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담당 초년생 한달월급 80만원 고작
장비낙후ㆍ안전사고 빈발 작업환경 최악
특수효과도 부실…`무늬만 HD방송'당연
2년제 대학 방송장비 관련 학과를 졸업한 드라마 조명 담당 초년생인 L씨가 밤샘 작업을 밥먹듯 하고 한 달에 받는 돈은 80만원 남짓. 그나마 오른 것이다. 얼마 전까지는 60만원을 받았다.
현재 국내의 방송외주제작 업체들은 250여 개다. 한국방송제작기술협회에 등록되지 않은 영세 업체를 포함하면 이 숫자는 더 커진다. 이렇게 많은 업체들이 한국의 방송제작 현장을 지키고 있지만, 이들 대부분은 열악한 작업환경과 낮은 임금으로 허덕이고 있다.
배우와 엑스트라의 출연료는 올랐지만, 방송 프로그램 외주업체의 제작비는 몇 년째 그대로인 상황이다. 이런 상태에서 오는 2010년 완전한 고화질(HD) 방송시대가 열린다해도, 국내의 방송제작 환경은 제대로 된 HD 프로그램을 제작할 여건이 조성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내 방송프로그램 외주 제작업계의 실상을 점검한다.
(상) 열악한 제작환경.
"방송국에서 지난해와 같은 조건으로 계약을 하자고 해 어쩔 수 없이 도장만 찍고 왔다. 그나마 계약을 하게된 것이 다행이다. PD 눈 밖에 나기라도 하면 바로 문을 닫아야한다"
지상파 방송국 드라마 촬영의 조명을 담당하는 J사장은 방송국이 일방적으로 제시한 계약조건을 울며 겨자 먹기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를 토로했다.
방송국의 외주를 받아 장비와 용역을 공급하는 다른 업체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지난 10년 간 방송국에서 제시한 단가표는 제자리이거나 오히려 낮아진 상태다. 수년 전 경제위기 때 낮아진 장비와 인력 단가는 올라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방송 프로그램 제작의 외주업체들이 이처럼 불리한 계약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것은 계약서상의 `자동갱신' 항목 때문이다. 방송국이 방송제작 외주업체와 체결한 계약은 계약 만료 1개월 전까지 계약 당사자가 거절의 의사표시를 하지 않을 경우 자동으로 연장된다. 한번 맺은 불리한 조건 역시 그대로 연장되는데, 이에 이의를 제기하면 재계약에서 불이익을 당하기 마련이다. 이 조항의 불공정성에 대해서는 한국방송제작기술협회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한 상태다.
방송사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외주업체에 지불하는 방송제작 관련 비용을 줄이려고 애쓰며, 그 성과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1999년도 KBS 연감의 254쪽은 "외부 용약 계약부분은 공사의 경영여건을 고려, 3단계 등급을 일원화(C등급)하여 예산절감에 크게 기여했다"고 적었다. 여기서 일원화는 AㆍBㆍC의 단계별로 구분해 제작비를 차등 지급했던 외주업체들 모두 C등급으로 하향 평준화함으로써 예산을 절감했다는 뜻이다.
2000년도 KBS 연감의 280쪽은 외주제작 업체와의 계약운영과 관련, "특수장비, 동시녹음 용역단가를 재계약시 전년대비 12.1% 하향함으로써 방송제작비를 절감하였으며, 조명ㆍ음향ㆍ발전기를 98년 계약단가 기준 10% 차감한 금액으로 연장 운영 및 신규 계약하여 경비 절감 뿐 아니라 업체간 경쟁유도로 기술개발 동기를 부여했다"고 밝혔다.
2000년의 외주제작 단가가 1998년 보다 10% 정도 낮아졌는데, 이후 현재까지 제작단가는 회복되지 않았다.
"현재의 구조에서는 아무리 좋은 장비가 있어도 제작에 사용할 수 없다. 몇 년 전부터는 제작비 절감을 위해 고가의 장비는 단가표에서 없애버렸다. 좋은 장비를 써도 비용을 청구할 수 없다. 만약 단가표 목록에 없는 고가의 장비가 필요하게 되면, 단가표 목록의 다른 고가 장비를 사용한 것처럼 올려 비슷하게 대가를 받는 수밖에 없다"
KBS는 연감에서 업체간 경쟁유도를 통한 기술개발의 동기 부여를 언급했지만, 외주제작 업체 관계자들은 방송 제작의 품질보다는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특수효과를 담당하고 있는 외주업체의 C사장은 13년 간 일하면서 아무런 사고가 없었던 점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할 정도다.
