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ㆍ유통ㆍ정유 등 인하 주문… 배출권거래제 조기도입 강행도
기업들이 최근 정부의 전방위적인 물가안정 정책에 바짝 긴장을 하고 있다. 정부의 물가안정을 위한 정책이 유통과 통신, 정유, 금융 등 산업 전반에 걸쳐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9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은 정유와 통신, 유통 등을 독과점산업으로 지목하면서 정유와 통신업계가 스스로 가격을 낮출 것을 주문했다.
윤 장관은 "우리나라 휘발유 값 가운데 세금 비중은 OECD 22개국 가운데 19위인데도 세전 휘발유 평균 가격은 OECD 평균을 100으로 보면 우리가 113.2로 이해할 수 없다"며 정유업계에게 `알아서 가격을 인하하라'는 사실상의 최후통첩을 날렸다.
통신요금에 대해서도 윤 장관은 "통신비를 낮추는 것이 서민 생계비 부담을 줄이는 데 중요하지만 그동안 통신산업의 생산성 향상에 비해 가격하락이 미진하다는 지적이 강하다"고 말한 뒤 방송통신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계부처에 가격경쟁 촉진을 위한 제도개선방안을 연구해 줄 것은 주문했다. 통신 업계가 자율적 인하에 나서지 않을 경우 제도적으로 인하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로 풀이된다.
같은 날 서울 여의도에서는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과 롯데백화점, 현대백화점, 신세계 등 대형 유통업체 대표가 한자리에 모였다. 본래 이 간담회는 정부의 대ㆍ중소기업 동반성장 정책을 설명하기 위해 마련됐지만 새로운 유통산업 규제법안 마련 방침과 동반성장 협약 이행을 촉구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특히 김 위원장은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판매수수료를 업태별, 상품군 별로 구분해 올 2분기 안에 공개할 것이라고 밝혀 유통업계를 긴장시켰다.
또 이날 정부는 `시기상조' 논란 속에서도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의 조기도입을 밀어붙이기로 했다. 앞서 신용카드 업계에는 가맹점 수수료 1%대 인하를 강요해 국회에서조차 `시장경제에 반하는 정책'이라며 질타를 받고 있다.
국내 금융시장에는 관치 부활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다. 부실 저축은행 처리 문제가 대표적으로 지난 1월 취임한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적극적인 시장 개입과 저축은행 구조조정의 칼날을 빼들자 그동안 관심도 없던 대형 지주사들이 `시너지 효과' 운운하며 저축은행 인수의사를 밝히고 부실 폭탄을 떠 안겠다고 스스로 나선 것이다.
우리금융지주를 비롯해 하나, 신한 등 3개 지주사가 `저축은행 인수를 통한 신 비즈니스 창출'이라는 거창한 간판을 내걸고 정부의 개입에 즉각 응답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김 위원장의 별명은 `미스터 관치'와 `위기대책 반장'다. 정부가 부실 저축은행 구조조정 문제를 금융지주사에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일각에서는 전례 없는 김석동 신임금융위원장의 관치 시대가 도래했다는 풍자까지 나오고 있다.
문제는 정부의 이러한 무리수들이 미봉책에 불과하고, 시장경제의 틀을 크게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 정유업체 관계자는 "석유 제품 가격 정책은 OECD 국가 대비 제품 품질과 물가 등을 반영해 결정돼야 하지만 현재 논의 양상은 정부가 현상만을 보고 윗선에서 불만을 제기하면 업체가알아서 기라는 식의 근시안적인 대응"이라고 지적했다. 휘발유 등에 붙는 60%에 가까운 간접세나 유통구조 등 구조적인 문제는 손을 대지 않고 가장 편한 기업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IT업계 한 전문가는 "매번 통신요금 인하를 강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최근 IT산업의 위축은 선순환구조를 무너뜨린 이러한 포퓰리즘식 정책의 영향도 크다"고 지적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판매수수료를 상품 별로 공개하겠다는 구상은 개별 기업의 영업기밀을 둘러싼 공개 논란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저축은행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회생보다는 인수합병(M&A)을 통한 폭탄돌리기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해 문제를 단시간에 해결하겠다는 발상이 오히려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저해해 이른바 `정부 실패(government failure)'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물가 안정을 명분으로 한 억누르기가 일정 기간 통할 수는 있어도 나중에 한꺼번에 폭등하는 `풍선효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금융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전방위 압박은 국가경제의 중심축인 금융시장에까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며 "시장질서가 교란될 경우 그 부작용의 피해는 국민의 부담으로 이어져 고스란히 정책 당국의 부담으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훈ㆍ길재식기자 nanu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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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은 정유와 통신, 유통 등을 독과점산업으로 지목하면서 정유와 통신업계가 스스로 가격을 낮출 것을 주문했다.
