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양심`으로 산 거목

정치역정 좌절ㆍ재기 거듭…'햇볕정책' 미완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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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양심'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산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거목이다.

반독재 민주화의 투사이자 통일운동의 상징, 그리고 한국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 IMF(국제통화기금) 경제위기를 극복한 대통령 등 그의 일생은 우리 현대사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상주의자'였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철저한 `현실주의자'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그의 평생 최고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는 헌정사상 최초의 평화적 정권 교체는 이뤘지만 `햇볕정책'으로 대변되는 남북화해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김 전 대통령은 1924년 전남 목포 앞바다의 작은 섬 하의도에서 소작농의 둘째 아들로 태아나 교육열이 남달랐던 어머니에 힘입어 목표상고에 수석 합격했다. 졸업 후 일제의 강제징집을 피해 해운회사에 취직했고, 이후 기업인과 목포일보를 경영하는 언론인으로서 능력을 인정받는다.

그는 해방 정국에서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에 참여했지만 좌익과 맞지 않아 탈퇴했고, 한국전쟁 기간 중에는 우익이라는 이유로 총살 직전에 탈출하는 고비를 맞았다. 이것이 생애 5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던 김 전 대통령의 첫 시련의 시작이다.

암울한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던 김 전 대통령은 이후 정치에 뛰어들었다. 이승만 독재와 친일파가 득세한 부패한 정권과의 싸움으로 시작한 김 전 대통령의 정치인생은 1997년 집권할 때까지 평생 야당의 길로 이어졌다.

그의 정치 역정은 처음부터 시작됐다. 1954년 민위원 선거에서 고향 목표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고배를 마신 후 강원 인재에서 3전4기만에 당선됐지만, 5.16 쿠데타로 당선증도 받지 못하고 의원직을 잃었다. 이 과정에서 첫 부인인 차용애씨와 누이동생을 잃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후 1962년 YWCA 연합회 총무로 활동하던 2살 연상의 이희호 여사와 재혼했고, 1963년 목표에서 당선되며 중앙 무대를 처음으로 밟는다. 이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도 두려워하는 야당 대변인으로 명성을 떨쳤고, 악연은 1979년 박 전 대통령의 서거까지 이어진다. 1964년에는 본회의장에서 무려 5시간 19분 동안 물 한모금 마시지 않고 연설하는 `필리버스터'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정치인 김대중은 1971년 40대 기수론을 앞세워 처음으로 대권에 도전한 이후 1997년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기까지 좌절과 재기를 거듭했다. 1971년 대선에서는 `선거에서는 이기고 개표에서 졌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석패했지만 야당의 대표 정치인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됐다.

이것이 빌미가 돼 박정희 정권은 이듬해 유신을 선포했고, 김 전 대통령은 평생 다리를 절게 된 교통사고와 납치 살해 기도 등 당시 정권으로부터 탄압을 받았지만 굴하지 않았다.

1979년 10.26사태 이후 1980년 `서울의 봄'을 맞았지만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돼 사형선고를 받아 최대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미국 망명길에 오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87년 6.10 민주화항쟁으로 맞은 절호의 기회를 김영삼 전 대통령과 대권 다툼으로 잃어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이후 1992년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대선 경쟁에서 다시 패했지만, 1997년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DJP 공조'를 이뤄 대한민국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역사를 썼다.

그의 대통령 집권기는 평탄치 않았다. 전 정권 말기부터 시작된 외환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았고, `금 모으기'로 상징되는 노력으로 집권 1년반 만에 사상 최대의 무역흑자를 내는 등 단기간에 이를 극복했다.

김 전 대통령은 집권 중반을 맞은 2000년 분단 55년만에 남북정상이 평양에서 만나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성시시켰고, 남북화해의 첫발이라고 할 수 있는 `6.15 남북공동선언'을 이끌어냈다. 이를 통해 김 전 대통령은 민주화 투사에서 평화통일의 상징으로 부상했고, 한국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정권을 넘겨준 김 전 대통령은 `행동하는 양심'으로서 끊임없이 현실 정치에 영향력을 미쳐 왔고, 국제사회가 존경하는 거물로 자리잡아 왔다. 하지만 `내 반쪽이 무너진 것 같다'라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처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지병이 급격히 악화되며, 2009년 8월18일 86년 영욕의 생을 마감했다.

이근형기자 r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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