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의 애플…혁신은 계속된다

  •  
  • 입력: 2010-01-28 15:22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항상 갈망하고 언제나 우직하게(Stayhugry, Stay foolish), 매일을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살아가십시오." 스티브 잡스가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 축사에서 졸업생들에게 한 연설 가운데 한 대목이다.

잡스의 축사 모습을 담은 동영상은 당시 구글 비디오 인기순위 `톱 100` 안에 들 정도로 국내외 젊은이들의 마음 깊숙이 작은 울림을 전했다. 그러나 그의 일생이 연설처럼 언제나 우직하게 움직인 것만은 아니였다.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노동자 가정에 입양됐고, 리드대학에 입학했지만 6개월만에 그만뒀다. 애플을 창업했지만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자신이 영입한 인물에 의 해 쫓겨나는 비애를 겪었고, `이제는 끝`이라고 생각되던 애플에 복귀해 다시 화려하게 부활시켰다.

자신과 애플을 부활시켰지만, 그는 다시 췌장암이라는 고통을 겪게 되고 `끝났다`고 모두들 여길 때 병마와 싸워 이겨낸 뒤 다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성공과 좌절이 늘 함께한 부침의 연속인 인생이다.

애플의 창업은 1976년 4월 1일 만우절날이다. 잡스가 21세의 나이에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 I을 판매하기 시작한 날이다. 이른바 첫 개인용 컴퓨터인 애플 I과 애플 II는 애플 컴퓨터를 선도적인 컴퓨터회사로 만든 제품이다. 특히 애플 II는 사실상 8비트 컴퓨터의 표준 역할을 할 정도 였다.

급성장한 애플에서 경영자보다는 선구자(Visionary) 역할을 하고 싶었던 잡스는 매킨토시 프로젝트에 뛰어들고 전문경영인 존 스컬리를 영입했다.

그러나 수익을 다변화시키고 싶어했던 스컬리는 1986년 이사회를 소집, 익명 투표를 벌인 끝에 그를 영입한 잡스를 애플에서 축출한다.

1985년 30대의 나이에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나는 운명에 처한 것이다.

잡스의 축출과 함께 애플도 PC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고 만다. IBM과 마이크로 소프트(MS), CPU(중앙처리장치) 제조업체인 인텔이 합작해 `윈텔`(Win-tel) 연대를 만들고 전 세계 PC 시장 중 90% 이상을 장악한다. 스티브 잡스가 다시 복귀하는 1997년까지 애플은 전 세계 10%도 안 되는 마니아계층이 사용하는 군소 PC 업체로 전락한다.

IBM과 MS의 아성을 깬다는 것이 사실상 쉽지 않았던 것이다. 잡스는 애플에 복귀하자마자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한다. 맥킨토시라는 핵심사업을 제외하고 프린터와 디지털카메라, PDA, 스피커, 외장하드 등 대부분의 사업에서 발을 뺐다. 대신 잡스는 MS와의 화해를 선언한다. 1997년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맥월드 엑스포`에서 잡스가 MS의 빌 게이츠 창업자와 함께 등장한 것이다.

여기서 MS는 애플 주식 1억5천만달러어치를 매입하고 맥용 오피스와 익스플로러를 함께 개발하기로 했다. 적대적 인수합병설이 나오는 등 어려었던 시기에 MS라는 든든한 우군을 영입한 것이다. 그가 애플에서 받는 연봉은 단 돈 1달러다. 그는 50센트가 출근 수당, 50센트가 능력 수당이라는 농담으로 1달러를 말한다. 물론 주식 가치나 스톡옵션 등을 따지면엄청난 소득을 갖고 있기는 하다. 회사 안정과 함께 잡스는 혁신적인 제품을 기획한다.

인터넷의 `i`(아이)를 뜻하는 `아이` 시리즈를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첫 작품은 1998년 선보인 `아이맥`이다. 이는 영국 출신의 디자이너인 조너선 아이브의 작품이다. 디스크 드라이브를 없애고 당시로서는 사용이 드문 USB 포트만을 갖췄다. `아이맥`은 나온 지 다섯 달만에 80만대가 팔려 나갔고 덕분에 애플은 1993년 이래 처음으로 연속 분기 흑자를 이어나갔다.

애플의 부활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제품은 2001년 10월에 처음 발표한 `아이팟`이다. 잡스는 음반 콘텐츠 시장에 주목했다. 당시 전세계 음반 시장은 MP3플레이어의 등장과 함께 불법 다운로드의 확산으로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우수한 콘텐츠를 자신이 만든 우수한 하드웨어에 결합시키겠다는 것이 잡스의 판단이었다.

이를 위해 잡스는 `아이팟`과 함께 `아이튠즈`라는 음악 관리 소프트웨어를 함께 내놨다. `아이튠즈`는 2003년 `아이튠즈 스토어`로 확대되며 `아이팟`용 음악을 온라인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게 해 음반시장의 부활을 가져왔다.

또 100메가바이트(MB) 미만의 소용량이 대세인 MP3플레이어를 5GB 또는 10GB 등의 대용량으로 확장하며 타 제품과의 차별성을 분명히했다. `아이팟`의 성공에 이어 애플은 `아이폰`을 내놓는다. 제대로 된 스마트폰이 없는 상황에서 `아이폰`은 기존의 휴대전화와 확실한 차별화에 성공했다. 여기에 `아이폰`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앱스토어를 통해 내놓으면서 또 다시 콘텐츠에 주목했다.

잡스는 평소에 "소프트웨어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거기에 걸맞은 하드웨어를 내놓아야 한다"는 말을 즐겨 했다. 잡스가 내놓은 `아이팟`, `아이폰`은 물론 이번에 공개한 태블릿 PC `아이패드`모두 소프트웨어, 즉 콘텐츠에 주목하고 있다. `아이팟`은 음반, `아이폰`은 소프트웨어, `아이패드`는 신문과 잡지, 동영상, 전자책(e-북) 등이다. 올드 미디어의 풍부한 콘텐츠를 애플의 뉴 미디어 기기가 훌륭하게 부활시키고 있는 셈이다.

애플을 훌륭하게 부활시킨 잡스는 앞으로 구글, MS와의 일전을 앞두고 있다.

휴대전화 시장에 본격 진출을 선언하며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와 함께 `넥서스원` 스마트폰을 선보인 구글은 제1의 경계대상이다. 애플은 구글의 `넥서스원` 출시를 전후해 `아이폰` 출시 이후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탑재시킨 구글과의 관계 단절을 모색하고 있다.

대신 손을 내민 곳은 MS다. 1997년 재기를 모색할 때 스티브 잡스가 내밀었던 손은 절박했지만 이제는 대등한 위치다. 오히려 애플 쪽이 더 앞서 있다는 평가다. 애플은 우선 아이폰에 MS의 검색엔진 `빙`을 탑재시킬 예정이다. 또 MS는 오피스 등의 프로그램을 애플과 스마트폰으로 공동개발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태블릿 PC `아이패드`의 확산은 결국 MS의 윈도와 윈도 기반 PC 시장을 타깃으로 해야만 이뤄질 수 있다. 최근에는 MS에서 자체 스마트폰을 출시할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면서 MS는 언제든지 애플의 적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애플, 구글, MS의 `신 삼국지`가 바야흐로 시작됐다.

[저작권자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가장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