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능ㆍ디자인 혁명, `보고 쓰는` 휴대폰 시대 열다

와이드 LCDㆍez 한글 등 과감한 채택 CDMA폰 강자 부상
블랙라벨 시리즈 초콜릿폰ㆍ프라다폰 성공 잇따라 '승승장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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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능ㆍ디자인 혁명, `보고 쓰는` 휴대폰 시대 열다
■ 또 다른 신화가 시작된다 2020 IT코리아
Ⅲ. 휴대폰 부문
4. LG전자 싸이언, 기능ㆍ디자인으로 승부


"LG정보통신과 LG전자의 합병을 승인합니다. 탕!탕!탕!"

2000년 7월 21일 서울 LG강남타워 아모리스홀. 당시 LG정보통신 임시주주총회 의장이던 구자홍 대표이사는 LG전자와 LG정보통신 합병에 대해 주주들의 투표를 실시한 결과 73.66%의 찬성으로 합병이 공식 승인됐다고 선언했다.

두 회사간 합병에 대해 우려의 시각도 많았다. 당시 기업문화와 급여, 규모 면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던 두 기업의 합병은 부작용을 낳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LG가 첨단 정보 기술 업체로 변신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으며, 조직내부의 공감대를 형성하며 순조롭게 합병을 진행한다.

합병을 통해 CDMA 이동통신 기술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LG정보통신의 모바일 기술이 LG전자의 자금력, 유통망, 브랜드 이미지와 만난다. 당시 급성장하고 있었던 GSM과 IMT-2000 등 모바일분야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또한 당시 LG정보통신이 생산하던 휴대폰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LG전자로 바뀌며 `싸이언(CYON)' 브랜드를 탄생, 글로벌 디자인 강자로 도약하는 계기가 된다.

이처럼 LG 휴대폰의 역사를 살피기 위해서는 LG정보통신은 물론 전신이던 금성통신 시절인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LG전자(당시 금성통신)는 1987년 미국 폰텍(FONETEK)사와 기술 도입계약을 체결하고 카폰 개발에 착수해 1989년 차량형 전화기 GM-5000 내수시장 판매를 시작했으며, 1990년 미국시장 수출을 시작했다.

◇디지털휴대폰 시장을 반격의 계기로=하지만 LG전자 휴대폰들의 성과는 크지 않았다. 당시 한국은 휴대폰은 물론 TV 등 다른 가전제품들도 외국산 부품을 들여와 조립생산에 의존하던 시기로 `휴대폰의 원조' 모토로라의 상대가 되지 않던 상황이었다. LG전자는 비교적 조용히 경쟁업체들을 지켜보고 있다가 CDMA 상용화를 통한 반격을 숨죽여 준비한다.

마침내 1996년 1월 한국이 세계 최초로 성공시킨 CDMA 상용화는 통화 품질, 디지털 데이터 전송 용량, 휴대폰 경량화, 소형화를 가능하게 했다. LG전자는 상용화 직후인 2월 곧바로 바타입 휴대폰인 LD-200을 내놓는다. 이때부터 LG전자는 CDMA에 있어서 만큼은 삼성전자와 노키아를 이기는 강자로 자리잡게 된다.

LG전자는 CDMA 기술을 바탕으로 2년 후 PCS상용화를 비롯해, 2001년에는 GSM 휴대폰까지 생산하며 세계시장 공략을 본격화한다. LG전자는 CDMA 상용화로 시작된 초기 디지털 휴대폰 시장에서 성능과 디자인 면에서 과감한 혁신을 지속적으로 시도해 나갔다.

1996년부터 1999년까지는 휴대폰이 1000만대까지 급속히 퍼져나갔던 시기로, LG전자는 학생부터 노인층까지 누구나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경량화ㆍ소형화에 중점을 뒀다. 98년 11월에는 LGP-6400F 제품을 통해 무게 60g의 휴대폰을 내놓았으며, 초절전 회로설계기술 등을 적용한 휴대폰이 출시, 한번 충전으로 최대 10박 11일까지 통화할 수 있는 최장 대기시간을 구현하기도 했다.

