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디지털 산책] 디지털 세상의 창발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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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열 KT 경영연구소장


복잡계 이론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중에 창발이라는 단어가 있다. 창발(創發ㆍEmergence)은 이전에는 단편적인 현상으로만 존재하던 것이 어느 순간에 갑작스럽게 새로운 형태로 창조적으로 발현되는 것을 말한다.

나비의 펄럭임이 태풍을 만드는 자연 생태계의 신비는 `1+1〓2'라는 산술적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창발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창발은 오늘날과 같이 디지털로 이루어진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는 데도 아주 유용하다.

애플의 아이팟은 멋진 디자인의 MP3P에 불과한 듯 보였지만, 사람들이 음악을 듣는 방식을 바꾸었고 음반 산업 전체를 변화시켰다. 또한 소프트웨어를 포함한 IT 산업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더 나아가 라이프 스타일과 문화를 통째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작년 한해 동안 20만개 이상의 회사들이 아이팟과 호환되는 제품을 제조하기 위해 애플과 계약을 맺었으며 2007년 미국 모델 신형차의 약 70%가 아이팟을 장착하고 약 10만개의 항공좌석에서도 아이팟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미국 최대 이통사업자인 AT&T와 손잡고 아이폰을 출시해 통신산업계에 새로운 협력모델을 제시했다. 음악산업에서 시작된 `아이팟 특수'가 전화와 인터넷 시장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아이폰의 성공 여부를 속단하긴 이르지만, 통신사업자에게는 차별화된 디바이스로 경쟁력을 부여할 것이고, 핵심 자산인 디바이스와 연관된 내장 칩과 메모리 제조사에서부터 아이폰에서 소비되는 동영상 콘텐츠까지 상호협력을 통한 발전을 도모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처럼 아이팟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지만, 복잡한 상호작용을 하면서 전혀 새로운 트렌드를 창조해냈다. 아이팟은 디지털 세상의 창발로, 참여와 협력으로 이루어진 `애플 생태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통신산업에도 아이팟과 같은 새로운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창발이 필요한 시점이다.

과거 이동통신과 초고속인터넷이 바탕이 되어 촉발된 우리나라의 산업경쟁력은 최근 들어 급속히 후퇴되는 느낌이다. 우리나라의 브로드밴드 보급률은 2006년 6월 기준으로 26.4%로 OECD 국가 중 5위로 밀려났다. FTTH(댁내광가입자망) 부문에서도, 일본이 올해 안에 1000만을 돌파하며 우리나라를 크게 앞서가고 있다.

급변하는 IT 환경은 위협과 기회의 양면성을 갖고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디지털화가 촉진되고 IT 산업간 컨버전스가 진척되면서, 전통적인 가치사슬이 붕괴되고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다양한 비즈니스의 기회가 창출되고 있다. 최근의 통신정책 흐름도 이를 반영하듯, 결합규제가 완화되고 도매시장을 활성화시키려는 분위기이다. 통신과 금융의 결합상품이 출시된 지 오래이고, 앞으로는 정유사, 대형할인점 등 비 통신사업자들도 자사의 고객기반을 바탕으로 통신서비스와 결합하여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 법제화에 난항을 겪고 있는 IPTV는 디지털 생태계 내 새로운 창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과거 경험에 비추어, IPTV가 기존 방송산업과 경쟁을 하는 대체재라는 관점이 도입을 막고 있지만, 애플의 아이팟처럼 새로운 온라인 음원시장을 키우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 상에서 자신들의 음악방송을 만들고 있는 것처럼 IPTV도 우리가 결코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 수 있다. IPTV가 변화시키는 것은 비단 방송시장뿐만이 아니라, 우리 삶의 전반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나비의 펄럭임과도 같은 것이다.

와이브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아이폰의 인터넷 기능을 가장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 기술로 와이브로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더 나아가 KT와 애플이 주도하는 생태계를 넘어서 참여와 공유를 통한 모바일 웹 2.0의 시대가 현실화될 지도 모른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수록 와이브로의 네트워크 가치가 증가하고, 이들을 고객화하려는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도 덩달아 증가하게 될 것이다.

신규 서비스에 대한 관점을 바꾸어, 이제는 IPTV와 와이브로 등을 새로운 생태계 창출의 성장동력으로 봐야 한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 사물의 구성요소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구성요소들이 맺고 있는 전체적인 관계를 중심으로 보는 것이야말로 IT산업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창발적 발상이라고 하겠다. 디지털과 생태계가 만났을 때 그 안에서 일어날 진정한 창발 효과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