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원장
대담 = 장윤옥 생활과학부장
대담 = 장윤옥 생활과학부장
박영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원장은 인터뷰 시작부터 끝까지 줄곧 `사람'에 대해 말했다. 국가 미래를 좌우할 창조경제로의 패러다임 전환에 성공하려면 도전하는 창의적 인재를 길러내는 탄탄한 시스템을 갖추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고, 막 15살을 넘긴 KISTEP의 성장과 변화를 이뤄낼 이도 바로 내부 구성원들이라는 것.
박 원장은 대한민국을 이끌 인재들을 키우기 위해선 교육현장의 혁명, 특히 과학인재혁명 같은 전략적이고 선제적인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과학기술자를 비롯한 전문가집단이 전공과 직업에 투입하는 시간의 일부를 투입해서 국가의 미래 큰 그림을 그리는데 기여하는 `지식인혁명'을 제안했다. 이를 통해 어젠다를 현실로 옮겨야 10년째 이어지고 있는 저성장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박 원장을 서울 양재동 KISTEP 집무실에서 만났다.
대담=장윤옥 생활과학부 부장
- KISTEP 원장 취임 100일이 넘었다. 교수, 국회의원 시절 봐온 기관의 위상, 역할과 직접 겪어본 모습은 어떤지 궁금하다.
"지난 18대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과학계 숙원사업이었던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상설화 등 굵직굵직한 정책 이슈 현장에서 KISTEP을 접했었다. 취임 110일이 지났는데 외부에서 지켜보던 것보다 훨씬 중요한 임무를 하는 전문기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연구비를 집행하고 관리하는 기관은 각 부처별로 있지만 국가 차원의 과학기술 기획, 예산 배분, 평가 등 전 과정에 관여하는 기관은 KISTEP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도 과학기술 기획과 평가를 같이하는 기관은 드물다. 책임감이 무겁다.
앞으로 지향할 구체적인 비전과 해야 할 일을 구상하는데 바쁘다 보니 아직 숙제를 갖고 있는 것 같다."
- 지난 1일로 개원 15주년을 맞았는데 어떤 성과가 있었나.
"99년 설립 이후 과학기술 정책 수립과 효율적인 투자를 통해 국가 미래를 설계하고 기술혁신을 이끄는 R&D 기획평가 전문 기관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현재 170여명의 전문 연구인력이 급변하는 미래상황에 맞춰 국가 과학기술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야 하고, 어떤 전략과 시나리오가 필요한지 고민하고 있다.
또 국가R&D사업이 제대로 진행됐는지 평가하고 대형 국책사업에 대해 사전에 미리 타당성 조사도 진행한다. 얼마나 많은 예산이 국가R&D사업에 쓰였고, 민간 투자는 얼마나 되는지 등 효율적인 예산배분을 위한 각종 과학적인 조사분석도 주요 업무 중 하나다.
그동안 과학기술 분야 최상위 국가계획인 과학기술기본계획을 총 3차례 수립했다. 지난해 7월에는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구현 핵심동력인 과학기술 분야 청사진을 보여주는 제3차 과학기술기본계획도 세웠다. 무엇보다 3차 계획은 R&D부터 신산업ㆍ일자리 창출까지 과학기술혁신 전체 주기를 포괄함으로써 창조경제 실현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국가 과학기술 정책과 전략 수립을 위해 필수적인 미래예측과 전략기획 업무도 주요 성과다. 2035년까지 우리 사회에 등장할 미래기술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제시한 제4회 과학기술예측조사 결과도 발표했고 기술수준평가, 기술영향평가, 10대 미래유망기술 발굴 등 미래 사회 이슈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연구를 해오고 있다."
- 15주년을 맞은 기관의 지향점은.
"이제 청년기를 맞아 정책기획, 평가 등 고유 기능은 자리를 잡은 만큼 새로운 발전적 변화에 나설 때다. 국내에는 과학기술 분야 싱크탱크가 거의 없다. 경제 분야에서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정부를 상대로 독립적으로 정책 방향을 얘기하고 다양한 역량을 축적한 것과 마찬가지로 KISTEP은 국가 과학기술과 연구개발 어젠다를 발굴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싱크탱크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우선 향후 5년간은 창조경제 국가 구현을 위한 탄탄한 정책적 뒷받침을 해야 할 것이다.
