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 알파독
미국의 컨설팅 전문업체 소여밀러그룹은 영화제작자 데이비드 소여와 카피라이터 스콧 밀러가 만든 `선거 전문기업'이다. 이들은 1970년대부터 텔레비전의 위력을 간파하고 네거티브 공세, 포커스 그룹 활용, 인물과 이미지 위주의 캠페인에 탁월한 수완을 발휘한다. 이른바 `미국식 미디어 정치'를 펼친 것이다.
결과는 기대 이상으로 훌륭했다. 한국의 김대중과 필리핀의 코라손 아키노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고 달라이 라마, 레흐 바웬사, 시몬 페레스 등 5명의 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에게 자문을 제공했다. 이후 전 세계 선거전의 배후에서 활약하면서 정치 문화를 바꿔놓았다.
1978년대 말 소여밀러가 케빈 화이트 보스턴 시장후보의 선거운동을 맡았을 때 화이트는 상대 후보보다 지지율이 26%나 뒤져있었다. 보스턴 시민들은 화이트를 시민에게 무관심한 계파 정치의 우두머리로 여겼다. 오만하다는 평가까지 더해지면서 지지율은 갈수록 바닥을 향해 내려갔다.
소여밀러는 화이트의 단점을 시장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장점으로 내세웠다. 정책 대신 후보들의 인격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화이트를 오만하지만 능력 있는 인물로 부각시킨 반면 상대인 조 티밀티는 사람은 좋지만 가볍고 경륜이 부족한 인물로 규정했다. 여기에다 `도시와 사랑에 빠진 고독한 남자'라는 감성적인 광고를 통해 보스턴을 사랑하지만 약점을 가진 인간으로 묘사했다. 화이트 시장의 기록적인 4선 뒤에는 소여밀러의 치밀한 전략과 주도면밀한 네거티브 전술이 있었다.
소여밀러는 한국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김대중을 처음 만난 것은 1986년 필리핀의 피플파워 혁명 직후였다. 그들에게 김대중은 아키노처럼 군부독재에 저항한 민주투사였다. 소여밀러는 필리핀의 승리가 텔레비전을 통해 얻은 것임을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김대중의 당선은 쉽지 않았다. 좀처럼 열리지 않던 돌파구는 역설적으로 김대중의 정계 은퇴에서 나왔다. 1992년 대선에서 또다시 패배한 김대중이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겠다고 밝힌 것이다. 하지만 소여밀러는 패배를 인정하는 것은 당당하고 격조 높은 행동이기에 전략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소여밀러그룹은 김대중을 대의를 위해 헌신하는 민주투사이자 진솔한 정치가로 부각시켰다. 1995년에 정계 복귀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에 들어갔으며 1997년에는 마침내 대통령 당선이라는 결실을 맺는다. 필리핀 선거전 이후 가장 먼저 시작되고 가장 늦게 성공한 사례였다.
한때 10억명이 넘는 사람들을 쥐고 흔들었던 소여밀러는 이제 기업 컨설팅에 주력하면서 정치권에서는 한발 물러났다. 그들이 미디어 정치를 신봉하면서 텔레비전을 통해 기존의 정당 정치를 깰 수 있다고 보았다. 텔레비전으로 정치를 바꾸고 대중의 힘을 키우면 민주주의가 더 새롭고 건강해질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들의 희망과 반대로 흘러갔다.
영국 유력일간지 더타임스의 편집국장인 저자는 정치 컨설팅 업계의 선두주자였던 소여밀러의 행적을 집요하게 좇으면서 현대 선거전의 이면을 파헤친다. 물론 아직까지도 소여밀러의 공과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그러나 정치인을 상품으로 만들고 유권자를 소비자로 전락시킨 장본인이라는 데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들이 퍼트린 `스타벅스식 정치'로 인해 이제 세계 어디를 가나 똑같은 정치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알파독/제임스 하딩 지음/부키 펴냄/351쪽/1만6000원
이지성기자 ezscape@
미국의 컨설팅 전문업체 소여밀러그룹은 영화제작자 데이비드 소여와 카피라이터 스콧 밀러가 만든 `선거 전문기업'이다. 이들은 1970년대부터 텔레비전의 위력을 간파하고 네거티브 공세, 포커스 그룹 활용, 인물과 이미지 위주의 캠페인에 탁월한 수완을 발휘한다. 이른바 `미국식 미디어 정치'를 펼친 것이다.
