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 시론] 100년 내다보는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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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4-07-14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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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 시론] 100년 내다보는 정책
김영인 월드캐피탈코리아 감사.객원논설위원

명나라가 청나라에게 망할 때 병부좌시랑이던 김지준(金之俊)이라는 사람이 뜻밖에도 항복을 하고 말았다. 병부좌시랑은 오늘날의 국방부 차관급인 고위층이다. 사람들은 매국노라고 손가락질했다.

그러나 그냥 항복한 것은 아니었다. 10가지 조건을 제시하며 받아들이지 않으면 자살하겠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청나라는 거물급 인사가 귀순하겠다는 바람에 조건을 모두 받아들였다. 중국 전체를 점령하는 것이 급했기 때문이다.

10가지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이른바 `종불종(從不從)' 조건이었다. 따를 것은 따르지만 따르지 않을 것은 결코 따르지 않겠다는 조건이었다.

① 남자는 청나라 조정을 따르되 여자는 따르지 않는다.

② 산 사람은 따르되 죽은 사람은 따르지 않는다.

③ 남편은 따르되 아내는 따르지 않는다

④ 관료는 따르되 아전은 따르지 않는다.

⑤ 노인은 따르되 젊은이는 따르지 않는다.

⑥ 유학자는 따르되 스님이나 도사는 따르지 않는다

⑦ 기생은 따르되 광대나 배우는 따르지 않는다.

⑧ 벼슬길은 따르되 혼인은 그대로 한다.

⑨ 나라 이름은 따르되 벼슬 이름은 그래도 한다

⑩ 부역이나 납세는 따르되 말이나 글은 그대로 둔다.

10가지 조건은 청나라의 `함정'이었다. 예를 들어 여자는 따르지 않는다는 조건을 적용, 전족을 계속할 수 있었다. 젊은이는 따르지 않는다는 조건을 빙자, 병역의무를 면했다. 청나라가 싫은 사람은 스님이나 도사는 따르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세워 중이나 도사가 되었다. 청나라를 피한 것이다. 광대나 배우는 따르지 않는다는 조건을 적용해 연극이나 노래, 예술 등은 청나라의 간섭을 받지 않고 중국 고유의 것을 지킬 수 있었다. 말이나 글은 그대로 둔다는 조건도 중국의 글과 말을 지킬 수 있도록 했다.

결국 이 조건 덕분에 중국은 전통문화를 고스란히 지킬 수 있었다. 단지 남자, 그것도 지식층이나 고위관리만 청나라를 따랐을 뿐 나머지는 그대로 보존할 수 있었다. 10가지 조건은 중국의 풍습과 문화, 예술을 지키기 위한 편법이었다.

청나라는 이로 인해 점차 중국에 물들어갔다. 중국어를 유창하게 하게 되었다. 만주어를 열심히 보급했지만 사라져갔다.

100년이나 지나서 건륭제 때가 되어서야 중국의 `음모'를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늦고 말았다. 더구나 제2, 제3의 김지준이 나타났다. 많은 중국사람들이 관리가 되어 청나라 조정을 파먹어 들어갔던 것이다. 100년을 내다본 조건이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수리공사로 꼽히고 있는 양쯔(揚子)강 중류의 싼샤(三峽)댐은 10년 전인 1994년에 착공되었다. 총길이 2,309.4m, 댐 높이는 60층 건물 수준인 185m에 달하고 있다. 총발전량 1820만KWh인 세계 최대의 수력발전소가 만주지방은 물론 대만까지 전력을 공급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저수량도 세계 최대다. 소양강 댐의 13.5배인 393억t에 달한다. 100년만에 오는 대홍수까지 예방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댐 건설에 따라 서울보다 약간 넓은 632㎢의 육지가 수몰된다. 이 댐은 중국의 국부(國父)인 쑨원(孫文)이 1919년에 제안했다고 한다. 공사를 착공하는 데 무려 80년이나 걸린 것이다. 자그마치 50년 동안 탐사하고 30년 동안 연구와 설계를 했다고 한다. 중국의 저력이다. 모든 일을 서두르지 않는다. 일본은 벌써부터 중국에 역전되기 시작했다고 아우성이다.

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싼 불협화음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여ㆍ야 간의 삿대질이 거세지고 있다. 정부와 언론간의 싸움으로 비화되고 있다. 우리에게는 100년을 내다보는 정책이 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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