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어도 없는데 왜 갑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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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어도 없는데 왜 갑니까"
 국내전시회 떠나는 중소기업 '이유있는 외면'        
대기업 중심ㆍ중복행사 문제… 중기 "비용 더 들어도 해외로"



"올해 한국전자전은 참여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중소 TV 업체 C사 전시담당자는 지난 3년간 매년 10월 한국전자전에 1억원 가까운 비용을 투자해 전시 부스를 마련했지만 올해는 참가하지 않을 계획이다.

이 담당자는 "CES나 세빗, IFA 등 해외 전시회가 비용은 더 들지만 수출상담을 할 바이어가 있다"면서 "한국전자전은 바이어도 없고 주최지가 코엑스에서 킨텍스로 옮기면서 관람객도 줄었다"며 불참 이유를 밝혔다.

◇중소기업으로부터 외면 받는 전시회= 국내 최고ㆍ최대 규모의 전자전문 전시회인 한국전자전이 중소기업들로부터 외면 받고 있다. 한국전자산업진흥회(이하 진흥회)가 오는 10월 올해로 38년째를 맞는 한국전자전을 세계 5대 전시회로 육성하기 위해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인 220개 해외업체를 포함해 650개사 총 1500부스로 개최할 예정이지만, 실제 이 전시회에 참여해야 할 중소 전자업체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지난해 중소 TV 업체들이 대거 불참하며 초라한 모습을 보인 데 이어 지난해 참여했던 업체들 마저 등을 돌리고 있는 것.

이유는 해외 전시회에 비해 효용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억대의 비용을 사용하는 전시회에서 그만큼의 성과를 올려야 한다. 하지만 평균 1.5배의 비용이 더 드는 미국 CES나 독일 IFA와 달리 한국전자전에는 바이어가 없다는 게 중소업체들의 설명이다.

주최측인 전자산업진흥회는 지난해 바이어 5600명을 포함해 20만3000명이 전자전을 관람했고 수출상담도 23억2000만달러의 성과를 올렸다고 밝혔지만, 수출로 이어졌다는 기업은 찾아보기 어렵다. 또 대기업 위주로 진행되는 전시회도 `그들만의 리그'라는 비난을 받기에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바이어는 없고 `구경꾼'만 몰려= 한국전자전에는 바이어들이 실제 구매할 물건이 없다는 것이 업계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몇몇 회사의 `쇼'는 해외 전시회에서 충분히 봐 왔기 때문에 더 이상 이를 보기 위해서 찾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유럽이나 북미지역 바이어를 만나려면 비용은 더 들더라도 중국이나 홍콩에서 열리는 전시회를 가는 게 현실적이라는 얘기다.

한 중소 가전업체 사장은 "10월에 한국을 비롯해 홍콩, 중국, 일본에서 전시회가 연이어 열려 예전에는 바이어들이 전자전을 많이 찾았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한국을 빼고 바로 중국이나 홍콩으로 간다"고 말했다.

중소 MP3 업체 관계자는 "국내전시회는 바이어보다 일반인 관람객이 많아 실제 계약이 일어나는 경우는 드물다"며 "전시회는 전시만이 목적이 아니라 계약이 이뤄지는 프로세스가 진행돼야 하는데 국내 전시회에는 일반인만 북적거린다"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은 대기업도 다르지 않다. 최근 폐막한 S전시회에 참가한 한 대기업 가전사 관계자는 "작년에 비해 올해 절반 규모로 전시회에 참가했고 내년에는 불참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며 "대기업이라는 의무감으로 참가하지만 비용 대비 효과 측면에서 마이너스"라고 말했다.

◇중복 전시회, 그들만의 리그=올해로 3회째를 맞는 국제전지산업전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다. 정부기관과 협단체 등이 대거 참여하는 국제 전시회라고는 하지만 참여하는 해외업체는 일본계 2차전지 2개사에 불과하고 국내 대표 전지업체인 삼성SDI와 LG화학도 불참했다. 바이어가 없는 보여주기 전시회에 그친다는 평가 때문이다.

바이어 없는 전시회와 함께 중복 전시회도 문제다. 국내 대표 인쇄회로기판(PCB) 관련한 KPAC쇼 등의 부품 전시회가 4월초 동시에 열려 전시회 품질도 떨어지고 업계 부담만 가중시켰다는 평가다. 이들 전시회의 주 참여업체는 PCB 관련 장비와 제조, 소재 업체로 동일하고 행사 내용도 유사하다.

한 PCB 업체 임원은 "비슷한 내용의 행사가 며칠 간격으로 열리는데 지방에 위치한 업체 종사자가 두 전시회를 보기 위해 연속으로 서울로 나오긴 어렵다"며 "전시 내용이나 참가 업체 측면에서도 하나로 통합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진흥회는 지방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한국전자전을 내년부터 봄과 가을로 나눠 개최, 봄에는 대구에서 가을에는 기존 대로 일산 킨텍스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또 하나의 `그들만의 리그'가 탄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대목이다.

이처럼 전시산업이 겉도는 것은 국내 전자산업이 수출 1000억달러를 돌파하는 등 양적으로 팽창한 것과 달리 국내 시장이 작은 것뿐만 아니라 이미 자리잡은 굵직한 해외 전시회에 비해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상해전자전이나 홍콩전자전처럼 `전시=구매'로 이어지는 비즈니스 전시회가 되지 못한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전시회를 통폐합해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데 업계의 중론이다. 또 실제 구매력을 갖춘 바이어들이 찾을 수 있도록 전문전시회를 발굴하고 대기업 보다는 중소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풍토를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중소가전 업체 사장은 "전시회는 유통력과 자금력이 없는 중소기업에게는 중요한 홍보 및 매출 창구"라며 "국내 전시회도 해외 전시회처럼 특화와 함께 바이어 유치에 더 힘을 기울여야 외면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근형 rilla@ㆍ송원준기자 sw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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