공적개발원조(ODA)도 중요해지고 있는 만큼 과학기술을 국가 정책으로 수립해서 전략적으로 육성해 산업을 일으킨 노하우가 담긴 과학기술기본계획을 개도국에 전수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 창조경제 2년차를 맞아 정책 실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나.
"규제개혁, 평가제도 개선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핵심은 창의적인 인재를 어떻게 길러서 그들이 도전하게 하느냐라고 본다. 창의적 인재가 지속적으로 육성될 수 있는 교육시스템을 만들고, 이들이 과학기술 연구와 혁신에 매진해 스스로 성장하면서 국가 발전도 꾀할 수 있는 도전정신과 기업가정신을 갖도록 끊임없이 불러일으켜 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창조경제 실현을 위해 최우선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여기에 해외 우수 인재들과 함께 연구할 수 있는 융합환경 구축과 창조적 혁신을 뒷받침하는 기초연구 지원 강화가 필요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과학기술력을 향상시켜 창업활성화 및 `창직(創職)'을 통해 경제성장을 가져오는 혁신 체제 구축이 시급하다."
- 지난 기관 15주년 포럼에서 `캄브리아기의 대폭발'을 언급했는데 무슨 의미인지.
"약 5억4200만 년 전 다양한 종류의 생물이 갑작스럽게 출현한 현상이 `캄브리아기의 대폭발'이다. 당시 생명체의 기본인 세포가 완성된 후 폭발의 여건이 숙성됐다가 다양한 생물이 진화하고 결합하면서 많은 생명체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거대한 디지털혁명이 많은 일자리와 산업을 없애고 새로 탄생시키는 21세기 초는 변화에 앞서가는 이들이 창업을 통해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만드는 `창업가 폭발 시대'라고 할 수 있다. 90년대 후반 일었던 벤처붐과 닷컴열풍이 무너지면서 벤처생태계가 힘들어졌지만 미국도 우리도 `창업국가', `창조경제'가 국정 어젠다가 됐다. 15년전 닷컴붐과는 다른 의미에서 다양한 기술과 서비스가 결합되고 진화하면서 새로운 것들이 탄생하는 폭발적 창업이 가능한 시기라는 것이다.
10여년 전만 해도 창업을 하려면 최소 몇억이 필요했다. 고가의 인터넷 장비와 운영인력이 필요했는데 이제 장비를 살 필요 없이 서비스를 쓴 만큼 지불하면 된다. 몇천만원이면 창업할 수 있게 됐다.
디지털혁명과 문화, 예술, 아이디어 등 모든 분야가 융합된 소프트웨어 기반 정보혁명, 창조혁명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많은 선진국의 과제인 것 같다. 우리도 방향과 키워드는 잘 던졌고 이제 고민하며 실현해갈 때다."
- 이같은 변혁기의 핵심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어젠다와 방향을 실현하려면 사람, 인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과학기술 기반 창조경제 시대에 과학교육은 과학자를 길러내는 교육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갖출 소양을 길러주는 것이다. 문맹이 문명국가에서 살아가기 어렵듯이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변화하는 시대에 앞서가기 힘들다. 초ㆍ중ㆍ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전략적이고 선제적인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오늘날 디지털웨이브가 기존 직업들을 파괴하듯이 과거 산업혁명 시기에도 공장이 자동화되면서 수공업에 종사하던 일자리가 없어지면서 노동자들의 폭동이 일어나고 사회문제가 됐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계문명 시대에 능력과 소양이 있는 시민을 기르기 위해 대중교육시스템을 만들었다.
이제 시대 변화에 맞는 교육을 해야 한다. 학교 현장에서 실험실과 동떨어진 암기식 과학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융합과학 교과서가 2009년 만들어졌는데 막상 학교에서는 한 교사가 가르치는 게 아니라 교사들이 영역별로 나눠서 수업을 한다. 교사연수시스템도 턱없이 부족하다. 고등학교에서 문과는 과학을 2학년 이후 거의 배우지 않고 이과생도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중 한두 과목만 배운다. 그러다 보니 기본 과학교육 소양이 고1에 머물러 있다.