이후 2000년부터는 보다 대용량의 데이터 통신을 지원하는 CDMA 1X 무선 인터넷 서비스가 휴대폰 업계의 가장 큰 화두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듣는 휴대폰'에서 `보고 쓰는' 휴대폰으로 본격 진화하기 시작했다. LG전자는 이때부터 LG정보통신 합병은 물론 `싸이언' 브랜드를 론칭했다. 당시 화제를 불러일으킨 싸이언 싸이버 폴더 제품은 8라인 와이드 LCD를 채택했으며, LG전자 한글 자판의 상징이 된 `ez 한글'이 등장한 것도 이때다. 무선인터넷과 문자 메시지 등을 활용하는데 최적화된 단말기가 등장한 것이다. 2001년 5월에는 cdma2000 1x 컬러 휴대폰 시장을 선점한다는 목표로 `싸이언 컬러 폴더' 등을 시작으로 2001년 12월 국내시장 최초로 싸이언 6만5000컬러 휴대폰을 선보이며 보는 휴대폰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다. 2년 후 출시한 LG-KH5000을 통해서는 6만5000컬러 휴대폰은 물론, 카메라폰을 선보이기도 했다.

◇CDMA의 강자, LG=2000년 초반 LG전자는 특히 CDMA 휴대폰의 강자였다. LG전자는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가 발표한 `2003년 전 세계 휴대폰 시장조사 자료'에 따르면, LG전자는 2003년 한 해 동안 전 세계 CDMA 단말기 시장에 2130만 대의 제품을 공급해 점유율 21.6%로 1위를 차지한 것으로 밝혀졌다. 삼성(20.7%), 모토로라(18.0%), 노키아(12.5%) 등이 뒤를 이을 정도로 CDMA 폰에서의 강자의 면모를 과시한 것이다.

따라서 LG전자 휴대폰은 CDMA를 채택한 미국, 인도, 중국 등에서 두드러졌다. 미국에서는 우수한 기능과 디자인으로 소비자의 눈길을 확 끄는 `VX6000 카메라폰'이 큰 인기를 끌었다. 2003년 북미지역 전체 판매량은 1200만 대였으며, 인도에서는 현지 사업자와의 제품 공동개발, 대규모 개발인원 파견, 서비스 네트워크 조기 안정화, 적기 물량공급 등에 주력해 시장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젊은 감각과 세련된 디자인을 내세워 젊은 층에서 인기를 끌었다. 이같은 CDMA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LG전자는 다음해 전 세계 휴대폰 시장 점유율 4위를 차지하게 된다.

LG전자의 디자인에 대한 혁신 시도는 특히 `초콜릿폰 시리즈'를 통해 빛이 났다. 초콜릿폰은 싸이언 가운데서도 브랜드인 `블랙라벨' 시리즈를 론칭하기 위한 첫번째 제품으로 블랙을 강조한 깔끔한 케이스를 도입, 과감하게 단순화한 디자인으로 당시 휴대폰시장에서 새로운 트렌드를 창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블랙라벨 시리즈는 3G 시대에서도 `블랙라벨 Ⅱ' 등으로 이어져 고급 이미지를 유지하며, 이후에는 프라다 폰 등을 내놓으며 최고급 시장까지 노리게 된다. 이 시기 특히 LG전자는 현재 스마트폰의 대세가 된 `풀터치폰'을 업계에서 선도적으로 출시했다.

◇스마트폰ㆍ4G시장 `반격'=2010년 초부터 불어닥친 스마트폰 열풍은 LG전자에게 새로운 도전 과제를 안기고 있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가장 앞서 내놨지만, 후속 모델 출시가 늦어지며, 시장을 선점 당한 것이다. LG전자는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옵티머스원'을 내놓고 2개월만에 200만대 이상 판매하는 등 반격의 채비를 갖추고 있다. 그동안의 보급형 전략에서 확장, 옵티머스 마하와 듀얼코어CPU를 탑재한 옵티머스2X 등 하드웨어에서 새로운 시도를 진행한 제품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프로젝트 명 `B' 스마트폰을 통해서는 세계에서 가장 얇은 스마트폰을 만든다는 목표다.

또한 LG전자는 LTE 통신칩 최초 개발은 물론 미국 AT&T와 버라이즌을 통해 LTE 모뎀을 공급하며 상용화에 앞서 가고 있어 4G와 스마트폰으로 대변되는 향후 휴대폰 시장에서 반전의 기회로 삼을 수 있을지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 기획취재팀
팀장=임윤규 정보미디어부장 yklim@
최경섭차장 kschoi@
강희종기자 mindle@
박지성기자 js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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