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시론] 시대를 거스르는 저작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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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5-12-14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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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경 배 경희사이버대 NGO학과 교수


먼 옛날 칼과 창으로 전쟁을 하던 시절에는 병력을 최대한 한 곳에 집결시켜서 세를 크게 과시하는 것이 승리의 관건이었다. 그러나 총과 대포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날아오는 총알과 포탄을 피하기 위해서는 가급적 병력을 분산 배치해야만 했다. 새로운 무기의 등장이 병력 배치에 있어 집결에서 분산이라는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가져온 것이다. 만약 이러한 변화의 물결을 무시한 채 낡은 전략만을 고집하며 여전히 병력을 한 곳에 집결시켜 전쟁터에 나간다면 그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지난 12월 6일 우상호 의원과 이광철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저작권법 개정안이 바로 그 꼴이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라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시대를 거꾸로 거스르는 어처구니없는 발상 속에 만들어진 이 법안이 문화관광위원회 상임위에서 가뿐하게 통과되었다는 것은 매우 충격적인 일이다. 이번에 발의된 저작권법 개정안은 인터넷 상에서 유통되는 정보와 관련하여 크게 다음 4가지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는데 문제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첫째, 개정안은 온라인 서비스 사업자는 P2P 등을 통한 디지털 저작물의 불법 복제와 전송을 방지하기 위하여 기술적 보호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인터넷이란 본래 디지털 정보의 복제와 전송을 근간으로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P2P뿐 아니라 이메일, 메신저, 웹하드, 게시판, 블로그 등 인터넷 공간에서 제공되는 모든 서비스들은 파일을 첨부하거나 전송할 수 있는 기능을 갖고 있다. 결국 이 모든 서비스가 개정 저작권법에서 말하는 기술적 보호조치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다. 더욱이 합법적인 파일과 불법 복제 파일을 식별할 수 있는 기술이 존재하지 않는 마당에 이런 법을 적용하려면 결국엔 인터넷 상에서 교환되는 모든 파일을 일일이 검열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일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설령 가능한 기술이 개발된다고 해도 또다시 프라이버시 침해라는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키게 될 뿐이다.

둘째, 인터넷 이용자들 간에 불법적인 파일 교환이 이루어질 경우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온라인 사업자가 저작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내용도 문제이다. 한마디로 칼로 사람을 찌르는 사건이 벌어지면 그 칼을 판매한 사람까지 범죄자로 처벌하겠다는 것이며, 음주운전이 적발되면 그 차를 판매한 업체에게도 책임을 묻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발상이라 하겠다.

셋째, 온라인 상의 불법 복제물에 대해 법원의 판결 절차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문광부 장관 및 자치단체장에게 삭제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는 조항도 논란을 빚고 있다. 민주주의 제도는 3권 분립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입법부 의원이 행정부에게 사법적 권한까지 부여해 주겠다고 나섰으니 3권 분립이 뒤죽박죽 되어 어리둥절할 노릇이다. 사법적 절차를 통해 당사자에게 소명의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행정부의 일방적 판단만으로 온라인 상의 정보에 대한 삭제 권한이 행사된다면 인터넷 공간이 표현의 자유가 거세된 검열과 통제의 공간으로 전락하지나 않을지 우려된다.

넷째, 저작권법 개정안은 불법 복제물에 대해 저작권자의 고소가 없이도 수사기관이 직접 처벌을 할 수 있는 비친고죄를 적용토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인터넷 상의 모든 디지털 정보가 다 저작권의 대상은 아니라는 점에서 또 다른 문제가 제기된다. 비록 인터넷이 상업화에 오염되어 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저작물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려는 네티즌들도 여전히 많다. 저작권법의 궁극적인 취지는 저작자의 의사를 존중하고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저작권을 갖고 있는 당사자의 의사도 확인하지 않고 정부가 나서서 처벌부터 하려는 것은 저작권법의 본래 의도와도 동떨어진 행위이다. 이는 과잉 규제임과 동시에 자칫 정보 공유 정신에 입각한 저작권자의 의사에 반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저작권자의 권리는 중요하다. 하지만 이토록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는 저작권법 개정안이 졸속으로 처리된다면 결과적으로 저작권자의 권리마저도 온전히 보장받기 힘들 것이다. 인터넷의 기본 원리와 디지털 저작물의 속성을 무시한 채 아날로그식 저작권법을 한층 더 강화하려는 저작권법 개정안은 총알과 포탄이 쏟아지는 전쟁터에서 밀집 대형으로 전열을 유지한 채 무모한 강행군을 고집하는 낡은 시대의 전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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