공무원, 교사 등 지나치게 안정적이고 글로벌 기준에 맞지 않은 영역에 대한 취업준비생들의 쏠림현상도 심각하다."
- 최근 과학기술정책이 창조경제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KISTEP은 위상을 어떻게 강화해야 한다고 보는지.
"과학기술 혁신체제 구축과 창의인재 육성이라는 창조경제 관련 과학기술 정책 이슈를 선점함으로써 기관 위상과 역할을 강화하려고 한다. 과학기술 혁신체제 구축을 위해 기술금융, 기업가정신, 창업네트워크 등 한국형 창업활성화 방안을 적극 모색하고 기업과 연구소, 대학 간의 장기적 협력모델을 발굴해 무늬만 갖춘 형식적 협력이 아니라 실질적인 결실이 맺어질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창조경제 실현의 주체인 창의인재 육성을 위해서는 경제ㆍ사회ㆍ기술 변화 등 새로운 수요를 예측하고 유망 직업군을 새로 발굴해 다양한 진로를 열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기관이 수행한 과학기술인력 중장기 수급전망 연구에 따르면 2022년까지 10년간 박사급 고급인재 1만2000여명이 부족할 전망이다. 이러한 인력수급 불균형 해소를 위해서는 과학기술인재에 대한 산업계의 요구 수준과 현재 인력의 질적 수준간 격차를 해소하는 정책적 지원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러한 시대적 역할에 맞는 기관 위상 강화를 위해 지난 연말부터 내부적으로 미래기획위원회를 운영, 기관 비전과 발전상을 손질하고 있다."
- 최근 평가제도 개선 이슈도 많은데 얼마나 바뀌고 있나.
"아직 연구현장까지 구체적인 개선은 되지 못하고 있다. 20∼30년전에는 R&D 평가제도가 아예 없었다. 그러다 제도가 생기면서 연구논문, 특허 같은 연구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려다 보니 논문, 특허의 양을 갖고 평가하기 시작했다. 이제 질적 평가지표 도입이 화두다. 질적 평가지표가 성공하려면 탄탄한 전문가 집단과 평가결과에 대한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국내에 연구자 집단이 수적으로 많지 않다 보니 여건이 쉽지 않다. 일본에 비해 인구는 3분의 1인데 연구자는 10분의 1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다. 한 분야에 사람이 많아야 평가를 질적으로 해도 탄탄하게 전문가가 들어오고 신뢰할 수 있는데 그런 점이 쉽지 않다. 또 신뢰사회가 충분히 구축되지 않고 시험에 의한 줄세우기 문화가 있다 보니 과연 점수화된 양적 평가 없이 질적 평가를 신뢰하느냐도 화두다.
우선은 기술 분야별로 가장 우수한 전문가가 하는 동료평가, 국제평가를 도입해야 할 것이다. 최근 공대 혁신이 이슈 중 하나인데, 창업가 정신을 고취하고 현장과 연결된 엔지니어를 많이 배출하려면 제도적으로 산학협력이 잘 일어나는 여건을 만들고 지표에 이를 반영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기초연구와 기초과학 분야는 R&D 포트폴리오를 짤 때 꾸준하게 장기과제를 할 수 있게 예산배분과 평가를 연계하는 방안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 정보 공유와 개방 추세에 따른 기관 변화 계획은.
"과학기술 정보를 만들고 분석ㆍ제공하는 기관 입장에서 정보 개방과 협업이 중요한 화두다. 내부적으로는 여러 분야 전문가들이 각각 자신이 맡은 업무에 집중하고 있는데, 그들이 업무 외에 전문분야 관련 일에도 협업할 수 있게 시스템을 만들고자 한다. 만약 우주공학 전공자가 다른 업무를 하고 있다면 메인 업무에 70% 집중하면서 30% 정도는 자신의 전공에 맞게 협업할 수 있는 협업시스템을 갖추겠다는 것이다. 개인 역량 발휘와 성과를 최대화하기 위한 협업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조직개편도 하고 협업 수준 평가방안도 만들 계획이다.
