
`융합', `도전', `상상'이 중시되는 시대지만 국가 운영체계는 이런 변화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1년 단위로 세밀하게 짜여진 예산계획은 융합에 도전하기 위해 사업에 새로운 아이디어나 변화를 접목할 수 없게 한다. 감사에 길들여진 공무원들은 변화와 융합보다는 현실 안주를 선택한다.
신기술이 신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정부부처들이 경쟁적으로 기술사업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정부 R&D 성과의 기업 이전과 벤처 창업에만 신경 쓸 뿐 공공에서 신기술을 적극 도입해 산업생태계를 만들어주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이 역시 감사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다른 기관에서 도입하지 않은 기술이나 제품을 먼저 도입했다가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한 공무원들은 이미 검증된 것만 도입하려 든다. 그것이 소프트웨어이든, 첨단 연구장비이든 별 차이가 없다.
국내 공급 실적이 없는 첨단 IT시스템을 해외 수출부터 한 모 벤처기업 대표는 해외에선 기술력을 치밀하게 평가했고, 공급실적이 문제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미국에서 첨단 벤처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과거에 없던 산업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혁신과 융합에 친화적인 국가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캘리포니아주가 구글의 무인자동차 도로 주행을 합법화하고, 미국 정부가 무인기 관련 제도화를 다른 나라보다 앞서 추진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이스라엘에는 모든 부처에 최고기술책임자(CTO)라 할 수 있는 차관급 수석과학자가 있어서 부처 정책에 기술을 빠르게 접목시키고 있다. 이들 수석과학자는 예산 편성권도 직접 갖고 있다. 부처 내에서 기술혁신이 상시적으로 이뤄지는 구조를 갖춘 것이다.
우리도 정부가 혁신을 받아들이는 문화와 체계를 하루 빨리 갖춰야 한다. 특히 각종 산업 정책과 규제를 정부가 지휘하는 시스템에선 정부 변화가 필수적이다.
최근 미래창조과학부와 경제단체, 연구기관들이 함께 작업해 `9+4 미래 성장동력`을 선정했다. 이달중 부처별 역할을 나누고, 5월에는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수립해 추진한다는 계획이지만 이 역시 실행력을 갖추려면 정부시스템 변화가 우선 필요하다.
위기의식과 명확한 목표, 강한 리더십 속에서 융합과 혁신은 빛을 발한다.
대한민국이 `융합 혁신`에서 새로운 성장엔진을 찾을 수 있도록 국가시스템의 전면적인 변화에 나설 때다.
안경애 생활과학부장 natu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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