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대] 도메인과 미국중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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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창녕 아사달인터넷 사장

도메인에도 국적이 있는가. 인터넷에는 국경이 없지만, 인터넷 주소인 도메인(domain)에는 국가라는 꼬리표가 달린 것이 아닐까.

얼마 전 한국 최대의 포털사이트인 다음커뮤니케이션의 홈페이지(daum.net) 접속이 중단된 적이 있다. 다음의 서버 장애나 시스템 결함 때문이 아니라 도메인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미국 네트워크솔루션즈(NSI)의 도메인 관리 소홀 때문으로 추정되고 있다.

도메인 접속 장애로 인한 피해는 예상 밖으로 크다. 사이트 접속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인터넷 쇼핑몰을 통한 전자상거래가 이루어질 수 없고, 커뮤니티와 검색 등 각종 무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정보를 이용할 수 없다. 이로 인해 다음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안정성이 의심을 받고 회사 이미지가 추락했다. 다행히 다음은 한국통신 등 주요 업체들을 통해 적어도 국내 일부에서는 사이트 접속이 가능하도록 신속히 조치를 취했지만, 상당수의 다른 전용회선 이용자들과 해외 이용자들은 하루 또는 이틀 이상을 더 기다려야만 했다.

이번 일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신비로(shinbiro.com) 사이트도 비슷한 문제로 사이트 접속이 중단됐고, 2001년 4월에는 한메일(hanmail.net) 도메인이 삭제되기 직전의 상황까지 방치된 적도 있다.

도메인의 등록 및 유지비용은 연간 2만원에 불과하지만, 도메인 관리 소홀에 따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번 사태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만약 국가 사이에 심각한 분쟁이 발생한다면 인터넷 도메인은 어떻게 될까. 인터넷에는 국경이 없지만, 전쟁과 같은 극단적 상황에서는 상대방 국가의 도메인이야말로 가장 큰 공격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주요 포털사이트의 도메인 관리를 미국의 한 민간기업이 맡고 있는 현실에서, 만약 도메인 서비스에 장애가 발생한다면, 전 세계 인터넷은 그 순간 멈춰버리지 않을까.

인터넷에는 중심이 없다고 한다. 인터넷(Internet)이라는 용어 자체가 네트워크를 서로 연결한 네트워크이듯이, 마치 `그물'처럼 얽혀 있어서 어디가 중심이고 어디가 주변인지를 구별할 수 없다.

모든 인터넷 웹사이트는 서로 평등한 관계, 대등한 관계로서 그 어떤 `중심'도 경유할 필요 없이 원클릭으로 원하는 정보에 도달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인터넷은 완전 경쟁시장, 자유시장경제에 가장 적합한 도구다.

하지만, 인터넷 주소인 도메인은 그렇지 않다. 도메인은 상하 관계, 엄격한 위계적 관계인 피라미드 구조로 되어 있다. 닷컴(.com)과 닷케이아르(.kr) 같은 최상위 도메인이 있고, 그 하위 도메인인 2차 도메인을 생성하여 `co.kr' `or.kr' `go.kr' 등을 만든다. 다시 그 앞에 3차 도메인을 붙여 `abc.co.kr' 같은 위계적 구조를 갖는다. 만약 상위 도메인에 장애가 발생하면 그 아래에 있는 모든 하위 도메인에도 문제가 생긴다.

현재 최상위 도메인은 일반 최상위 도메인(gTLD)과 국가 최상위 도메인(ccTLD)으로 구분되는데, 닷케이아르와 같은 국가 최상위 도메인은 각 국가별로 레지스트리를 두어 관리 권한을 주고 있다. 반면 닷컴이나 닷넷(.net)과 같은 일반 최상위 도메인은 미국의 베리사인이라는 민간기업이 그 권한을 갖고 있다.

인터넷이 원래 미국에서 시작됐고, 도메인 시스템을 고안하고 전 세계에 보급한 것도 미국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해당하는 최상위 도메인의 관리 권한을 미국이 가지는 것은 인터넷 선구자에게 주어진 특권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의 주요 포털사이트와 대기업은 .kr 도메인보다 .com 도메인을 더 선호하는 게 현실이다. 이렇게 볼 때 사이버 가상공간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다. 인터넷에는 중심이 없지만, 도메인에는 중심이 있고 그 중심에 미국이 있다.

미국은 도메인 시스템의 중심을 차지한 국가로서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미국은 이번 다음 사태를 단순히 수천만 개 중 한 개의 도메인에서 생긴 사소한 문제로 보는 것은 아닌가.

이번 도메인 접속 중단 사태로 1천만 명이 넘는 한국인이 불편을 겪었지만, 미국 베리사인의 고위 관계자가 방한해 밝힌 무책임한 발언은 정말 씁쓸한 감정이 들게 한다.

우리 조상들이 물리적 공간인 영토에 대한 주권을 강조했다면, 21세기 인터넷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사이버 가상공간인 도메인에 대한 주권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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