윤 장관은 "우리나라 휘발유 값 가운데 세금 비중은 OECD 22개국 가운데 19위인데도 세전 휘발유 평균 가격은 OECD 평균을 100으로 보면 우리가 113.2로 이해할 수 없다"며 정유업계에게 `알아서 가격을 인하하라'는 사실상의 최후통첩을 날렸다.
통신요금에 대해서도 윤 장관은 "통신비를 낮추는 것이 서민 생계비 부담을 줄이는 데 중요하지만 그동안 통신산업의 생산성 향상에 비해 가격하락이 미진하다는 지적이 강하다"고 말한 뒤 방송통신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계부처에 가격경쟁 촉진을 위한 제도개선방안을 연구해 줄 것은 주문했다. 통신 업계가 자율적 인하에 나서지 않을 경우 제도적으로 인하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로 풀이된다.
같은 날 서울 여의도에서는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과 롯데백화점, 현대백화점, 신세계 등 대형 유통업체 대표가 한자리에 모였다. 본래 이 간담회는 정부의 대ㆍ중소기업 동반성장 정책을 설명하기 위해 마련됐지만 새로운 유통산업 규제법안 마련 방침과 동반성장 협약 이행을 촉구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특히 김 위원장은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판매수수료를 업태별, 상품군 별로 구분해 올 2분기 안에 공개할 것이라고 밝혀 유통업계를 긴장시켰다.
또 이날 정부는 `시기상조' 논란 속에서도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의 조기도입을 밀어붙이기로 했다. 앞서 신용카드 업계에는 가맹점 수수료 1%대 인하를 강요해 국회에서조차 `시장경제에 반하는 정책'이라며 질타를 받고 있다.
국내 금융시장에는 관치 부활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다. 부실 저축은행 처리 문제가 대표적으로 지난 1월 취임한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적극적인 시장 개입과 저축은행 구조조정의 칼날을 빼들자 그동안 관심도 없던 대형 지주사들이 `시너지 효과' 운운하며 저축은행 인수의사를 밝히고 부실 폭탄을 떠 안겠다고 스스로 나선 것이다.
우리금융지주를 비롯해 하나, 신한 등 3개 지주사가 `저축은행 인수를 통한 신 비즈니스 창출'이라는 거창한 간판을 내걸고 정부의 개입에 즉각 응답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김 위원장의 별명은 `미스터 관치'와 `위기대책 반장'다. 정부가 부실 저축은행 구조조정 문제를 금융지주사에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일각에서는 전례 없는 김석동 신임금융위원장의 관치 시대가 도래했다는 풍자까지 나오고 있다.
문제는 정부의 이러한 무리수들이 미봉책에 불과하고, 시장경제의 틀을 크게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 정유업체 관계자는 "석유 제품 가격 정책은 OECD 국가 대비 제품 품질과 물가 등을 반영해 결정돼야 하지만 현재 논의 양상은 정부가 현상만을 보고 윗선에서 불만을 제기하면 업체가알아서 기라는 식의 근시안적인 대응"이라고 지적했다. 휘발유 등에 붙는 60%에 가까운 간접세나 유통구조 등 구조적인 문제는 손을 대지 않고 가장 편한 기업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IT업계 한 전문가는 "매번 통신요금 인하를 강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최근 IT산업의 위축은 선순환구조를 무너뜨린 이러한 포퓰리즘식 정책의 영향도 크다"고 지적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판매수수료를 상품 별로 공개하겠다는 구상은 개별 기업의 영업기밀을 둘러싼 공개 논란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저축은행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회생보다는 인수합병(M&A)을 통한 폭탄돌리기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해 문제를 단시간에 해결하겠다는 발상이 오히려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저해해 이른바 `정부 실패(government failure)'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물가 안정을 명분으로 한 억누르기가 일정 기간 통할 수는 있어도 나중에 한꺼번에 폭등하는 `풍선효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금융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전방위 압박은 국가경제의 중심축인 금융시장에까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며 "시장질서가 교란될 경우 그 부작용의 피해는 국민의 부담으로 이어져 고스란히 정책 당국의 부담으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훈ㆍ길재식기자 nanu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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