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강국 코리아` 첫걸음

국토의 중심 `연구ㆍ학원 도시` 최적지
1973년 제2연구단지 건설시안 `첫단추`
교통 `사통팔달`ㆍ기술이전 용이 장점
화성ㆍ청원 제치고 낙점 과기부흥 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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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강국 코리아` 첫걸음
1976년 3월 박정희 대통령이 대덕연구단지 건설 현장을 방문해 설명을 듣고 있다(위 왼쪽). 1976년 9월 23일 대덕연구단지 첫 입주기관인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기공식 장면(위 오른쪽). 1979년 2월 22일 박정희 대통령이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을 방문해 연구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아래 사진).
■ 대덕 40년, 미래 40년
(1) 대덕연구단지 세상에 태어나다


`대덕연구단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고, 지금도 널리 쓰이고 있는 지명을 나타내는 고유명사다. 그렇다면, 대덕연구단지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이른바 `박사동네'로 불리는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메카이자 상징이며, 한국 과학기술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대덕연구단지는 대한민국에 과학기술이라는 꽃을 피운 성상과도 같은 존재다.

허허벌판에 대덕연구단지가 첫 삽을 뜬 지 올해로 40주년을 맞는다. 1973년 1월 과학기술처 연두순시 업무보고에서 대통령의 지시로 대덕연구단지는 세상에 첫 발을 내딛게 됐다. 지난 40년간 대덕연구단지는 중화학공업 육성과 수출산업의 고도화, 첨단기술 개발 등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세계 10대 무역강국에 올라설 수 있게 한 주역이나 다름없다.

휴대전화 등 이동통신의 핵심기술인 CDMA를 비롯해 한국 표준형 원전,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인 우리별 1호, 공중에 떠서 달리는 자기부상열차, 나로호 등이 대덕연구단지에서 탄생했다. 40년이 흐른 지금 대덕연구단지는 대덕특구로 옷을 갈아입고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과학기술에 기반한 창조경제 구현의 선도자(Frist-Mover)로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본지는 대덕연구단지 탄생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난 40년의 발자취를 되짚어 보고 대덕연구단지에 입주해 `과학기술 강국 코리아'의 역사를 쓰고 있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차례로 살펴보는 기획시리즈 `대덕40년, 미래40년 `을 연재한다.

◇제2연구단지 건설시안이 첫 단추=1973년 1월 17일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19층 과학기술처. 이날은 박정희 대통령의 연두순시가 있었다. 이 자리에는 대통령을 비롯 국무총리, 부총리(경제기획원장관), 각 부처 장관, 청와대 비서진 등이 배석했다.

당시 과기처 장관은 최형섭 박사였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창시자이자 초대 소장이었던 그는 1971년 6월 과기처 장관으로 부임해 1970년대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을 주도한 탁월한 과학기술 행정가였다.

최 장관은 브리핑을 통해 선박, 기계, 석유화학, 전자 등 전략산업 기술연구기관의 단계적 설립과 서울에 산재해 있는 국공립 시험연구기관의 이전을 강조한 뒤 이들 연구기관을 한데 모아 연구기능과 역할을 극대화하기 위해 서울 홍릉단지에 이은 `제2의 연구단지 건설시안'을 제안했다.

"각하께서 이 사업의 추진을 허락해 주신다면 관계 부처와 구체적으로 협의해 건설계획을 수립하고 계획적으로 추진하려고 합니다"는 최 장관의 브리핑이 끝나자 박 대통령은 흥미있는 표정을 지으며 한참 침묵을 지킨 뒤 "연구ㆍ학원도시 건설계획을 구체화해 보도록 하시오"라고 지시했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지시가 대덕연구단지가 국가사업으로 출발하는 첫 단추가 된 것이다.

