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 광장] 본인확인제의 헌법적 의미

정경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동향분석실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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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05-31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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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 광장] 본인확인제의 헌법적 의미
최근 구글이 우리나라의 본인확인제 적용 요구를 거부했다. 언론은 마치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는 구글과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방송통신위원회가 대립하는 것처럼 대서특필했다. 도대체 본인확인제가 무엇이기에 이처럼 전 세계적으로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일까.

본인확인제란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릴 때 서비스사업자가 실시하는 본인확인 절차를 거친 후 글을 쓰라는 제도이다. 반드시 실명으로 글을 써야하는 실명제와 달리 익명으로 글을 쓸 수도 있다. 혹자는 본인확인제를 실명제의 아류쯤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실명으로 글을 쓰는 경우 심리적으로 부담을 느낀다는 점에서 실명제와 본인확인제는 약간 차이가 있다. 본인여부를 확인시키는 방법 중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실명과 주민등록번호이다. 그 외에도 금융기관의 공인인증서 등을 통해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우리나라 사람이면 태어나면 누구든지 출생신고를 한다. 이를 위해 이름이 필요하고, 신고를 하게 되면 주민등록증을 받기 이전에 벌써 주민등록번호가 주어진다. 결국 우리나라 사람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본인확인제를 거치는 셈이다.

배우ㆍ탤런트ㆍ가수 등 연예인들은 흔히 예명을 사용한다. 연예인뿐만 아니다. 문화계ㆍ패션계 등 여러 분야에서 예명 내지 필명을 사용하는 인사들이 적지 않다. 실제 세계적으로 이름난 모 디자이너는 본명이 밝혀져 실소를 자아낸 적도 있다.

예명이나 필명을 사용한 까닭에 글을 더 잘 쓰고, 연기를 더 잘하고, 디자인을 더 잘 하는 것일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타고난 재능에 후천적인 노력이 더해진 결과일 것이다. 단지 그 분야에서 대중들이 더욱 친근감을 갖고 쉽게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익명성 때문에 글을 더 맛깔스럽게 쓰고 표현의 자유가 더 신장되는 것은 아니다. 표현의 자유는 익명이 아닌 실명을 사용하더라도 보장되어야 한다. 익명을 사용할 때 표현의 자유가 더 신장되는 것이라면 오히려 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익명성에 기댈 때 부담을 덜 느끼고 더욱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최근 발생한 연예인들의 죽음에서 볼 수 있듯이 그 글이 남을 비방하고 모욕을 준다면 때로는 비수가 될 수 있다.

모름지기 진정한 자유란 책임이 따른다. 책임을 수반하지 않는 자유는 방종에 불과하다. 우리 헌법도 제21조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시 본인확인제로 돌아가 생각해보자. 본인확인제는 우리 헌법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본인확인제는 `거시적 차원의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는 익명성 요구와 `피해자 보호 등을 위한 부득이한 규제`로서의 실명제 필요 사이에서 치열한 고민을 한 결과로 보여진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헌법 정신이 본인확인제에서 절묘하게 구현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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