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DT 시론] 월드컵으로 본 디지털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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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규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
월드컵의 승리를 바라는 국민적 여망이 뜨거운 응원으로 나타났다. 우리 태극전사들은 정말 잘 싸웠고, 우리들에게 큰 기쁨과 희망을 주었다. 그런데 월드컵의 16강 달성만큼 중요한 것은 IT의 발전에 따른 응원문화의 변화와 붉은 악마란 이름으로 인한 정신문화의 영향이다.

이제 더 이상 각자의 집에서 TV를 시청하는 가족응원 시대가 아니다. 대형화면이 있는 곳이면 붉은 셔츠를 입은 응원단이 열렬하게 응원하는 축제가 벌어진다. 경기없는 경기장의 대형화면에 관객이 몰려들고, 도로를 차단하고 길거리에서 축구를 응원한다. 상상할 수 없던 일이 현실이 된 것이다. 이처럼 변화된 응원 문화는 디지털 사회의 미래를 예고한다.

응원단은 붉은 색 셔츠로 복장을 통일하고 유명가수들의 멋진 응원가를 가슴 벅차게 함께 부른다. 눈물이 핑 돌고 애국심이 저절로 솟구친다. 이것은 월드컵이 준 선물이다. 이런 응원의 중심에 `붉은 악마'의 리더십의 숨은 노력이 있었고, 온 국민의 높은 호응을 받고 있다. 이런 역할을 해 준 붉은 악마 리더십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붉은 색 셔츠를 입고 응원하는 모든 국민을 붉은 악마의 회원으로 간주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모든 국민이 응원에 동참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이처럼 월드컵의 응원은 특정단체의 가입을 뛰어 넘는 국민적 축제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붉은 악마란 응원단의 이름을 국민적 정서에 부합한 이름으로 격상시키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왜냐하면 응원단의 목적과 원래 악마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Red Devils를 번역한 붉은 악마는 1983년 청소년 축구 4강 신화를 본 외국 언론이 우리 팀에게 지어준 별명에서 유래하며,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체계적으로 응원하고자 자발적으로 설립되었다. 기업의 스포츠 홍보에 힘입고 뜨거운 국민적 호응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좋은 취지와는 상관없이 그 이름 자체가 주는 영향이 문제가 된다.


붉은 악마의 상징인 `붉은'색은 과거라면 공산당을 상징하는 색깔이었다. 그러나 우리 선수와 응원단의 붉은 유니폼은 오히려 빼앗긴 붉은 색을 되찾았는데 기여하였다. 그리고 붉은 악마의 `악마'는 마스코트로 치우천왕 도깨비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붉은 뿔 장식을 한 사람들이 나타났다. 신문 광고에도 삼지창이 나타났고, 무서운 송곳니가 박지성 선수의 광고사진에 애교처럼 그려졌다. 이처럼 악마는 친근한 이미지로 변신되었다. 붉은 악마란 이름은 의도와는 달리 악마의 홍보 대사 역할을 하는 셈이 되고 있다.
악마는 귀신의 다른 이름이고, 사람을 홀려 악으로 이끌거나 타락 멸망시키는 존재라고 사전에 정의되어 있다. 그런데 악마는 사람들이 지어낸 관념인가? 아니면 실존하는 존재인가? 영적인 세계를 경험한 신앙인은 악마의 실존을 알고 있기에, 악마로부터 사람들의 영혼을 보호하고자 노력한다. 악마를 전설처럼 여긴다고 악마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세균을 모른다고 감염이 안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악마라는 이미지에 친숙해지면 다음 단계는 악마숭배이다. 호감을 갖게 된 악마라는 단어가 그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게 된다. 처음에는 열정적 쾌락을 준다. 그러나 결국은 개인의 영혼이 파괴되고 더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게 한다. 마치 마약과 같이 사람들의 정신 세계를 파괴한다. 그것이 악마의 속성이다.

괴테의 불후의 명작 파우스트의 주인공은 쾌락과 승리를 얻기 위해 악마 메피스토텔레스에게 영혼을 파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비유에서처럼, 우리도 축구에 승리만 할 수 있다면 악마의 힘이라도 빌리고 싶은 욕망이 붉은 악마라는 이름에 무감각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축구의 승리는 중요하다. 우리는 하나가 되어 응원해야한다. 그러나 우리 국민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악마라는 이름은 적합하지 않다. 축구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승리할 수 있는 좋은 국민적 응원단의 이름을 지어주자. 그렇게 될 때, 붉은 악마의 진정한 취지가 계속될 수 있고, 모든 국민은 진심으로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