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명곡’에 실은 R&B 가수의 존재감

  •  
  • 입력: 2005-03-08 01:01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리메이크곡 ‘귀로’로 각종 가요차트 정상 휩쓴 나·얼


지난해 5월29일 저녁 일본 도쿄 교외의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 경기장에서 일본 2인조 남성 보컬 그룹 ‘케미스트리’의 공연을 관람했던 적이 있다. 1만7000여명의 관객과 17개의 크고 작은 스피커, 중앙 원형 무대 등이 무시무시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일본 최고의 듀오라는 ‘케미스트리’는 관객들을 다루는 방식에 매우 익숙했고 그 거대한 공연장의 주인이 될 자격이 충분해 보였다. 그런데 공연 내내 뭔가 2% 부족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질투심이나 애국심의 발로 차원에서 이들의 공연을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아니다. 단지 가창력이라는 측면에서 그 누군가와 ‘비교’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누군가란 바로 국내 남성 보컬 듀오 ‘브라운아이즈’였다. ‘케미스트리’의 공연이 환호와 박수로 막을 내릴 때까지 ‘브라운아이즈’가 못내 그리웠던 것이다. 나얼과 윤건이라는 걸출한 보컬리스트로 이뤄진 ‘브라운아이즈’는 해체돼 이제 그 모습을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다행히도 두 사람은 여전히 2%를 채워주는 목소리로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특히 나얼은 그룹 ‘브라운아이드소울’의 멤버로 활동하며 최근 발표한 리메이크 앨범 ‘백 투 더 소울 플라이트(Back To The Soul Flight)’로 리메이크 열풍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박선주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타이틀곡 ‘귀로’는 각종 가요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했고 나얼은 다시 한번 ‘노래 잘하는 가수’로 각인됐다. 최근 자메이카 여행에서 돌아온 그와 지난 4일 e메일 인터뷰를 가졌다.

“원래 처음부터 노래를 잘 하는 편이 아니었죠. 교회 성가대 활동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고 중학교 때 흑인 음악에 빠져든 이후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의 노래를 따라하면서 연습한 거예요. 보컬 트레이닝을 따로 받은 적은 한번도 없어요.”

국내에는 숱한 리듬앤드블루스(R&B) 계열의 가수들이 존재한다. 이들의 노래를 일일이 구분한다는 건 만원버스안에 떨어진 단추 찾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모두 엇비슷하게 꺾고, 떨어서 목소리만 들으면 그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그런데 나얼은 다르다. 100m 전방에서도 그의 목소리는 특유의 파장을 일으키고 있어 쉽게 구별이 가능하다. 그의 목소리에는 묵직한 존재감이 실려있는 것이다.

“요즘 마이클 잭슨의 78년도 앨범 ‘데스티니(Destiny)’를 한참 듣고 있어요. 지금 들어도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 아름다워요. 스티비 원더와 함께 저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뮤지션이죠.”

마이클 잭슨이 전세계 솔, R&B 보컬 역사에 개척자적인 목소리를 남겼듯이 나얼 역시 국내 대중음악계에서 같은 역할을 했다. 같은 계열의 가수들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대중으로부터도 사랑을 받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나얼은 이번 앨범에서 어렸을 때부터 애착을 가졌던 노래들을 리메이크했다. 특히 ‘귀로’는 고등학교 시절 노래방에서 자주 불렀던 노래다. 대중으로부터 한번 사랑을 받았던 노래를 다시 부른다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원곡보다 못하다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는 원곡의 매력을 최대한 살리면서 자신의 색깔을 불어넣는 일을 동시에 해냈다.

“녹음하면서 특별히 애를 먹은 노래는 없었는데 다만 ‘호랑나비’를 리메이크한다고 했을 때 회사는 물론 주변에서도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더라고요. 다행히 잘 나온 것 같아 만족스러워요.”

김흥국의 ‘호랑나비’는 신나는 브라스 연주와 맞물려 ‘나얼화’했다. 웬만한 가창력으로는 리메이크가 어렵다는 고 유재하의 노래 ‘우울한 편지’에서 우리는 나얼의 매력이 어딨는지를 알게 된다. 몸 어딘가가 알싸해지고 찌릿해지는 기분은 그의 목소리가 주는 선물이다.

나얼은 방송에 나서지 않는다. 그래서 더 가수답다.

“방송을 통해 팬들과 교감을 나눌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시간이 많다보니 음반 작업에 더욱 공들일 수 있어서 좋기도 하고요. 팬들과는 라이브 무대에서만 교감하고 싶습니다.”

문화일보 이승형기자 lsh@munhwa.com

추천기사



가장 많이 본 기사

스타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