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봅시다] 일렉포일(elecfoil)

전기분해로 만든 '구리박' PCBㆍ2차전지 등 핵심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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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오차 고난도 제조공정 두께 3㎛까지 생산
일진머티리얼즈 첫 국산화… 기술력 세계 톱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지만 일렉포일(elecfoil)은 인쇄회로기판(PCB)과 2차전지 등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소재입니다. 압연 방식이 아닌 전기분해를 통해 만드는 얇은 구리 박(箔)으로 인쇄회로기판을 만드는 핵심 1차 소재입니다. 특히 2차전지의 핵심소재인 음극집전체로 제2전성기를 맞고 있습니다.

반도체가 전자산업의 쌀이라면, 일렉포일은 전자산업의 밭이며 사람으로 치면 혈관이라고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거의 모든 전자제품의 핵심 소재로 쓰입니다.

◇일렉포일(elecfoil)은 = 미국에서는 `Copper Foil(동박)'이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전기 분해를 통해 만든 구리 발'이라는 의미의 전해동박(電解銅箔)이라는 용어를 씁니다.

또 `일렉포일'은 독립된 국내 기술의 자존심을 의미하는 단어라고 하겠습니다.

얇고 균일한 표면을 가지면서 전기적 특성을 갖는 것이 기술의 포인트며, 두께의 단위는 1000분의 1mm를 의미하는 `미크론(㎛)'을 씁니다. 그만큼 얇다는 것이죠. 일렉포일의 두께는 보통 18㎛~70㎛ 정도이나 최근에는 전자제품의 경박 단소화에 따른 배선 패턴의 미세화에 따라 일렉포일의 두께도 3㎛, 5㎛ 등과 같이 종래에 비해 매우 얇아지고 있습니다.

일렉포일 제조기술은 지난 1999년 12월 당시 과학기술부에 의해 `20세기 대한민국 100대 기술'로 선정된 바 있는 고난도 기술입니다.

일렉포일에 대해 한 동양기술자는 "일렉포일 제조 과정은 평생을 도자기를 구워 온 도예가가 매번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받는 스트레스와 같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새로운 제품 불량을 만나고 있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다른 서양 기술자도 일렉포일 기술에 대해 "일렉포일 기술은 블랙아트(Black Art)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술품이다. 그 어떤 전자 소재도 일렉포일만큼 혼이 들어간 것은 없을 것이다"고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제조하기가 까다롭고 어렵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리(순도=99.8% 이상)를 전기분해법으로 회전 드럼에 얇게 도금해 말아내는 방법으로 제조되는 일렉포일 제조공정은 청정도가 최대 변수입니다. 모기 한 마리 정도의 불순물이 몇 백미터 불량을 초래할 정도입니다. 산화(녹슴)를 방지하기 위해 온도와 습도를 적정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또한 0.5% 이내의 허용오차를 유지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3㎛ 두께의 1m 폭 제품의 오차는 0.015㎛입니다.

이밖에 양질의 전력도 필수조건입니다. 즉 일렉포일 기술은 국가 기간산업이 우수한 선진국만이 보유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전기가 멈추면 동질의 제품 생산이 불가하며, 1년 365일 가동되는 일렉포일 공장에는 전기료만 수백억원이 들어갈 정도입니다.

일렉포일의 용도는 인쇄회로기판에 쓰이기 때문에 거의 모든 가전 제품에 들어간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최근에는 2차전지의 음극집전체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특수 일렉포일의 경우 IT용 소형전지를 넘어 자동차용 2차전지, 에너지 스토리지 등으로 사용처를 넓히고 있습니다.

일렉포일은 동박적층판(CCLㆍCopper Clad Laminate)을 거쳐 PCB로 최종 가공됨으로써 각종 전자제품의 감초로서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일렉포일 국산화 과정과 시장 현황= 현재 국내에서는 일진머티리얼즈와 LS엠트론이 일렉포일을 생산하며 과점 체제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일렉포일 국산화 과정은 그야말로 험난한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맨 먼저 국산화에 성공한 기업은 일진머티리얼즈(舊 일진소재산업)입니다.

일진그룹 허진규 회장은 1978년 서울대와 공동으로 일렉포일 국산화에 나섰지만 개발이 쉽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 중반 우리업체가 일본의 일렉포일 업체를 방문하면 "이런 기술은 꿈도 꾸지 마라"고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습니다. 기술로열티를 지불하고 장비를 사라는 말 뿐이었습니다.

공장을 방문하면 감옥같은 분위기의 높은 울타리가 기술 국산화에 대한 의지에 찬 물을 끼얹을 뿐이었습니다. 일본 업체들이 기술 이전을 해주지 않은 탓에 허 회장은 일본 현지 업체 공장의 인근 여관 옥상에 올라가 망원경으로 몰래 공장을 둘러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허 회장의 국산화 의지는 꺾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일렉포일 양산을 위해 1987년과 1993년에 공장을 두 곳이나 지었는데도 불량률이 높아 공장을 가동조차 못했지만, 또 다시 1997년 수천억원을 들여 세 번째 공장을 지을 정도로 과감하게 승부를 걸었습니다.

그러기를 20년, 일진머티리얼즈는 1997년 불량률을 최소화한 일렉포일 개발에 성공했고 일본제품과 품질은 큰 차이가 없으면서도 가격은 30%나 싸게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수십년 동안 무려 2만회 이상의 실험과 과감한 투자로 이뤄낸 쾌거였습니다. 국내외에서 주문이 밀려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주요 구매처에서는 납품처인 일진에 감사하다며 거꾸로 접대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일본 업체들의 배짱영업과 횡포에 신물이 난 탓이었습니다.

1999년 600억원 남짓이었던 일진머티리얼즈의 매출은 올해 4000억원을 웃돌 전망입니다. 현재 일진머티리얼즈는 일렉포일 분야 시장점유율에서 일본 미쓰이에 이어 전 세계 2위에 올라 있습니다. 또 2차전지용 특수 일렉포일 분야에서는 세계1위에 올라 있습니다.

이연호기자 dew9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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