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로스 대왕(Alexander the Great, 기원전 356~323년)은 20세의 나이에 마케도니아의 왕위를 물려받았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는 안으로는 원로들의 오만을 제압했고, 밖으로는 주변국들의 반란을 응징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그리스 본토 세력을 규합할 수 있었고, 바다 건너 페르시아 제국을 타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페르시아를 정복하고도 멈추지 않았다. 세상 끝을 향하여 동쪽으로 `갈 데까지 가보자'는 그는, 요샛말로 `강남 스타일'의 폼 나는 `오빠'였다. 그는 페르시아의 심장 페르세폴리스를 점령한 후, 박트리아 왕국과 아프카니스탄을 정복하고, 인도 땅에 발을 들여놓을 때까지 단 한 차례도 패배하지 않았다. 불과 12년 만에 이룬 엄청난 일이었다. 헤라클레스와 아킬레우스라는 탁월한 영웅의 혈통을 타고났던 것. 선왕이었던 필립포스가 탁월한 군사적 지략으로 마케도니아를 강국으로 부상시켜 놓았던 것. 당대 지중해 세계 최고 석학으로 꼽히는 아리스토텔레스를 가정교사로 두고 제왕으로 교육되었던 것. 이 모든 것이 그를 최고의 전사로 우뚝 설 수 있게 해주었음에 틀림없다.
그 어린 나이에 세계를 정복한 그의 업적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 아니, 다른 질문을 던져보자. 천하를 움켜쥔 그는 과연 행복했을까? 그가 그리스 본토를 점령하였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왔다. 잘 보이기 위해서였다. 그는 디오게네스라는 철학자도 자신을 찾아와 인사를 하리라 기대했다. 디오게네스는 암흑과 같은 세상에서 훌륭한 사람을 꼭 찾아내고야 말겠다며 대낮에도 등불을 들고 다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가 찾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알렉산드로스가 직접 그를 찾아 나섰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교외의 한적한 곳에 누워 있는 그를 발견하고 알렉산드로스는 다가섰다. "난 알렉산드로스요, 당신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해줄 수 있소, 무엇을 원하시오?"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의 능력을 철학자 앞에서 과시하고 싶었다. 하지만 디오게네스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햇볕이 가리지 않게 조금만 비켜 주시겠소?" 알렉산드로스는 충격을 받았다. 말만 한다면 한 도시의 지도자가 될 수도 있었을 터. 아니 그런 식으로 대왕을 무시한다면, 그의 분노의 칼에 단숨에 목숨이 사라질 수도 있을 터. 그러나 디오게네스는 세속의 권력 앞에서 두려움이 없었다. 당당하고 도도했다. 감탄한 알렉산드로스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만일 알렉산드로스가 아니라면,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다."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야망에 불타오르던 젊은 왕의 눈에는 따뜻한 햇볕을 쬐며 제 알몸을 희롱하는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그지없이 행복해 보였다. 야망이 크다는 것은 그 크기만큼의 결핍을 안고 있다는 말이다. 결핍은 아픔이다. 야망을 품은 자는, 따라서 그 야망의 크기만큼 아프고 또 고프다. 그 고픔을 채우기 위해 언제나 애쓰고 긴장해야 하는 고단함이 숙명이다. 하지만 욕망을 다 내려놓는다면 세상을 향해 아낌없이 베푸는 따뜻한 햇볕 하나에도 행복할 수 있음을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알렉산드로스의 위대함은 그가 세계를 제패했다는 데에 있다기보다는, 디오게네스의 행복을 이해하고 부러워 할 줄 알았다는 데 있다. 곁에 있던 신하들은 디오게네스의 말과 행동을 비웃었지만, 알렉산드로스는 디오게네스가 깨달았던 인생의 가치와 행복의 비밀을 단숨에 깨달았다. 하지만 인정하고 부러워 할 줄만 알고, 결국 돌아서서 정복의 길을 떠난 데에서 알렉산드로스의 한계가 있다. 가슴에 이글거리는, 세계 정복의 욕망을 채우는 것이 알렉산드로스였기 때문이다. 디오게네스는, 말하자면 세계를 정복한 대신,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욕망을 정복한 현인(賢人)이었다.
지금 우리는 행복한가? 디오게네스처럼, 그 어떤 권위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나만의 `햇볕'을 지키기 위해 충분히 당당하고 도도한가? 행복은 거기에 달린 문제다.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그 어린 나이에 세계를 정복한 그의 업적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 아니, 다른 질문을 던져보자. 천하를 움켜쥔 그는 과연 행복했을까? 그가 그리스 본토를 점령하였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왔다. 잘 보이기 위해서였다. 그는 디오게네스라는 철학자도 자신을 찾아와 인사를 하리라 기대했다. 디오게네스는 암흑과 같은 세상에서 훌륭한 사람을 꼭 찾아내고야 말겠다며 대낮에도 등불을 들고 다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가 찾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알렉산드로스가 직접 그를 찾아 나섰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교외의 한적한 곳에 누워 있는 그를 발견하고 알렉산드로스는 다가섰다. "난 알렉산드로스요, 당신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해줄 수 있소, 무엇을 원하시오?"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의 능력을 철학자 앞에서 과시하고 싶었다. 하지만 디오게네스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햇볕이 가리지 않게 조금만 비켜 주시겠소?" 알렉산드로스는 충격을 받았다. 말만 한다면 한 도시의 지도자가 될 수도 있었을 터. 아니 그런 식으로 대왕을 무시한다면, 그의 분노의 칼에 단숨에 목숨이 사라질 수도 있을 터. 그러나 디오게네스는 세속의 권력 앞에서 두려움이 없었다. 당당하고 도도했다. 감탄한 알렉산드로스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만일 알렉산드로스가 아니라면,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다."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야망에 불타오르던 젊은 왕의 눈에는 따뜻한 햇볕을 쬐며 제 알몸을 희롱하는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그지없이 행복해 보였다. 야망이 크다는 것은 그 크기만큼의 결핍을 안고 있다는 말이다. 결핍은 아픔이다. 야망을 품은 자는, 따라서 그 야망의 크기만큼 아프고 또 고프다. 그 고픔을 채우기 위해 언제나 애쓰고 긴장해야 하는 고단함이 숙명이다. 하지만 욕망을 다 내려놓는다면 세상을 향해 아낌없이 베푸는 따뜻한 햇볕 하나에도 행복할 수 있음을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알렉산드로스의 위대함은 그가 세계를 제패했다는 데에 있다기보다는, 디오게네스의 행복을 이해하고 부러워 할 줄 알았다는 데 있다. 곁에 있던 신하들은 디오게네스의 말과 행동을 비웃었지만, 알렉산드로스는 디오게네스가 깨달았던 인생의 가치와 행복의 비밀을 단숨에 깨달았다. 하지만 인정하고 부러워 할 줄만 알고, 결국 돌아서서 정복의 길을 떠난 데에서 알렉산드로스의 한계가 있다. 가슴에 이글거리는, 세계 정복의 욕망을 채우는 것이 알렉산드로스였기 때문이다. 디오게네스는, 말하자면 세계를 정복한 대신,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욕망을 정복한 현인(賢人)이었다.
지금 우리는 행복한가? 디오게네스처럼, 그 어떤 권위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나만의 `햇볕'을 지키기 위해 충분히 당당하고 도도한가? 행복은 거기에 달린 문제다.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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