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G시절부터 경쟁력 상실
평창올림픽 5G 시범계획… '보여주기'에 급급 지적
글로벌 네트워크 기업들… 생존위한 합종연횡 선택
산업 구조조정 격변 예고… '5G시대' 질적 진화 의미
다양한 융합서비스 등장… 중소기업 참여기회 많아
■ 긴급점검 통신강국, 미래가 안보인다
(하) 차세대 통신기술 주도권, 아직 기회는 있다
10년 넘게 내리막을 걷고 있는 국내 통신 네트워크 산업은 5세대(G) 이동통신마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영원히 부활할 기회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불안감이 팽배하다. 고사 위기인 국산 네트워크 기업들의 참여 길을 넓히고, 세계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치밀한 국가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의 네트워크 기술은 이미 3G 이동통신 시절부터 세계 무대 경쟁력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과거 2G CDMA와 4G 와이브로라는 뛰어난 기술을 개발했지만, 세계화에는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토종 네트워크 산업은 급속히 위축됐다. 삼성전자 네트워크 사업부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LG전자는 구 LG정보통신의 네트워크 사업을 여러 기업을 거쳐 에릭슨에 매각했다. 중소기업들은 일부 코어(기간) 네트워크 장비와 기지국 전파 도달 범위를 넓혀주는 중계기 정도를 개발해 판매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특히 중소 네트워크 기업들은 LTE 상용화 당시 기지국 장비를 생산하는 대기업들이 기지국과 중계기를 연결하는 표준규격(CPRI)을 개방하지 않아 큰 타격을 받았다.
◇ 5G 시대, 국산 네트워크 산업 '멸종' 위기= 이대로 가다가는 2020년 5G 시대에는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을 포함한 국산 네트워크 산업이 '멸종'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네트워크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적극적으로 몸집을 불리고 있다. 지난해 4월 노키아가 알카텔루슨트를 인수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동안 기지국을 비롯한 무선 네트워크 사업에 힘이 실렸던 노키아는 유선에 강점을 가진 알카텔을 인수하면서 유무선 제품군을 재정비했다. 경쟁 관계였던 시스코와 에릭슨도 특허 상호 기술사용 협약(크로스라이선싱)과 제품 판매까지 함께하기로 손을 잡았다. 오는 2020년 5G 서비스 개막 이전에 세계 네트워크 산업계는 먹고 먹히는 인수합병(M&A) 빅뱅을 거쳐 거대 소수 기업만 살아남는 '격변의 시기'를 맞을 것이란 전망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미래창조과학부는 산업을 살리기 위한 전략보다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5G 세계최초 시범 서비스라는 '보여주기'에만 급급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에릭슨, 노키아, 퀄컴, 인텔 등 외국계 기업은 한국이 깔아준 판에서 5G 기술력 축적을 노리고 있다. 이에 대해 미래부 관계자는 "한국 기업이 밀고 있는 표준 기술을 국제표준으로 채택하기 위해선 과거처럼 국가 주도로 할 수는 없고, 글로벌 기업과 협력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에 참여시킨 것"이라며 "정부는 원천 기술 확보에 예산을 집중하고 있고, 중소기업도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 실질적 대책이 없다= 미래부는 지난 2014년 미래이동통신산업 발전전략을 발표하고, 신산업 전략인 K-ICT 내 9대 핵심과제 중 하나로 5G를 포함시켰다. 5G 통합과제와 기가코리아 사업과제를 통해 지난 2013년부터 올해까지 약 2400억원을 들여 기지국 소프트웨어, 멀티안테나, 초 저지연 기술 등에 투자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의 체감온도는 낮다. 국산 네트워크 장비 업체 관계자는 "정부에서 가끔 제안하는 3억~4억원 수준의 과제는 이통사 하청 주문을 막기에도 급급한 상황에서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아, 참여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산업생태계를 고려한 더 정교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본의 경우 5G 시장의 접근 방식을 '기술'이 아닌 '서비스와 생태계'로 정의해 민간 기업의 다양한 참여 기회를 열어놓고 있다. 중국 공업신식화부(MIIT)는 2020년 5G 상용화를 목표로 정부 주도로 30여 대·중소기업과 함께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 5G 시대 앞서 생태계 복원 고민할 때= 5G 시장은 기존 속도 업그레이드 위주에서 네트워크에서 질적 진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네트워크 장비 기업들이 혁신기술로 파고들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28㎓ 이상의 고주파 대역에서 무선 통신을 안정적으로 제공하기 위한 망 구성 기술, 소프트웨어 가상화 기술 등은 아직 초기 단계로 꼽힌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LTE처럼 대형 기지국 위주가 아니고, 중계기와 같은 급의 소규모 기지국이 다량 필요하기 때문에, 이런 분야에선 충분히 대응할 여지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5G가 몰고 올 다양한 창의적 융합 서비스 분야도 국내 중소·중견 네트워크 기업이 노려볼만한 분야로 꼽힌다.
이동주 한국네트워크연구조합 선임연구원은 "5G 시대에는 거대 네트워크 기술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창의적 아이디어의 융합 서비스가 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며 "다양한 융합기술과 아이디어를 더 많이 구현하고 연결할 수 있도록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지성기자·박세정기자 jspark@ |
