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섭 칼럼] 스마트시대의 규제정책

최경섭 정보미디어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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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섭 칼럼] 스마트시대의 규제정책
19세기 초, 자동차 기술을 가장 먼저 상용화한 영국. 영국은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이미 1800년대 중반에 시속 40㎞의 자동차 기술을 상용화하며 자동차 종주국으로 부상했다. 당시 유럽의 강국이었던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에서도 자동차 기술개발에 나섰지만 영국의 자동차 기술은 독보적이었다.

그러나 자동차 기술이 제시된 지 200여년이 지난 지금,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자동차 종주국 영국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없다. 영국에서 처음 태동하기 시작한 자동차 산업은 19세기 후반부에 접어들면서는 영국보다는 독일, 프랑스 등 유럽 본토에서 급속도로 성장을 하게 된다. 왜 영국은 독보적인 자동차 상용화 기술을 가지고도 주도권을 상실해버렸을까. 그 해답은 영국 내부에 있었다.

혁신적인 자동차 기술이 상용화되면서, 영국은 철도사업자, 마차운송조합, 자동차 산업계는 큰 혼란기에 직면한다. 사람들과 물건들을 실어 나르며 이전까지 교통시장을 주도해온 철도, 마차조합은 자동차가 자신들의 밥벌이를 빼앗아갈 존재로 규정하고, 공격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들이 승리하면서 그 유명한 `적기조례'(Rea Flag Act) 규정이 시행된다.

적기조례는 자동차는 아주 위험한 물건이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이를 철저히 규제해야 한다는 데서 출발한다. 1대의 자동차에 3명의 운전수를 태우고, 한 명은 낮에는 붉은 깃발, 밤에는 붉은 등을 가지고 자동차가 온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최고 속도도 시속 6.4㎞ 이하로 제한하고, 시가지에서는 시속 3.2km로 운행해야 한다. 사실상 도심지에서는 보행속도로 차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스피드가 경쟁력인 자동차는 적기조례라는 규제사슬에 묶여, 비용이 많이 들고 위험하면서 기존 마차나 기차보다도 못한 존재로 취급받게 된다. 영국은 무려 30여년 동안 이 규제를 시행했다. 영국의 과학자, 발명가들이 힘들게 쌓아올린 자동차 종주국의 위상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반면 독일과 프랑스는 오히려 최고의 속도와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제동기술을 선보이며 세계 자동차 시장의 주류로 올라섰다. 스피드를 제어한 영국, 스피드를 극대화한 주변 국가의 규제철학은 이후, 자동차 산업에 엄청난 격차를 가져온다.

영국의 사례는 기술과 트렌드가 급변하는 스마트 시대에도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 스마트시대로 접어들면서 개인이나 기업, 국가 모두 큰 변화에 직면해있다. 스마트폰, 스마트TV 등에서 볼 수 있듯,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들이 생겨나고 있고, 또 기존 사업자와 신사업자가 곳곳에서 충돌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기존의 것을 고수할지, 아니면 변화를 수용할지, 변한다면 또 어떤 속도로 변화를 수용할지 모든 것이 고민거리다. 특히 정부 당국으로서는 규제카드를 어떻게 활용할지를 놓고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자칫 잘못된 규제가 영국의 자동차 산업을 망하게 한 `적기조례'가 될 수도 있고, 또 독일과 프랑스처럼 자동차 산업을 일으킨 스피드 경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 IT 시장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영국의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IPTV, 원격진료 등 초고속인터넷 인프라를 기반으로한 융합형서비스다. 이미 지난 2000년대 초부터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인프라를 갖추게된다. 이를 활용해 방통융합, 원격진료를 제공하겠다는 모토이다.

그러나 기존 방송, 의료계의 반발이 확대되면서 융합산업은 2000년대 중반까지 한발짝도 진전을 보지 못했다. 그나마 방송통신 기구통합으로 뒤늦게 2009년에서야 IPTV가 상용화됐지만, 원격진료는 아직도 기존 의료계의 반발로 사실상 정체상태다. IPTV도 적기에 상용화가 진행되지 못하면서 방송진영과 곳곳에서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

토종기술인 와이브로도 정책당국의 실기로 자칫 대표적인 `적기조례'정책이 될 판이다. 와이브로는 북미, 동남아 등지에서 큰 성과를 내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당시 규제기관인 정보통신부가 사업자 논리에 휘둘리다 보니 사업자 선정, 투자이행 등에서 실기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당시 와이브로에 음성서비스를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셌지만, 통신역무 논란에 휘둘리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뒤늦게 방통위가 음성서비스 지원을 비롯한 활성화 종합대책을 내놓았지만, 이미 너무 늦은 상황이다. 통신3사는 와이브로와 경쟁관계에 있는 LTE를 채택하고, 업체별로 대규모의 투자를 계획중이다.

스피드를 제한한 영국을 따를지, 스피드를 높이는데 주력한 독일, 프랑스 등을 따를지 결론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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