결과는 기대 이상으로 훌륭했다. 한국의 김대중과 필리핀의 코라손 아키노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고 달라이 라마, 레흐 바웬사, 시몬 페레스 등 5명의 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에게 자문을 제공했다. 이후 전 세계 선거전의 배후에서 활약하면서 정치 문화를 바꿔놓았다.
1978년대 말 소여밀러가 케빈 화이트 보스턴 시장후보의 선거운동을 맡았을 때 화이트는 상대 후보보다 지지율이 26%나 뒤져있었다. 보스턴 시민들은 화이트를 시민에게 무관심한 계파 정치의 우두머리로 여겼다. 오만하다는 평가까지 더해지면서 지지율은 갈수록 바닥을 향해 내려갔다.
소여밀러는 화이트의 단점을 시장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장점으로 내세웠다. 정책 대신 후보들의 인격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화이트를 오만하지만 능력 있는 인물로 부각시킨 반면 상대인 조 티밀티는 사람은 좋지만 가볍고 경륜이 부족한 인물로 규정했다. 여기에다 `도시와 사랑에 빠진 고독한 남자'라는 감성적인 광고를 통해 보스턴을 사랑하지만 약점을 가진 인간으로 묘사했다. 화이트 시장의 기록적인 4선 뒤에는 소여밀러의 치밀한 전략과 주도면밀한 네거티브 전술이 있었다.
소여밀러는 한국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김대중을 처음 만난 것은 1986년 필리핀의 피플파워 혁명 직후였다. 그들에게 김대중은 아키노처럼 군부독재에 저항한 민주투사였다. 소여밀러는 필리핀의 승리가 텔레비전을 통해 얻은 것임을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김대중의 당선은 쉽지 않았다. 좀처럼 열리지 않던 돌파구는 역설적으로 김대중의 정계 은퇴에서 나왔다. 1992년 대선에서 또다시 패배한 김대중이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겠다고 밝힌 것이다. 하지만 소여밀러는 패배를 인정하는 것은 당당하고 격조 높은 행동이기에 전략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소여밀러그룹은 김대중을 대의를 위해 헌신하는 민주투사이자 진솔한 정치가로 부각시켰다. 1995년에 정계 복귀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에 들어갔으며 1997년에는 마침내 대통령 당선이라는 결실을 맺는다. 필리핀 선거전 이후 가장 먼저 시작되고 가장 늦게 성공한 사례였다.
한때 10억명이 넘는 사람들을 쥐고 흔들었던 소여밀러는 이제 기업 컨설팅에 주력하면서 정치권에서는 한발 물러났다. 그들이 미디어 정치를 신봉하면서 텔레비전을 통해 기존의 정당 정치를 깰 수 있다고 보았다. 텔레비전으로 정치를 바꾸고 대중의 힘을 키우면 민주주의가 더 새롭고 건강해질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들의 희망과 반대로 흘러갔다.
영국 유력일간지 더타임스의 편집국장인 저자는 정치 컨설팅 업계의 선두주자였던 소여밀러의 행적을 집요하게 좇으면서 현대 선거전의 이면을 파헤친다. 물론 아직까지도 소여밀러의 공과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그러나 정치인을 상품으로 만들고 유권자를 소비자로 전락시킨 장본인이라는 데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들이 퍼트린 `스타벅스식 정치'로 인해 이제 세계 어디를 가나 똑같은 정치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알파독/제임스 하딩 지음/부키 펴냄/351쪽/1만6000원
이지성기자 ezscap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