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현안 중장기 로드맵 `실종`

금융당국, PF처리 등 은행들에 떠넘기는 형국 '위기 자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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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이 밑그림만 던져놓고 뒷수습은 은행들에게 떠미는 형국이다"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최근 기자와 만나 "(금융당국이) 우선적으로 매듭지을 것은 먼저 마무리하고 넘어가야 한다"며 이같은 아쉬움을 내비쳤다. 금융당국이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 건은 몇 달째 미적거리면서 저축은행 프로젝트파이낸싱(PF) 처리, 카드업계 과당경쟁, 가계대출 문제 등 계속해서 은행권에 요구만 쏟아내며 압박하고 있는데 따른 소회로 풀이된다.

최근 론스타의 외환은행 대주주 적격성 심사가 계속해서 늦어지면서 속앓이를 하고 있는 김 회장이지만 이날은 하나금융의 수장이 아닌 금융권의 대 원로로서 감독당국에 고언(苦言)을 한 셈이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은 1999년 출범이후 최대 위기에 봉착해 있다. 저축은행 불법 대출ㆍ특혜 인출 의혹 및 부실감독, 도덕적 해이, 금융 보안대란 등에 대한 책임론과 전ㆍ현직 직원 비리 의혹이 집중되며 신뢰가 땅에 추락했다. 현직 직원이 자살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4일 오전 예고 없이 금감원을 전격 방문한 것은 그만큼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엄중한 신호다. 이 대통령은 금융 당국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전하면서 제도와 관행 혁파를 지시했다. 이 대통령의 호된 질책에 김석동 금융위원장과 권혁세 금감원장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금감원은 즉각 쇄신안을 발표했다. 직원의 청렴도를 평가해 업무에 반영하고, 금융기관 감사 추천 관행을 폐지하기로 했다. 금감원 직원의 금융회사 재취업도 전면 금지된다. 또 공직자 재산등록 대상을 현행 2급에서 4급으로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내놓았다. 특권의식을 전면 포기하고 법과 원칙에 충실한 업무 자세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사후약방문'식의 대책으로는 약발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 금융권의 대체적인 평가다.

특히 큰 방향과 그림 없이 백화점식으로 금융현안을 던져놓다 보니 추진동력이 실종됐다는 쓴소리다.

연초부터 은행권 `4강 체제'가 본격화되면서 국내 금융산업의 빅뱅이 예고됐지만 다른 이슈에 눌려 소리없이 잦아들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금융권에 휘몰아칠 것으로 보였던 인수합병(M&A) 바람은 구심점을 잃었고 저축은행 사태와 현대캐피탈, 농협의 전산보안 문제 등으로 메가뱅크라는 큰 숙제를 챙길만한 여력도 없어졌다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2분기에 내놓겠다던 우리금융지주 민영화 방안도 요원해 보인다. 산은금융지주가 우리금융 입찰에 참여하기로 했지만 반대 여론이 적지 않아 현실화할 가능성은 미지수다. 일각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약 2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빅딜'을 그리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때문에 우리금융과 산은지주 민영화, 메가뱅크 논의는 사실상 이 정권에서 물 건너 갔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굳이 골치 아픈 현안을 끄집어내 수습하기보다 적당한 공적쌓기로도 마무리 밥상을 충분히 차릴 수 있다는 얘기다.

저축은행 부실, 소비자 금융 불안 등 정부 집권 후반기를 흔들 수 있는 경제 불안요인에 선제 대응하겠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지만 근본 처방보다는 관(官)의 힘을 통한 단기적 압박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오히려 훗날 더 큰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현정권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놓지 못하면 굵직한 금융이슈들이 전면 백지화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며 "중장기적 플랜을 포함한 거시적 로드맵을 짜 시장이 예측할 수 있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진오기자 jo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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