C사장의 업체는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져 있고 규모도 큰 편이라 보험에 가입되어 있지만, 영세 업체들의 경우 보험에 들지 않은 상태로 폭발장면과 위험한 액션장면을 수행해야 한다.
드라마에 필요한 특수효과 대부분은 규정된 계약서가 없이 방송사에 연결해주는 기획사와 구두로 계약을 맺는다. 방송사와의 정식계약이 아니라, 기획사가 일정한 금액을 제시하면 외주업체가 이를 구두로 수락한 뒤 요구받은 장면을 연출한다.
위험한 작업에서 방송국들이 정식계약을 기피하는 이유는 혹시 발생할 수 있는 사고의 책임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안전사고가 빈발하는 상태에서 만약 스텝이 사고를 당하면 모든 책임은 방송사가 아니라 외주업체가 져야 한다. 수년 전 사망사고가 발생한 이후 방송사들은 사고의 모든 책임을 외주업체에 사실상 떠넘기고 있다.
방송국이 제시한 제작비로는 원하는 특수효과를 낼 수도 없다. 높아진 시청자들의 눈을 맞추기 위해서는 좋은 장비를 써야 하는데, 10년 전보다 낮은 제작비로는 이에 맞출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제작비를 맞추기 위해 폭발물 취급 자격증이 없는 무자격자에게 폭발물을 다루는 일을 허다하다. 방송 제작의 현장은 폭발물 처리 규정이 통하지 않는 치외법권지대다.
부족한 제작비의 상당부분을 인건비에서 줄여야하는 것도 현실이다. 또 제작사와 정식계약을 하지 않기 때문에 기획사가 문을 닫을 경우 제작비를 못 받는 일도 빈번하다. 이런 상황에서 양질의 작업을 추구할 수 있는 여유는 찾아볼 수 없다.
한편에서는 HD와 디지털 방송의 미래를 얘기하지만, 정작 방송 프로그램의 외주제작 현실은 수십 년전의 낙후된 상태에 머물고 있다. 특히 공영방송으로서 방송제작산업을 지원하고 발전시켜야할 KBSㆍMBC의 역할에 대해서 다시 돌아보게 하는 부분이다.
장비낙후ㆍ안전사고 빈발 작업환경 최악
특수효과도 부실…`무늬만 HD방송'당연
2년제 대학 방송장비 관련 학과를 졸업한 드라마 조명 담당 초년생인 L씨가 밤샘 작업을 밥먹듯 하고 한 달에 받는 돈은 80만원 남짓. 그나마 오른 것이다. 얼마 전까지는 60만원을 받았다.
현재 국내의 방송외주제작 업체들은 250여 개다. 한국방송제작기술협회에 등록되지 않은 영세 업체를 포함하면 이 숫자는 더 커진다. 이렇게 많은 업체들이 한국의 방송제작 현장을 지키고 있지만, 이들 대부분은 열악한 작업환경과 낮은 임금으로 허덕이고 있다.
배우와 엑스트라의 출연료는 올랐지만, 방송 프로그램 외주업체의 제작비는 몇 년째 그대로인 상황이다. 이런 상태에서 오는 2010년 완전한 고화질(HD) 방송시대가 열린다해도, 국내의 방송제작 환경은 제대로 된 HD 프로그램을 제작할 여건이 조성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내 방송프로그램 외주 제작업계의 실상을 점검한다.
(상) 열악한 제작환경.
"방송국에서 지난해와 같은 조건으로 계약을 하자고 해 어쩔 수 없이 도장만 찍고 왔다. 그나마 계약을 하게된 것이 다행이다. PD 눈 밖에 나기라도 하면 바로 문을 닫아야한다"
지상파 방송국 드라마 촬영의 조명을 담당하는 J사장은 방송국이 일방적으로 제시한 계약조건을 울며 겨자 먹기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를 토로했다.
방송국의 외주를 받아 장비와 용역을 공급하는 다른 업체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지난 10년 간 방송국에서 제시한 단가표는 제자리이거나 오히려 낮아진 상태다. 수년 전 경제위기 때 낮아진 장비와 인력 단가는 올라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방송 프로그램 제작의 외주업체들이 이처럼 불리한 계약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것은 계약서상의 `자동갱신' 항목 때문이다. 방송국이 방송제작 외주업체와 체결한 계약은 계약 만료 1개월 전까지 계약 당사자가 거절의 의사표시를 하지 않을 경우 자동으로 연장된다. 한번 맺은 불리한 조건 역시 그대로 연장되는데, 이에 이의를 제기하면 재계약에서 불이익을 당하기 마련이다. 이 조항의 불공정성에 대해서는 한국방송제작기술협회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한 상태다.