각 구성원에 대한 공정한 평가와 보상 방안도 만든다.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하고 그들이 의욕과 용기, 열정을 갖도록 북돋우는 일이 중요함을 절감한다. 작은 칭찬으로 힘을 주고, 일을 맡긴 후 신뢰를 보여주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수천명에 이르는 외부 전문가 집단 확보하고 있는 만큼 그들이 교류할 수 있는 개방형 플랫폼도 만들고자 한다. R&D 개방형 혁신 플랫폼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조직개편 및 업무수행 방식 개선안은 이달중 마무리해 실행에 옮길 것이다.
기관의 정체성과 역사, 브랜드 가치를 차곡차곡 쌓는 일에 노력을 기울여 직원들이 보다 자긍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하겠다."
- 마지막으로 과학기술계를 대표해 한마디 한다면.
"지금 활동하는 40∼70대까지는 행복한 세대였고, 성장하는 시대에 많은 기회를 가졌다. 지금은 저성장, 경제침체, 고용 문제, 갈등 조정역할 실종 등 위기상황이다. 과학기술계가 국가 리더그룹인 만큼 국가가 이 상황에서 탈출해서 제대로 된 성숙국가로 가기 위해 어떤 면에서는 마음을 비우는 자세도 필요한 것 같다. R&D만 해도 계속 증가해 왔는데 버릴 게 있는지 보는 자세도 있어야 한다고 본다. 조정이 필요한 곳에서는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교육혁명 얘기도 했지만 과학인재혁명이 일어나려면 말만으로는 안될 것 같다. 전문가집단이 전공과 직업에 투입하는 시간의 5∼10%만 투입해서 큰 국가 전략과 그림을 그리는데 기여하는 국민운동이 과학기술계에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책가 어젠다만 있으면 그냥 그렇게 세월만 가고, 행동하는 지식인혁명이 필요하다.
각자 하고 있는 일에 몰입하는 동시에 미래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협력하고 소통하는 자세와 열정이 필요한 것 같다."
정리=안경애기자 naturean@
사진=김민수기자 ultrartist@
박 원장은 대한민국을 이끌 인재들을 키우기 위해선 교육현장의 혁명, 특히 과학인재혁명 같은 전략적이고 선제적인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과학기술자를 비롯한 전문가집단이 전공과 직업에 투입하는 시간의 일부를 투입해서 국가의 미래 큰 그림을 그리는데 기여하는 `지식인혁명'을 제안했다. 이를 통해 어젠다를 현실로 옮겨야 10년째 이어지고 있는 저성장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박 원장을 서울 양재동 KISTEP 집무실에서 만났다.
대담=장윤옥 생활과학부 부장
- KISTEP 원장 취임 100일이 넘었다. 교수, 국회의원 시절 봐온 기관의 위상, 역할과 직접 겪어본 모습은 어떤지 궁금하다.
"지난 18대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과학계 숙원사업이었던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상설화 등 굵직굵직한 정책 이슈 현장에서 KISTEP을 접했었다. 취임 110일이 지났는데 외부에서 지켜보던 것보다 훨씬 중요한 임무를 하는 전문기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연구비를 집행하고 관리하는 기관은 각 부처별로 있지만 국가 차원의 과학기술 기획, 예산 배분, 평가 등 전 과정에 관여하는 기관은 KISTEP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도 과학기술 기획과 평가를 같이하는 기관은 드물다. 책임감이 무겁다.
앞으로 지향할 구체적인 비전과 해야 할 일을 구상하는데 바쁘다 보니 아직 숙제를 갖고 있는 것 같다."
- 지난 1일로 개원 15주년을 맞았는데 어떤 성과가 있었나.
