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 시론] 인터넷 민ㆍ관 자율규제 필요하다

서종렬 한국인터넷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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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10-06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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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비 프린스. 미국 매사추세츠의 한 마을에 살던 15세의 이 여학생은 지난해 1월 스스로 생명을 끊었다. 4개월 전부터 다니던 학교의 인기 풋볼선수와 데이트를 한 것이 발단이었다.

질투심에 사로잡힌 일부 여학생들이 프린스를 매춘부를 뜻하는 각종 음란한 표현으로 부르기 시작했고,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물론 동네 생활정보 웹사이트에도 사진을 올려 비방과 욕설을 퍼부었다.

모욕감을 견디지 못한 그녀는 자신이 다니던 학교의 티셔츠를 입은 채 집에서 목을 맸다. 인터넷상에서 악성루머나 악성 댓글로 특정인에게 폭력을 가하는 사이버 불링(Cyber Bulling)의 희생자가 된 것이다.

물론 예전부터 청소년 사이에서의 따돌림은 있어 왔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대중 전달이 가능한 요즘에는 피해자가 입는 타격이 훨씬 크다. 과거에는 누가 누구를 괴롭히는지 분명했으며, 밖에서 괴롭힘을 당하더라도 최소한 집에서는 안전하게 지낼 수 있었다. 편지로 욕설을 보내오면 찢어버릴 수 있고, 담벼락에 욕을 써놓으면 지우면 됐다.

하지만 요즘에는 집에 돌아와도 e메일과 휴대폰을 통해 온갖 욕설과 비방 메시지가 따라붙는다. 컴퓨터와 휴대폰을 꺼놓으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인터넷 없는 생활을 상상하기 힘든 청소년들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 번 인터넷상에 올라온 욕설과 비방은 삭제할 수도 없으며, 눈 깜작할 사이에 확산된다.

이 같은 역기능으로 인해 등장한 것이 바로 인터넷 자율규제다.

인터넷 자율규제는 민간이 전통적인 정부 영역에 해당됐던 규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정부는 이 같은 민간의 역할과 활동에 적극 협력ㆍ지원함으로써 규제의 합리화 및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영국은 이용자가 인터넷상의 유해 콘텐츠를 신고하면 정부와 민간이 핫라인 운영을 통해 함께 규제하는 `인터넷감시재단(IWF)'을 운영하고 있다. 프랑스는 `인터넷권리포럼(FDI)'을 통해 인터넷을 둘러싼 개인과 기업의 분쟁은 물론 전자상거래와 도메인 분쟁 등을 중재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인터넷산업 지침'을 통해 가장 강력한 자율규제를 실시하고 있다. 정부가 인터넷사업자에게 사업을 존속시킬 수 있는 면허를 부여함으로써 정부가 명령하는 행위를 이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가 발전한 환경, 인터넷 이용 패턴이 상이하기 때문에 이 같은 해외 모델을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규제 영역만 보더라도 해외에서는 청소년 보호와 인종차별 방지가 핵심을 이루지만 우리나라는 개인 간 권리침해와 게시물에 의한 명예훼손 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규제와 자율규제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에서는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다. 지난 2009년 3월 각 포털사이트가 참여해 설립된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가 바로 민간 차원의 자율규제 기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인터넷 자율규제는 아직도 궤도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익명의 악플러에게 점령된 인터넷은 여전히 사생활 침해ㆍ모욕ㆍ명예훼손을 쏟아내고 있으며,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저속한 인터넷 저널리즘으로 인해 여론분열 및 사회갈등에 따른 천문학적 수준의 손실이 초래되고 있다.

이는 정부규제보다 강력한 자율규제, 엄격한 행동강령과 책임의식, 기구의 독립성 확보 등 민간 차원의 자율규제 기구가

갖추어야 할 기본 여건이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 KISO의 경우 음란ㆍ선정ㆍ범죄정보 제공 등에 대한 심의만 진행하고 있을 뿐 각종 사회적 병폐를 야기하는 사생활 침해, 명예훼손, 허위사실 유포 대응에는 소극적인 상태다.

인터넷은 일상생활에 없으면 안 되는 생필품이 된지 오래지만 양날의 칼처럼 역기능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역기능을 방치할 경우 인터넷은 창조와 소통의 공간이 아닌 우울한 디스토피아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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