방송사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외주업체에 지불하는 방송제작 관련 비용을 줄이려고 애쓰며, 그 성과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1999년도 KBS 연감의 254쪽은 "외부 용약 계약부분은 공사의 경영여건을 고려, 3단계 등급을 일원화(C등급)하여 예산절감에 크게 기여했다"고 적었다. 여기서 일원화는 AㆍBㆍC의 단계별로 구분해 제작비를 차등 지급했던 외주업체들 모두 C등급으로 하향 평준화함으로써 예산을 절감했다는 뜻이다.
2000년도 KBS 연감의 280쪽은 외주제작 업체와의 계약운영과 관련, "특수장비, 동시녹음 용역단가를 재계약시 전년대비 12.1% 하향함으로써 방송제작비를 절감하였으며, 조명ㆍ음향ㆍ발전기를 98년 계약단가 기준 10% 차감한 금액으로 연장 운영 및 신규 계약하여 경비 절감 뿐 아니라 업체간 경쟁유도로 기술개발 동기를 부여했다"고 밝혔다.
2000년의 외주제작 단가가 1998년 보다 10% 정도 낮아졌는데, 이후 현재까지 제작단가는 회복되지 않았다.
"현재의 구조에서는 아무리 좋은 장비가 있어도 제작에 사용할 수 없다. 몇 년 전부터는 제작비 절감을 위해 고가의 장비는 단가표에서 없애버렸다. 좋은 장비를 써도 비용을 청구할 수 없다. 만약 단가표 목록에 없는 고가의 장비가 필요하게 되면, 단가표 목록의 다른 고가 장비를 사용한 것처럼 올려 비슷하게 대가를 받는 수밖에 없다"
KBS는 연감에서 업체간 경쟁유도를 통한 기술개발의 동기 부여를 언급했지만, 외주제작 업체 관계자들은 방송 제작의 품질보다는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특수효과를 담당하고 있는 외주업체의 C사장은 13년 간 일하면서 아무런 사고가 없었던 점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할 정도다.
C사장의 업체는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져 있고 규모도 큰 편이라 보험에 가입되어 있지만, 영세 업체들의 경우 보험에 들지 않은 상태로 폭발장면과 위험한 액션장면을 수행해야 한다.
드라마에 필요한 특수효과 대부분은 규정된 계약서가 없이 방송사에 연결해주는 기획사와 구두로 계약을 맺는다. 방송사와의 정식계약이 아니라, 기획사가 일정한 금액을 제시하면 외주업체가 이를 구두로 수락한 뒤 요구받은 장면을 연출한다.
위험한 작업에서 방송국들이 정식계약을 기피하는 이유는 혹시 발생할 수 있는 사고의 책임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안전사고가 빈발하는 상태에서 만약 스텝이 사고를 당하면 모든 책임은 방송사가 아니라 외주업체가 져야 한다. 수년 전 사망사고가 발생한 이후 방송사들은 사고의 모든 책임을 외주업체에 사실상 떠넘기고 있다.
방송국이 제시한 제작비로는 원하는 특수효과를 낼 수도 없다. 높아진 시청자들의 눈을 맞추기 위해서는 좋은 장비를 써야 하는데, 10년 전보다 낮은 제작비로는 이에 맞출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제작비를 맞추기 위해 폭발물 취급 자격증이 없는 무자격자에게 폭발물을 다루는 일을 허다하다. 방송 제작의 현장은 폭발물 처리 규정이 통하지 않는 치외법권지대다.
부족한 제작비의 상당부분을 인건비에서 줄여야하는 것도 현실이다. 또 제작사와 정식계약을 하지 않기 때문에 기획사가 문을 닫을 경우 제작비를 못 받는 일도 빈번하다. 이런 상황에서 양질의 작업을 추구할 수 있는 여유는 찾아볼 수 없다.
한편에서는 HD와 디지털 방송의 미래를 얘기하지만, 정작 방송 프로그램의 외주제작 현실은 수십 년전의 낙후된 상태에 머물고 있다. 특히 공영방송으로서 방송제작산업을 지원하고 발전시켜야할 KBSㆍMBC의 역할에 대해서 다시 돌아보게 하는 부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