"99년 설립 이후 과학기술 정책 수립과 효율적인 투자를 통해 국가 미래를 설계하고 기술혁신을 이끄는 R&D 기획평가 전문 기관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현재 170여명의 전문 연구인력이 급변하는 미래상황에 맞춰 국가 과학기술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야 하고, 어떤 전략과 시나리오가 필요한지 고민하고 있다.
또 국가R&D사업이 제대로 진행됐는지 평가하고 대형 국책사업에 대해 사전에 미리 타당성 조사도 진행한다. 얼마나 많은 예산이 국가R&D사업에 쓰였고, 민간 투자는 얼마나 되는지 등 효율적인 예산배분을 위한 각종 과학적인 조사분석도 주요 업무 중 하나다.
그동안 과학기술 분야 최상위 국가계획인 과학기술기본계획을 총 3차례 수립했다. 지난해 7월에는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구현 핵심동력인 과학기술 분야 청사진을 보여주는 제3차 과학기술기본계획도 세웠다. 무엇보다 3차 계획은 R&D부터 신산업ㆍ일자리 창출까지 과학기술혁신 전체 주기를 포괄함으로써 창조경제 실현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국가 과학기술 정책과 전략 수립을 위해 필수적인 미래예측과 전략기획 업무도 주요 성과다. 2035년까지 우리 사회에 등장할 미래기술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제시한 제4회 과학기술예측조사 결과도 발표했고 기술수준평가, 기술영향평가, 10대 미래유망기술 발굴 등 미래 사회 이슈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연구를 해오고 있다."
- 15주년을 맞은 기관의 지향점은.
"이제 청년기를 맞아 정책기획, 평가 등 고유 기능은 자리를 잡은 만큼 새로운 발전적 변화에 나설 때다. 국내에는 과학기술 분야 싱크탱크가 거의 없다. 경제 분야에서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정부를 상대로 독립적으로 정책 방향을 얘기하고 다양한 역량을 축적한 것과 마찬가지로 KISTEP은 국가 과학기술과 연구개발 어젠다를 발굴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싱크탱크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우선 향후 5년간은 창조경제 국가 구현을 위한 탄탄한 정책적 뒷받침을 해야 할 것이다.
공적개발원조(ODA)도 중요해지고 있는 만큼 과학기술을 국가 정책으로 수립해서 전략적으로 육성해 산업을 일으킨 노하우가 담긴 과학기술기본계획을 개도국에 전수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 창조경제 2년차를 맞아 정책 실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나.
"규제개혁, 평가제도 개선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핵심은 창의적인 인재를 어떻게 길러서 그들이 도전하게 하느냐라고 본다. 창의적 인재가 지속적으로 육성될 수 있는 교육시스템을 만들고, 이들이 과학기술 연구와 혁신에 매진해 스스로 성장하면서 국가 발전도 꾀할 수 있는 도전정신과 기업가정신을 갖도록 끊임없이 불러일으켜 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창조경제 실현을 위해 최우선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여기에 해외 우수 인재들과 함께 연구할 수 있는 융합환경 구축과 창조적 혁신을 뒷받침하는 기초연구 지원 강화가 필요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과학기술력을 향상시켜 창업활성화 및 `창직(創職)'을 통해 경제성장을 가져오는 혁신 체제 구축이 시급하다."
- 지난 기관 15주년 포럼에서 `캄브리아기의 대폭발'을 언급했는데 무슨 의미인지.
"약 5억4200만 년 전 다양한 종류의 생물이 갑작스럽게 출현한 현상이 `캄브리아기의 대폭발'이다. 당시 생명체의 기본인 세포가 완성된 후 폭발의 여건이 숙성됐다가 다양한 생물이 진화하고 결합하면서 많은 생명체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거대한 디지털혁명이 많은 일자리와 산업을 없애고 새로 탄생시키는 21세기 초는 변화에 앞서가는 이들이 창업을 통해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만드는 `창업가 폭발 시대'라고 할 수 있다. 90년대 후반 일었던 벤처붐과 닷컴열풍이 무너지면서 벤처생태계가 힘들어졌지만 미국도 우리도 `창업국가', `창조경제'가 국정 어젠다가 됐다. 15년전 닷컴붐과는 다른 의미에서 다양한 기술과 서비스가 결합되고 진화하면서 새로운 것들이 탄생하는 폭발적 창업이 가능한 시기라는 것이다.