◇화성, 청원 따돌리고 대덕이 최적지로=대통령의 연구ㆍ학원도시 건설 지시 후 4개월이 지난 1971년 5월 18일 청와대에서 `제2연구단지 건설기본계획'안에 대한 브리핑이 있었다. 이 자리에는 박 대통령과 김종필 국무총리, 태완선 부총리, 남덕우 재무부장관, 김정렴 대통령비서실장, 최형섭 과기처장관 등 국가 요직들이 대거 참석했다.

브리핑에서는 연구단지 구상의 배경과 필요성, 연구단지 역할, 입주기관, 건설형태 및 규모, 입지선정 기준, 연구단지 후보지 현황 등이 보고됐다.

특히 후보지로 충남 대덕군(430만평,14.2㎢) 경기도 화성 팔단면(450만평,14.8㎢), 충북 청원군(420만평,13.8㎢) 등 세 곳이 추천됐다. 연구ㆍ학원 도시 건설사업은 과기처가 건설부, 내무부의 협조를 얻어 추진하고 과기처 산하에 연구ㆍ학원도시 건설본부를 설치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이어 입지 논의가 시작됐다. 먼저 김정렴 비서실장이 의견을 냈다

"부지 확보를 위해 우선 100만평만 구입한다면 낙동강 유역 매립지에도 적당한 후보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형섭 과기처 장관은 반대를 했다. "우수한 두뇌를 용이하게 집결시키기 위해서는 연구학원 도시를 대전 이남에 건설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또 공업용지나 농업용지는 연구학원 도시 건설에서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의견이 맞서자 김종필 국무총리가 대덕을 지지하고 나섰다.

"3개 후보지 중 대덕이 좋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화성은 방송시설 관계로 곤란하고 청원 또한 군사시설이 들어서게 됩니다."

대통령이 거들었다. "항공사진을 보니 대덕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날 논의를 거쳐 3개 후보지 중 충남 대덕이 연구ㆍ학원 도시 후보지로 최종 결정됐다. 10일 뒤 연구학원 도시 건설계획안은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명실상부한 국가계획사업으로 확정돼 정부 주도로 추진되게 됐다.

◇왜 대덕이 최적지였는가=연구ㆍ학원 도시 후보지 선정은 당시에도 뜨거운 감자였다. 건설계획 작업팀은 수차례에 걸친 5개 예비 후보지를 답사해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타당성을 점검했다. 이어 최종적으로 3개 후보지를 선정한 뒤 대통령 보고에 앞서 각 후보지에 대한 타당성 및 장단점을 충분히 논의하고 비교ㆍ검토한 결과를 건설계획안에 담았다.

브리핑 자리에서 진지한 토의와 다양한 의견 교환 끝에 공업용지나 식량자급을 위한 절대농지는 가급적 피하면서 우수 연구인력이 모이기에 비교적 용이한 수도권과 인접한 국토의 중심지이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3개 후보지 중 화성과 청원은 각각 방송시설, 군사시설 사업 등 정부의 또다른 계획사업과 중복됐다. 결국 대덕이 향후 연구학원 도시 역할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는 위치와 지형, 교통과 용수문제, 본래의 자연환경과 기타 주변 레저시설 등 종합적인 측면에서 최적의 후보지로 제시됐다.

대통령 역시 대덕에 대한 보고 내용과 항공사진을 근거로 대덕 일원이 연구ㆍ학원 도시 건설의 최적지임을 인정해 줬다.

구체적으로 대덕은 국토의 중심지에 위치해 전국에서 고급 두뇌들의 집결이 용이하고 산업기지 및 공업단지로의 기술이전도 수월하다. 교통 측면에서도 철도와 고속도로, 국도에 이르는 모든 교통망이 전 국토에 고루 연결되는 접점지이자 요충지이다. 대청댐과 금강이 인접해 있어 풍부한 용수확보가 쉽고 지형이 평평하고 구릉으로 돼 있어 지가가 저렴하고 평지가 많아 토지 조성이 비교적 용이한 장점을 갖고 있었다.

대전=이준기기자 bongc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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