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IT서비스사 저가 공세…"입찰가 하한선 상향 시급"
"그룹사의 시스템관리(SM) 매출이 없는 중견ㆍ중소기업들은 어찌 살라는 겁니까. 계열사가 있는 IT서비스사들이 가격으로 밀어붙이니 작은 회사들은 이길 방도가 없습니다."
한 중소기업 임원의 하소연이다. 이 회사는 물류IT 분야에서 입지를 다져왔지만 최근 IT서비스 계열사들과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사업에서 손해를 입었다. 기술과 서비스 역량이 좋아도 저가로 치고 나오는 IT서비스 회사들을 당해내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업계가 자제해 온 저가입찰 경쟁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그룹에서 일정 매출을 확보하고 있는 중견ㆍ중소 규모 IT서비스 계열사들이 대외사업 확대를 위해 공격적인 영업을 펼치고 있어 중견ㆍ중소ㆍ벤처기업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대기업 입찰하한제로 대형 IT서비스 기업이 중소기업과 직접 경쟁하는 사례는 줄었지만, 중소ㆍ중견기업으로 분류되는 그룹사 IT서비스 기업들이 대외사업을 확대하면서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과 새로운 경쟁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수년간 IT서비스 업계에서는 무리한 저가입찰 경쟁을 지양하고 업계 스스로 저가입찰을 지양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 시장 자정 의지를 다져왔다. 그러나 최근의 이런 분위기는 그동안의 노력은 물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의 기조를 무색케 하는 것이어서 우려를 낳고 있다.
◇저가입찰 `천태만상'= 국가계약법의 `협상에 의한 계약체결기준'은 당해 입찰가격이 추정가격의 100분의 60 미만일 경우 100분의 60으로 계산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60%를 지키더라도 사업시 이익이 거의 남지 않거나 되려 손해를 보는 게 일반적이다.
IT서비스 및 소프트웨어(SW)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최소 70% 이상이어야 손해를 피할 수 있다"며 70% 이하 수주는 저가입찰로 봐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발주한 물류거점정보시스템 구축사업에서는 모 중소기업이 61%의 가격으로 사업을 따냈다. 대기업 IT서비스 계열사인 A사가 그룹사의 시스템 납품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중소기업을 앞세워 사업을 수주토록 하고 해당 사업에 참여한 것이다.
올 초 사업자 선정을 한 대형 전시회 사업에서는 B사가 예산의 약 67%에 그치는 가격으로 입찰해 논란을 빚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발주처의 눈치 때문에 사업명을 밝히기 힘들지만 계열사 매출을 기반으로 대외사업 확대를 꾀하는 IT서비스들 때문에 경영환경이 나빠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공공정보화 시장뿐만 아니라 비교적 대형사업 발주가 잦은 금융정보화 시장도 이같은 현상은 예외가 아니다. 특히 은행은 공공 성격이 강하지만 일반기업이므로 저가입찰을 통해 영역을 넓히려는 경쟁이 치열하고 이를 제재할 수단도 딱히 없다.
한 중소기업 CEO는 "그룹사의 SM사업이 어려워졌다지만 계열사가 사업을 도맡는 기조는 변함 없다"며 "이들은 SM매출로 손해를 충당해가며 일정 수준까지 사업을 확대하고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지만, 그럴 배경이 없는 중견ㆍ중소기업은 가격경쟁 때문에 사업기회를 놓치고 결국 고사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다른 한 관계자는 "대외사업 경험이 많지 않은 그룹의 IT서비스 기업들은 사업역량이 중소기업보다 부족해도 SM매출로 경영을 유지할 수 있어 출혈경쟁을 감수할 수 있다"며 "이들은 사업에 탈락해도 큰 여파가 없지만 중견ㆍ중소기업들은 당해 사업기반이 흔들릴 만큼 큰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악순환 고리 끊어야=저가경쟁이 또 다른 저가경쟁을 유발하는 것도 문제다. 한 업체가 저가입찰을 하면 유사분야의 다른 사업에서 해당 업체와 경쟁할 때 다른 회사들도 계획보다 가격을 낮춰 쓰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를 막기 위해 업계는 60%인 가격 하한선을 70~80%로 상향조정하는 방안을 꾸준히 건의해왔다. 이익은 못 남겨도 손해는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출혈경쟁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와 업계 모두 상향조정에 따른 효과분석 등 관련 연구를 진행한 사례가 없어 이렇다 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크고 작은 그룹사들이 IT서비스 계열사를 설립, 정보화 업무를 맡기고 있다. 자체 생존력 확보와 중장기 발전을 위해 대외사업을 확대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최근 대외사업을 확대중인 한 그룹사의 IT서비스사 대표는 "그룹의 매출이 없는 현대정보기술이나 대우정보시스템과 유사한 경영형태를 만드는 게 최종 목표지만 시장에서 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룹에서 발생하는 매출을 담보로 한 회사들과의 경쟁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올들어 국내 IT서비스 기업들이 대중소 상생 협력을 추진하고 해외진출을 가속화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데 최근 저가입찰 논란이 이같은 노력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매출이나 수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저가입찰을 하는 것은 지탄받아 마땅하지만, 시장 진입과 영역확대를 위해 불가피하게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며 "기업 스스로 무차별적인 저가입찰을 지양하고 기술과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옥진기자 withok@
한 중소기업 임원의 하소연이다. 이 회사는 물류IT 분야에서 입지를 다져왔지만 최근 IT서비스 계열사들과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사업에서 손해를 입었다. 기술과 서비스 역량이 좋아도 저가로 치고 나오는 IT서비스 회사들을 당해내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업계가 자제해 온 저가입찰 경쟁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그룹에서 일정 매출을 확보하고 있는 중견ㆍ중소 규모 IT서비스 계열사들이 대외사업 확대를 위해 공격적인 영업을 펼치고 있어 중견ㆍ중소ㆍ벤처기업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대기업 입찰하한제로 대형 IT서비스 기업이 중소기업과 직접 경쟁하는 사례는 줄었지만, 중소ㆍ중견기업으로 분류되는 그룹사 IT서비스 기업들이 대외사업을 확대하면서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과 새로운 경쟁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수년간 IT서비스 업계에서는 무리한 저가입찰 경쟁을 지양하고 업계 스스로 저가입찰을 지양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 시장 자정 의지를 다져왔다. 그러나 최근의 이런 분위기는 그동안의 노력은 물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의 기조를 무색케 하는 것이어서 우려를 낳고 있다.