10여년 전만 해도 창업을 하려면 최소 몇억이 필요했다. 고가의 인터넷 장비와 운영인력이 필요했는데 이제 장비를 살 필요 없이 서비스를 쓴 만큼 지불하면 된다. 몇천만원이면 창업할 수 있게 됐다.
디지털혁명과 문화, 예술, 아이디어 등 모든 분야가 융합된 소프트웨어 기반 정보혁명, 창조혁명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많은 선진국의 과제인 것 같다. 우리도 방향과 키워드는 잘 던졌고 이제 고민하며 실현해갈 때다."
- 이같은 변혁기의 핵심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어젠다와 방향을 실현하려면 사람, 인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과학기술 기반 창조경제 시대에 과학교육은 과학자를 길러내는 교육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갖출 소양을 길러주는 것이다. 문맹이 문명국가에서 살아가기 어렵듯이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변화하는 시대에 앞서가기 힘들다. 초ㆍ중ㆍ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전략적이고 선제적인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오늘날 디지털웨이브가 기존 직업들을 파괴하듯이 과거 산업혁명 시기에도 공장이 자동화되면서 수공업에 종사하던 일자리가 없어지면서 노동자들의 폭동이 일어나고 사회문제가 됐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계문명 시대에 능력과 소양이 있는 시민을 기르기 위해 대중교육시스템을 만들었다.
이제 시대 변화에 맞는 교육을 해야 한다. 학교 현장에서 실험실과 동떨어진 암기식 과학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융합과학 교과서가 2009년 만들어졌는데 막상 학교에서는 한 교사가 가르치는 게 아니라 교사들이 영역별로 나눠서 수업을 한다. 교사연수시스템도 턱없이 부족하다. 고등학교에서 문과는 과학을 2학년 이후 거의 배우지 않고 이과생도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중 한두 과목만 배운다. 그러다 보니 기본 과학교육 소양이 고1에 머물러 있다.
공무원, 교사 등 지나치게 안정적이고 글로벌 기준에 맞지 않은 영역에 대한 취업준비생들의 쏠림현상도 심각하다."
- 최근 과학기술정책이 창조경제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KISTEP은 위상을 어떻게 강화해야 한다고 보는지.
"과학기술 혁신체제 구축과 창의인재 육성이라는 창조경제 관련 과학기술 정책 이슈를 선점함으로써 기관 위상과 역할을 강화하려고 한다. 과학기술 혁신체제 구축을 위해 기술금융, 기업가정신, 창업네트워크 등 한국형 창업활성화 방안을 적극 모색하고 기업과 연구소, 대학 간의 장기적 협력모델을 발굴해 무늬만 갖춘 형식적 협력이 아니라 실질적인 결실이 맺어질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창조경제 실현의 주체인 창의인재 육성을 위해서는 경제ㆍ사회ㆍ기술 변화 등 새로운 수요를 예측하고 유망 직업군을 새로 발굴해 다양한 진로를 열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기관이 수행한 과학기술인력 중장기 수급전망 연구에 따르면 2022년까지 10년간 박사급 고급인재 1만2000여명이 부족할 전망이다. 이러한 인력수급 불균형 해소를 위해서는 과학기술인재에 대한 산업계의 요구 수준과 현재 인력의 질적 수준간 격차를 해소하는 정책적 지원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러한 시대적 역할에 맞는 기관 위상 강화를 위해 지난 연말부터 내부적으로 미래기획위원회를 운영, 기관 비전과 발전상을 손질하고 있다."
- 최근 평가제도 개선 이슈도 많은데 얼마나 바뀌고 있나.
