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규 칼럼] 이석채와 정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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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만 건드려도 톡 터질 것 같은 시장이라면, 그 배짱과 자금력으로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이미 올 데까지 와버린, 갈 곳은 멀리 있으나 무엇하나 뚜렷해 보이지 않는 시장에서 몸을 움직이는 게 참 쉽지 않다. 이동전화, 유선전화, 초고속인터넷, 유료방송 등 돈 될만한 서비스는 죄다 한계상황이다. 2월말 현재 이동전화는 4600만으로 인구대비 95%, 초고속인터넷도 1550만으로 가구대비 95%에 달한다. 무엇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아 회사를 더 살찌우고 침체에 허덕이는 나라 경제를 살릴 것인가.

주위의 기대감은 높고 운신의 폭은 좁다. 시장은 변화무쌍하지 않으며, 이것저것 결합하고 더 나아가 융합시켜본 들 눈 높아진 소비자들은 새롭게 보아주지 않으니 말이다. "너희가 투자할 몫은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정부의 압박 수위는 높아지고, 돈 안 되는 곳에 투자하지 말라는 주주들의 목소리는 더 거세다. 완전 민영화된 기업들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예전 공기업 대하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 주주는 예전의 예사주주가 아니다. 전체 지분의 35%, 45%를 갖고 있어 경영진 마음대로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2G(세대)와 3G 이동통신이 혼재하는 시대, 방송과 통신이 융합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자리잡으려 몸부림치는 상황, 국민들의 실생활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어 공공재의 취급을 받고 있는 게 방송과 통신서비스다.

이석채와 정만원. 참 어려운 시기에 중요한 자리에 앉았다. 지난 1월 며칠의 시차를 두고 나란히 우리나라 대표 통신기업 KT와 SK텔레콤의 사령탑으로 자리한 이석채 회장과 정만원 사장이 4월 들어서면서 각각 취임 100일을 맞고 있다. 행정고시 7회, 21회라는 세월의 격차가 서류 위에서 물리적 경험치의 차이로 나타날지 모르나, 이미 두 사람은 결코 다르지 않은 상황에 노출돼 필연적인 생존의 경쟁을 벌여야할 운명이다.

두 사람이 서 있는 전장은 비상구도 없고 탈출구도 보이지 않는, 사각의 링과도 같다. 시장은 생존을 위해 늘 상대의 피를 원한다. 현장은 현실적이며, 구체적인 수치와의 싸움이다. 그래서 멋진 승부를 얘기하기에 링은 너무 좁고 뜨겁다.

하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미래를 얘기한다. 그런데 비전은 갈수록 현실적이지 않고 추상적이다. 지금 서 있는 사각의 링에서 벗어나, 무대를 더 큰 곳으로 옮긴 때문이다. 두 사람은 지난 8, 9일 각각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회사의 정체성에 대해 언급했다.

이석채 KT 회장은 "통합 KT는 단지 통신료를 받아서 운영하는 네트워크 업체로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기존의 통신망에 새로운 서비스를 얹어 인터넷 네트워크 솔루션 업체로 변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만원 SK텔레콤 사장은 "국내 통신시장의 성장정체가 심각한 수준이다. SK텔레콤의 성장정체는 우리 IT산업 전체의 성장정체와 같다"며, "SK텔레콤이 새로운 성장전략으로 `ICT기반 글로벌 블루오션`을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두 사령탑의 일성과 이어지는 얘기 속에는 의미 있는 메시지가 보인다. 한계에 달한 내수시장의 경쟁에서 벗어나 글로벌 경쟁을 펼쳐보자는 것과, 그 경쟁의 중심이 더 이상 네트워크가 아닌 소프트웨어, 솔루션, 콘텐츠가 되어야한다는 점을 얘기하고 있다. 추상적 메시지처럼 들리나, 궁극적으로 통신사업자가 가야할 길이다.

가끔 궁금해진다. 통신사업자들의 미래 정체성과 비전에 대한 고민처럼, 규제기관도 그렇게 치열하게 나라의 새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있을까. 몇 조를 투자하고 세계에서 몇 위를 차지하는 숫자놀음에 급급해,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 기업과 함께 그려야할 진짜 비전을 소홀히 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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