◇저가입찰 `천태만상'= 국가계약법의 `협상에 의한 계약체결기준'은 당해 입찰가격이 추정가격의 100분의 60 미만일 경우 100분의 60으로 계산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60%를 지키더라도 사업시 이익이 거의 남지 않거나 되려 손해를 보는 게 일반적이다.
IT서비스 및 소프트웨어(SW)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최소 70% 이상이어야 손해를 피할 수 있다"며 70% 이하 수주는 저가입찰로 봐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발주한 물류거점정보시스템 구축사업에서는 모 중소기업이 61%의 가격으로 사업을 따냈다. 대기업 IT서비스 계열사인 A사가 그룹사의 시스템 납품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중소기업을 앞세워 사업을 수주토록 하고 해당 사업에 참여한 것이다.
올 초 사업자 선정을 한 대형 전시회 사업에서는 B사가 예산의 약 67%에 그치는 가격으로 입찰해 논란을 빚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발주처의 눈치 때문에 사업명을 밝히기 힘들지만 계열사 매출을 기반으로 대외사업 확대를 꾀하는 IT서비스들 때문에 경영환경이 나빠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공공정보화 시장뿐만 아니라 비교적 대형사업 발주가 잦은 금융정보화 시장도 이같은 현상은 예외가 아니다. 특히 은행은 공공 성격이 강하지만 일반기업이므로 저가입찰을 통해 영역을 넓히려는 경쟁이 치열하고 이를 제재할 수단도 딱히 없다.
한 중소기업 CEO는 "그룹사의 SM사업이 어려워졌다지만 계열사가 사업을 도맡는 기조는 변함 없다"며 "이들은 SM매출로 손해를 충당해가며 일정 수준까지 사업을 확대하고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지만, 그럴 배경이 없는 중견ㆍ중소기업은 가격경쟁 때문에 사업기회를 놓치고 결국 고사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다른 한 관계자는 "대외사업 경험이 많지 않은 그룹의 IT서비스 기업들은 사업역량이 중소기업보다 부족해도 SM매출로 경영을 유지할 수 있어 출혈경쟁을 감수할 수 있다"며 "이들은 사업에 탈락해도 큰 여파가 없지만 중견ㆍ중소기업들은 당해 사업기반이 흔들릴 만큼 큰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악순환 고리 끊어야=저가경쟁이 또 다른 저가경쟁을 유발하는 것도 문제다. 한 업체가 저가입찰을 하면 유사분야의 다른 사업에서 해당 업체와 경쟁할 때 다른 회사들도 계획보다 가격을 낮춰 쓰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를 막기 위해 업계는 60%인 가격 하한선을 70~80%로 상향조정하는 방안을 꾸준히 건의해왔다. 이익은 못 남겨도 손해는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출혈경쟁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와 업계 모두 상향조정에 따른 효과분석 등 관련 연구를 진행한 사례가 없어 이렇다 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크고 작은 그룹사들이 IT서비스 계열사를 설립, 정보화 업무를 맡기고 있다. 자체 생존력 확보와 중장기 발전을 위해 대외사업을 확대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최근 대외사업을 확대중인 한 그룹사의 IT서비스사 대표는 "그룹의 매출이 없는 현대정보기술이나 대우정보시스템과 유사한 경영형태를 만드는 게 최종 목표지만 시장에서 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룹에서 발생하는 매출을 담보로 한 회사들과의 경쟁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올들어 국내 IT서비스 기업들이 대중소 상생 협력을 추진하고 해외진출을 가속화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데 최근 저가입찰 논란이 이같은 노력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매출이나 수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저가입찰을 하는 것은 지탄받아 마땅하지만, 시장 진입과 영역확대를 위해 불가피하게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며 "기업 스스로 무차별적인 저가입찰을 지양하고 기술과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옥진기자 witho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