"아직 연구현장까지 구체적인 개선은 되지 못하고 있다. 20∼30년전에는 R&D 평가제도가 아예 없었다. 그러다 제도가 생기면서 연구논문, 특허 같은 연구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려다 보니 논문, 특허의 양을 갖고 평가하기 시작했다. 이제 질적 평가지표 도입이 화두다. 질적 평가지표가 성공하려면 탄탄한 전문가 집단과 평가결과에 대한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국내에 연구자 집단이 수적으로 많지 않다 보니 여건이 쉽지 않다. 일본에 비해 인구는 3분의 1인데 연구자는 10분의 1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다. 한 분야에 사람이 많아야 평가를 질적으로 해도 탄탄하게 전문가가 들어오고 신뢰할 수 있는데 그런 점이 쉽지 않다. 또 신뢰사회가 충분히 구축되지 않고 시험에 의한 줄세우기 문화가 있다 보니 과연 점수화된 양적 평가 없이 질적 평가를 신뢰하느냐도 화두다.
우선은 기술 분야별로 가장 우수한 전문가가 하는 동료평가, 국제평가를 도입해야 할 것이다. 최근 공대 혁신이 이슈 중 하나인데, 창업가 정신을 고취하고 현장과 연결된 엔지니어를 많이 배출하려면 제도적으로 산학협력이 잘 일어나는 여건을 만들고 지표에 이를 반영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기초연구와 기초과학 분야는 R&D 포트폴리오를 짤 때 꾸준하게 장기과제를 할 수 있게 예산배분과 평가를 연계하는 방안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 정보 공유와 개방 추세에 따른 기관 변화 계획은.
"과학기술 정보를 만들고 분석ㆍ제공하는 기관 입장에서 정보 개방과 협업이 중요한 화두다. 내부적으로는 여러 분야 전문가들이 각각 자신이 맡은 업무에 집중하고 있는데, 그들이 업무 외에 전문분야 관련 일에도 협업할 수 있게 시스템을 만들고자 한다. 만약 우주공학 전공자가 다른 업무를 하고 있다면 메인 업무에 70% 집중하면서 30% 정도는 자신의 전공에 맞게 협업할 수 있는 협업시스템을 갖추겠다는 것이다. 개인 역량 발휘와 성과를 최대화하기 위한 협업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조직개편도 하고 협업 수준 평가방안도 만들 계획이다.
각 구성원에 대한 공정한 평가와 보상 방안도 만든다.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하고 그들이 의욕과 용기, 열정을 갖도록 북돋우는 일이 중요함을 절감한다. 작은 칭찬으로 힘을 주고, 일을 맡긴 후 신뢰를 보여주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수천명에 이르는 외부 전문가 집단 확보하고 있는 만큼 그들이 교류할 수 있는 개방형 플랫폼도 만들고자 한다. R&D 개방형 혁신 플랫폼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조직개편 및 업무수행 방식 개선안은 이달중 마무리해 실행에 옮길 것이다.
기관의 정체성과 역사, 브랜드 가치를 차곡차곡 쌓는 일에 노력을 기울여 직원들이 보다 자긍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하겠다."
- 마지막으로 과학기술계를 대표해 한마디 한다면.
"지금 활동하는 40∼70대까지는 행복한 세대였고, 성장하는 시대에 많은 기회를 가졌다. 지금은 저성장, 경제침체, 고용 문제, 갈등 조정역할 실종 등 위기상황이다. 과학기술계가 국가 리더그룹인 만큼 국가가 이 상황에서 탈출해서 제대로 된 성숙국가로 가기 위해 어떤 면에서는 마음을 비우는 자세도 필요한 것 같다. R&D만 해도 계속 증가해 왔는데 버릴 게 있는지 보는 자세도 있어야 한다고 본다. 조정이 필요한 곳에서는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교육혁명 얘기도 했지만 과학인재혁명이 일어나려면 말만으로는 안될 것 같다. 전문가집단이 전공과 직업에 투입하는 시간의 5∼10%만 투입해서 큰 국가 전략과 그림을 그리는데 기여하는 국민운동이 과학기술계에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책가 어젠다만 있으면 그냥 그렇게 세월만 가고, 행동하는 지식인혁명이 필요하다.
각자 하고 있는 일에 몰입하는 동시에 미래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협력하고 소통하는 자세와 열정이 필요한 것 같다."
정리=안경애기자 naturean@
사진=김민수기자 ultr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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